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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소 김태혁 이지현-존재의 물성과 정신을 찾아서

김영호

갤러리 이전 개관 3인전에 부쳐 : 
존재의 물성과 정신을 찾아서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작지만 알찬 갤러리를 표방하며 방배동에 문을 열었던 세컨드 애비뉴 갤러리(2ED AVENUE GALLERY)가 2년 만에 필동에 새 둥지를 마련하고 새로운 행보를 내딛고 있다. 개관전에 초대된 3인 작가의 예술세계와 이들을 하나로 묶은 전시개념을 보면 이 갤러리의 방향과 비전을 엿볼 수 있다. 최병소, 김태혁, 이지현은 모두 전업작가로서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한 일관된 탐구와 실험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그 예술세계의 성취가 깊어가는 분들이다. 오랜 시간을 거치며 숙성된 장맛처럼 작가들의 작품에는 작가의 세계관과 정직성이 깊게 잠재되어 있다. 이번 3인전이 갤러리의 새 출발을 위한 첫걸음이라는데 의미를 두어서인지 세 명 작가의 작품들대부분은 자신의 신작들로 화답하고 있다. 





최병소는 신문지의 표면에 볼펜이나 연필로 표면이 너덜해 질 때까지 그어 마침내 신문지의 물성이 정신 영역으로 해체되는 작업을 해 왔다. 끝없이 반복되는 지우기-덧칠하기 행위가 만들어낸 종이의 변모는 정보 미디어로서 신문이라는 기호를 비물질화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이른바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 만물이 생장하고 스러져 가듯 무목적적으로 보이는 드로잉 행위에 시간이 덧입혀 지면서 물질의 세계가 어느덧 산화 되어버리는 세계를 이병소는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이 신작인 이유는 평면에서 입체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은 종이라는 평면에서 시작해 펜의 반복적 에너지가 가해지면서 고목의 껍질처럼 솟아오르며 3차원의 공간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평면적 공간을 실재로 겹쳐 보임으로써 물리적인 3차원 공간을 촉발시키고 있다. 평면에서 공간에 이르는 다차원의 층을 지닌 최병소의 예술은 이제 또 하나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김태혁은 회화와 판화를 전공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에서 분투하고 있는 작가로 이제 자신의 성취가 대중들에게 인정되기 시작하고 있는 작가다. 김태혁의 작품은 평면에 기초하던 물감의 층을 캔버스 표면의 공간에 부유시킴으로써 새로운 시각체험을 보는 이에게 선사한다. 투명 수지를 격자무늬로 크로스 시키고 그 접점에 물감을 얹힘으로서 물감의 물성 자체에 주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표면에 살짝 띄워진 공간의 바탕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캔버스에 섬세한 흔들림이라도 주어지면 마치 키네틱 작품을 보는 듯 화면에는 생경한 긴장감이 피어난다. 김태혁의 작품은 이렇듯 질서 속에 생명의 리듬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에는 액자에 고착된 격자무늬의 작업을 벗어나 벽면 공간에 투명 수지를 설치함으로써 3차원 공간에 대한 적극적 수용을 시도하고 있다.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의 표면처럼 격자 위의 물감들을 규칙 속에서 자신의 물성과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또 다른 버전으로 전시 공간에 점-선 하나를 수평으로 연출한 작업도 눈에 띈다. 이러한 시도는 작가에 있어 물성과 공간 그리고 그를 둘러싼 개념 사이의 역학 관계에 대해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 




이지현은 책을 분쇄하고 재구성하는 것을 작품의 조형방식으로 채택하며 화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책이라는 문명사의 대표적 정보 미디어에 가하는 그의 해체 작업은 폭력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의도는 기표로 제시된 책의 의미에 대한 생산적 비판에 기반하고 있다. 그것이 소설이든 백과사전이든 동양의 윤리서이든 종교 서적이든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분쇄되고 해체된 표지와 낱장들에 부유하는 문자들은 우리 시대의 반문명화된 삶의 총체성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책이라는 견고한 기호가 지닌 다의적이고 임의적인 의미들에 주목하여 그것을 비물질의 영역으로 대체시킴으로써 ‘다르게 바라보는’ 알레고리의 세계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책은 보는이들에게 하나의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문명과 이성과 종교와 철학