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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신경과학 모델로 이중섭 대표작 다시 읽기

김영호


인지신경과학 모델로 이중섭 대표작 다시 읽기


김영호(중앙대교수, 미술사가)

I. 들어가기 

‘작품은 어떻게 감상되는 것인가?’ ‘작품의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가?’ 오늘 세미나는 이 두 개의 질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고 가치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려는 것이다. 전제 조건을 말씀드리자면 작품의 감상법이나 가치의 측정방식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하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감상자의 기억이나 경험에 따라 작품의 의미는 달리 나타나고 따라서 그 가치도 색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의미해석과 가치측정을 위한 하나의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란 해석을 위한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오늘 우리가 공부하고자 하는 것은 예술작품이라는 대상을 해부하는 도구와 기술에 대한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도구와 기술이 될 것이다. 하나의 도구 혹은 기술이 보편적 가치를 발견해 내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비평의 기술이나 도구를 습득하여 작품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감상을 할 수 있고 나아가 작품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시지각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그림이나 조각 같은 시각예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눈이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과 작품을 받아드린다. 눈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를 통해 대상이 어떻게 시각화되고 뒤이어 지각작용으로 넘어가며 그 결과로 대상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진행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눈에 대한 생물학적 연구는 안과의들의 몫이다. 하지만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정보가 시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 과정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신경과학자들의 몫이다. 신경과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망막에 비친 이미지가 의미화 되는 뇌신경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었고 인지신경과학이 등장하면서 뇌신경계가 인간의 인지와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밝혀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융합적 학문분야가 바로 신경미학이다. 신경미학은 뇌과학과 미학의 융합을 통해 만들어낸 학문영역으로 최근 각광을 받고 있다.     

오늘 우리는 우선 시각현상에 대해 살펴보고 눈과 시신경과 시각뇌의 메커니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뇌신경미학 분야에서 거둔 미적 경험의 모델을 통해 예술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감상자가 얻게 되는 감동과 판단이 어디서 연유된 것인지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이 모델을 도구로 삼아 이중섭의 작품을 해석하고 그 가치를 추적해 보려 한다. 


II. 시지각 뇌신경계 메커니즘의 이해 




그림1) 망막에서 이미지는 망막의 광수용체인 원추체와 간상체에 의해 시각신호로 바뀐다.  
이 때 원추체는 색의 시각신호를, 간상체는 명암의 시각신호를 담당한다. 
  




그림2) 망막의 광수용체인 원추체와 간상체가 담당하는 색과 명암의 시각신호는 후두엽의 다섯 개 시각뇌 부위 중 V4와 V5를 활성화 시키면서 색과 공간감을 지각하게 된다. 시각체계는 지각체계로 전환된다. 


본다는 것은 눈과 시신경과 시각뇌가 사물에 반사된 빛의 파장들을 받아드려 처리하는 과정이다. 지난 50년 동안 뇌가 어떻게 눈에서 받아드린 정보를 해석하는지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괄목할 만한 진전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지식으로 시각예술의 대한 이해와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우리가 강렬한 감정을 자아내는 그림을 볼 때 인간의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우리는 눈과 뇌에서 벌어지는 시지각처리 순환의 서클을 간단히 살펴보자. 거칠게 말하자면 그것은 시각-재인-지각의 상호 유기적 단계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눈의 망막에서 시각신호로 바뀐 이미지가 시신경을 통해 뇌의 후두엽 부위의 시각영역에 전달되면 시각신호는 분석을 위해 뇌의 다른 위치(시각뇌 V1, V2, V3, V4, V5)에 전달된다. 이 때 시각체계=지각체계 단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의 지각은 ‘무언가가 보인다’ 정도의 지각이다.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면 ‘재인(recognition) 또는 ‘이해(understanding)’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해의 단계란 뇌의 후두엽에서 이루어지는 지각처리의 과정이다. 이해의 순환서클은 상향처리(자료주도적 처리)와 하향처리(개념주도적 처리)의 두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상향처리(자료주도적 처리)란 시각뇌가 시각정보의 윤곽선과 입체감, 공간감, 색 등을 병행 분산적으로 처리해 대상을 지각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며 이 처리과정은 다시 어디체계 (dorsal stream/where pathway)와 무엇체계(ventral stream/what pathway)의 둘로 나뉘어 진다. - 어디체계란 망막의 간체(명암)를 통해 두정엽으로 전달되는 체계이며 움직임, 공간, 위치, 깊이, 시각장면의 전체적 구성의 지각을 담당하고, 무엇체계란 망막의 추체(색)에서 측두엽으로 전달되는 체계이며 대상의 재인과 색지각을 담당한다.
, 하향처리(개념주도적 처리)란 시각뇌가 기억에 저장된 정보인 지식을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때 전두엽은 기억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들을 지각한 결과에 개입시켜 이해하는 역할 담당한다. 마침내 시각정보는 지각된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재인(recognition)’의 단계에 이른다. 재인이란 주어진 시각대상에 지식이 개입하여 대상을 올바르게 범주화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지각은 재인의 단계에 이르러서야 완결된다.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여 작동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주의(注意)다. 주의란 지각할 가능성이 있는 주변의 모든 자극에 대한 뇌의 선별작업이다.  


III. 예술작품의 지각과정 이해 

우리는 앞서 뇌신경계가 담당하는 시지각의 메커니즘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알아서 깨닫는 능력’, 이른바 지각능력은 시각정보의 상향처리(자료주도적 처리)와 하향처리(개념주도적 처리)라는 두 개의 처리과정을 병행 분산적으로 실행하는 능력이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대상의 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지각의 메커니즘은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다. 우리가 작품을 보는 순간 시각정보의 윤곽선과 입체감, 공간감, 색 등을 병행 분산적으로 처리하기 시작한다.  병행 분산적인 처리란 대상과 배경, 윤곽선과 크기, 색과 명암 등의 조형요소로 분석되어 각각의 자극이 처리에 합당한 경로로 분리되어 지각되는 것을 말한다. 하향처리는 상향처리가 일차적으로 처리한 자료 주도의 지각에 지식을 개입시켜 가설을 세우거나 주의를 이동시키며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주의의 이동을 통한 탐색이 완료되면 지식을 통해 가설에 따른 탐색결과를 재인한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면 비로소 작품은 지각된다. 

그렇다면 작품에 대한 시지각 뇌신경의 메커니즘을 통해 작품에 대한 지각이 이루어 졌다 해서 작품 해석이 완성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펴본 것은 작품의 지각에 따르는 뇌신경계의 메커니즘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며 해석된 시각정보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분석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신경생물학이나 뇌과학 분야에서 뇌신경계의 메커니즘이 미적 경험과 연계시켜 연구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른바 신경미학의 탄생이다. 신경미학이란 1999년 영국의 신경해부학자 세미르 제키가 창안한 용어로 미적 경험의 다양한 측면들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고안된 새로운 연구분야이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 제키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 세계 최초로 신경미학원을 설립하면서 집단적인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신경미학은 매우 생소한 분야라 할 수 있다. 신경미학에서 중요시 하는 연구 과제는 미적 경험인데 일반적으로 미적 경험이란 ‘자극에 대하여 일종의 평가(appraisal)를 내리는 심리적 정보처리의 과정’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평가란 쾌나 불쾌의 유발 정도, 아름다움의 정도, 매력도, 선호도 등에 대한 인지적 정감적 평가를 지칭한다. 

신경미학 초기의 연구방향은 예술과 아름다움과 같은 추상적 주제에 대한 신경과학적 적용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있었다. 바타니안과 리빙스톤 같은 학자들은 입체파나 미래파, 인상주의나 현대미술 등에 초점을 맞추어 명작들을 예시하면서 작품의 창작이나 감상시 발생가능한 뇌 활동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바탕에서 창출된 연구성과는 2000년대 중반에 들어 본격화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독일 심리학자 레더와 그의 심리학 연구팀은 2004년 심리학 모델로서 미적경험 모델을 제시했다. 다섯 가지 정보처리 단계들로 구성된 이 모델은 예술작품에 대한 미적 경험을 구성하는 심리적 요소들과 각각의 요소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 미적 경험 모델의 성과는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이 크게 인지적, 정서적 과정들의 병렬적 통합에 의해 기능한다는 것이다.  


IV. 신경미학에서의 미적경험 : 레더 연구팀의 미적경험 모델




그림3) 정보처리 단계 : 1. 지각적 분석, 2.기억의 통합, 3. 명시적 분류, 4. 인지적 통달, 5. 평가 

레더 연구팀은 인지 경험이 연속되는 과정을 다섯 가지의 단계로 나누었다. 지각적 분석-기억의 통합-명시적 분류-인지적 통달-평가의 단계가 그것이며 결과로 미적 판단과 미적 감정을 생산하게 된다. 한편 이 단계를 거치는 동안 다른 층위에서는 정감상태가 각 단계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하였으며 최종적인 정감상태는 평가단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하였다. 그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차단계 / 지각적 분석 (perceptional analyses) : 기초적 시각처리 단계로서 눈에 즉각적으로 들어오는 색깔(color), 대조(contrast), 복잡성(complexity), 대칭성(symmetry), 질서(order), 집단화(grouping) 등의 여러 형식적 요소들이 파악되는 단계. 자동적(automatic)인 인지처리 단계 

2차단계 / 기억의 통합 (implicit memory integration) : 눈에 들어온 지각정보가 감상자의 과거 경험과 관계 맺는 단계. 이 단계에서는 1차 단계에서 분석된 조형요소들을 내가 알고 있는 대상의 기억이나 경험과 연관을 시켜 바라보게 된다. 1차 단계와 2차 단계는 순차적으로 파악되지만 동시에 파악될 수도 있다. 이 두번째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지각정보에 대한 감상자의 친숙성(familiarity) 또는 전형성(prototypicality) 그리고 과장 또는 왜곡(peak shifting)에 따라 작품의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3차단계 / 명시적 분류 (explicit classification) : 의도적(deliberate)으로 작품을 숙고하기 시작하는 단계. 이 단계에서는 예술에 대한 감상자의 전문지식이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 작품의 양식(style)이나 내용(content)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에 대한 경험을 언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계이다. 이 세번째 단계는 감상자의 사전지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다. 

4차단계 / 인지적 통달 (cognitive mastering) : 예술작품에 의미가 부여되는 단계를 말한다. 작가의 예술 양식이나 특정적 지식을 바탕으로 작품해석을 하게 된다. 감상자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관심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단계이다. 이 4차 단계에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나타난다. 전문가는 작품에 대한 양식(시각적 특성)을 바탕으로 감상하는 경향이 있고,  비전문가는 작품의 내용(주제)에 의존해 작품을 감상하는 경향이 있다.  

5차단계 / 평가 (evaluation) : 작품의 의미를 평가하는 단계. 이전의 모든 단계를 거치면서 작품에 대해 만족할 만한 이해를 얻는 피드백의 단계. 이 평가단계는 미적 판단과 미적 감정이라는 두 가지 출력물을 생산해 낸다. 만약 인지적 통달과정이 성공적이면 그 예술작품은 훌륭한 작품이거나 훌륭하지 않은 작품으로 평가 내려질 것이다. 만약 인지적 통달에 실패하는 경우에는 부정적 미적 감정이 수반되어 별볼일 없는 작품으로 평가될 것이다. 


레더 연구팀의 모델은 개념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현대미술이 어떻게 우리에게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모델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미적 경험의 단계에 상호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서 또 다른 층위들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뮤지엄, 갤러리, 미적 실험이라 불리우는 맥락적 층위다. 지각정보 처리의 다섯 개 단계가 끝나면 미적 판단과 미적 정서가 생기는데 이 미적 판단과 미적 정서는 사회적 상호작용 담론과 연계를 지니기도 한다. 우리는 뇌신경계의 메커니즘과 미적경험 모델을 토대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제 우리는 이 모델을 도구로 삼아 이중섭의 작품을 해설하고 객관적 가치를 평가해 보려 한다. 


V. 이중섭의 대표작 읽기 




그림 4) 왼쪽 위 : <황소>, 종이에 유채, 35.5x52cm, 1953, 서울미술관 소장 / 오른쪽 위 : <흰 소>, 종이에 유채, 29x41cm, 1955,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 왼쪽 아래 : <흰 소>, 종이에 유채, 34.2x53cm, 1953-54, 개인소장 / 오른쪽 아래 : <소>, 종이에 유채, 27.5x43cm, 1953년경, 서울미술관 소장  


이중섭은 동경시절 제4회 자유미술가협회 공모전에 출품한 1940년에서 부터 사망한 1956년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황소 그림을 제작했다. 황소 시리즈는 그의 대표작으로 각광 받는 이유는 작품의 조형 형식의 독창성뿐만이 아니라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역사적 환경이 주는 드라마틱한 조건들이 작품의 해석과 평가 과정에 개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와 전쟁 그리고 전후의 격변하는 사회적 맥락에서 황소는 이중섭의 분신이자 민족의 모습이며 황소그림은 작가 자신과 시대를 살았던 민중의 삶을 기록한 서사시처럼 드라마틱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1) 작품 해석의 사례 : <황소> 
    

 


1. 그림을 대하면 눈에 즉각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회갈색 톤의 바탕에 거칠고 힘차게 그어진 굵은 붓 터치들이다. 이 노란 필획이 부각되어 보이는 것은 이미 검정 터치로 묘사된 짐승의 몸통과 강한 대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편평하게 처리된 배경과는 달리 유난히 짐승의 몸은 복잡해 보이면서도 어떤 질서를 지니고 있다. 날일자의 코와 목 줄기에 깊게 패인 주름뿐만 아니라 대퇴부의 삼각근 그리고 뾰족한 엉덩이뼈 위에 춤추듯 세워진 꼬리는 황소 이미지의 양식화된 형상들이다. 어깨와 대퇴부의 선은 두껍고 명쾌하며 어떤 선은 얇고 모호하다. 이 짐승은 화면의 왼쪽으로 묵직한 걸음을 걷고 있지만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는 감상자를 향해 있다.

2. 이 그림은 황소를 그린 것이지만 묘사의 방식은 대상의 외형을 재현 하려는 데서 벗어나 있다. 인상주의 미술교육을 받은 우리에게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특성은 황소의 모습(figure)을 재현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황소의 실재감(reality)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데 있다. 이는 작가가 황소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조형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인한 어깨와 대퇴부 그리고 대지를 힘차게 밟고 있는 다리는 황소의 이미지에 대한 전형적 특성과 부합된다. 뒷다리의 구조가 땅을 힘주어 긴장을 유발하고 있지만 삼각협의 구조로 안정감을 드러내고 있으며 치켜 세운 앞다리의 리듬 역시 걸어가는 소의 행동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감상자를 향한 머리는 이러한 황소의 힘이 감상자들에게 전달되는 접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3. 거친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가 그림의 중심적 조형요소가 된 것은 근대미술이 시작된 이후의 일이다. 대상의 형상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넘어 화면의 조형적 요소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회화예술의 본성은 점·선·면 그리고 색채가 주는 순수한 미적 체험을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순수미술의 가치란 바로 화면에서 벌어지는 물감의 물성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 미술 이후 예술가들은 순수조형요소에 집착하며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중섭의 황소는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지닌 특성은 순수 조형형식 너머에서 발견되는 주제의 해부학적 특성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뒷받침 되는 데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동양의 전통 선묘화에서 얻은 선의 정신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4. 이중섭의 황소 시리즈에 대한 의미부여는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강력한 필획을 통해 역동적인 소의 동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양식과 주제 사이의 합일을 이루어 내었다는 평가다. 실험과 모색의 근대를 반영하는 미술양식에 선도적으로 대응함으로서 한국 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것이다. 또한 일제 식민지로 부터 해방과 전쟁기를 살았던 한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황소라는 짐승을 통해 담아내었다는 평가도 있다. 일제 강점기에 소는 지식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조선인에 대한 코드였다. 해방 후에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민중의 상징이었다. 이 경우 황소그림은 곧바로 작가의 모습이자 민족정서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분노하고 피로하고 피를 흘리는 소의 다양한 표정은 가난과 격변의 시대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중섭의 그림이 주는 가치는 구상 선생이 지적한바 ‘그림과 인간, 예술과 그 진실이 일치하는 예술가’라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이중섭은 국내 화단에 국민화가로 불리울 정도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다. 하지만 그의 작품의 형식이나 논리에 대한 심층적 분석은 근대미술사 분야의 몇몇 연구자들로 제한되어 있다. 그 이유는 해방과 전쟁의 격변기를 살았던 한 예술가의 비극적 삶에 초점이 겨냥되어 왔기 때문이라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중섭 100년의 신화>전이 국립미술관차원의 첫 번째 전시회라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에 대한 저간의 편견을 깨고 그의 작품세계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기회로 작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강력한 필획을 통해 역동적인 황소의 동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한 황소 시리즈가 대부분 출품되었다. 또한 물고기와 게, 꽃과 새 시리즈 들과 은지화, 엽서화, 삽화, 편지화 등의 작품과 유품 및 자료들이 총 망라되어 이중섭 연구의 2라운드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2) 작품 해석의 사례 : <길 떠나는 가족> 



그림 5) <길 떠나는 가족> 종이에 유채, 29.5x64.5cm, 1954, 개인소장 / <길 떠나는 가족> 종이에 유채, 22x51cm, 1954년경, 개인소장 




1. 한 줄기 붉은 빛이 새벽 하늘을 가르고 대지를 비치는 시간, 온 가족이 어디론가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함께 여정에 오른 가족의 모습은 모두가 행복한 몸짓을 하고 있다. 황소를 이끄는 백의의 남정은 의기양양한 자세로 왼손을 치켜들어 길을 재촉한다. 청색 치마를 입은 여인은 발가벗은 두 아이를 돌보고 날개 짓을 시작하는 새는 창공으로 비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 황소의 등과 꼬리마차에는 붉은 꽃잎이 휘날린다. 화면은 예외 없이 빨강과 녹색 그리고 파랑과 노랑의 원색들이 어우러 지면서 화면에 빛과 활력을 제공해 주고 있다. 특이한 것은 화면의 네 면을 모두 둘러친 노랑색 선이다. 

2. 화면의 가상자리에 둘러 친 노란색 띠는 이 그림에 분위기를 색다르게 만든다. 그것은 연극 무대의 휘장이거나 아니면 차창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낸다. 작품 속의 세계와 관객의 현실세계를 구분 짓게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흔히 등장하는데 화면에서 벌어지는 장면을 하나의 사건으로 대상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등장인물의 동작들이 주는 유기적 흐름은 이 작품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또 다른 장치로 보인다. 왼쪽에 깃발처럼 서있는 인물을 시작으로 소의 등과 꼬리 그리고 세 인물의 팔을 따라 흐르는 선율은 화면에 리듬감을 선사해 준다. 그것은 길 떠나는 가족들이 추는 춤의 흐름이다. 화면에 흐르는 선의 리듬은 하늘의 붉은 선과 대지의 노란 선에서도 나타난다. 

3. 작가는 이 그림에서 대상의 묘사를 소홀히 함으로서 색채의 물성과 선율의 흐름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표정의 묘사가 없다 해서 축제의 분위기가 부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순수 조형적 요소로서 색채와 선의 표정은 여행이라는 주제 자체를 드러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조형형식과 표현내용의 어우러짐은 표현주의 작가들이 추구하는 예술의 덕목일 것이다. 이 밖에도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요소들은 황소 수레를 이끄는 남자의 뒤틀린 목과 역동감을 만들어내는 발기된 황소의 꼬리 그리고 화면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어깨의 리듬을 타고 소년이 날리고 있는 흰 새이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마차바퀴는 이 작품에 의미를 명백하게 만들어 내는 기호가 된다. 

4. 이중섭은 <길 떠나는 가족을> 두 점 그렸다. 하나는 대상 묘사가 한층 사라지고 물감의 물성과 붓터치의 토운을 극대화 시킨 것이다. 안개 새벽처럼 희뿌연 화면은 마치 꿈속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시리즈 작업은 실험과 모색을 실천했던 작가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작가는 헤어져 있는 아들과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그림에 대해 쓴 내용이 있다. “가족을 소달구지에 태우고 자신은 황소를 끌며 따뜻한 평화와 행복이 있는 남쪽나라로 함께 가는 광경을 그렸다”는 것이다. 1952년 끝이 보이지 않는 피난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일본인 아내와 두 자식을 일본으로 떠나 보낸 작가는 1956년 생을 마감할 때 까지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와 가족을 연결해 주는 것은 편지 뿐만 아니라 그림이었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그의 그림은 작가로서 이별의 고통을 극대화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는 수단이었다. 

5. 이중섭은 가족 그림을 많이 남겼다. 함께 길을 떠나고, 어울려 게와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부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끝없이 그렸다. 심지어 그가 보낸 편지에도 가족의 그림으로 덮여 있었다. 이중섭의 먼 길을 떠나는 가족에 대해 구상은 ‘산천초목과 금수어개(禽獸魚介)와 인간이, 아니 모든 생물이 혼음교접(混淫交接)하고 있는 광경’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의 열망은 그를 파멸의 길로 밀어 넣었다. 심리적 억압에 따른 초조와 실의 그리고 의욕저하의 우울증 증상을 만들어 내었고 정신질환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자 애절한 사랑의 표상인 동시에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 즉 대상상실에 대한 두려움’의 표상으로 읽혀지는 사연은 여기에 있다. 그의 애절한 사연을 읽고 아는 감상자들의 마음을 저리게 할 따름이다. 


VI. 결언  

평론의 성격을 가진 위의 두 글은 ‘레더 연구팀의 미적 경험 모델’이 제시하는 다양한 항목들에 근거해 써 본 것이다. 이른바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미적 경험을 구성하는 심리적 요소들과 그 요소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염두를 두면서 적은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는 시각정보 처리의 다섯 가지 단계로서 분석, 통합, 분류, 통달, 그리고 평가의 단계들에 대한 언술들이 들어가 있다. 그리고 미적 경험의 과정이나 결과에 상호 영향을 미치는 다른 층위의 요소들로서 다양한 현대미술 사조, 미술관이나 갤러리,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 담론’ 따위의 복잡한 요소들이 뒤얽혀 있다. 

이러한 글쓰기 방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첫 번째는 상식에 관한 것으로 우리의 지각체계는 다섯 개의 단계를 독립적 순차적으로 밟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것도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령 모델의 첫 단계인 ‘분석’의 단계에서 조형적 요소들에 대한 객관적 묘사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며 이어지는 ‘통합’, ‘분류’, ‘통달’ 그리고 ‘평가’의 과정이 상호 교차되면서 뒤따르게 된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서구 현대미술의 운동이나 경향들을 이중섭의 예술작품에 적용시켜 작품을 해석하는 것에 따르는 평가의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특정 예술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예술가가 처한 지역의 환경으로부터 나올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성공은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양식의 개발에 달려 있다. 따라서 감상자가 알고 있는 기존의 서구 미술운동 양식이나 경향으로 한국 작가의 작품을 평가하는 데는 그만큼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작품 감상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더 있겠으나 예술작품을 분석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모델을 도구로 사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 방법들의 한 모델로서 레더의 미적경험 모델을 이해할 수 있으면 감상이나 비평에 도움을 줄 있을 것이다. 흔히 현대미술은 난해하다고 한다. 이번 세미나가 이중섭의 그림뿐만 아니라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 20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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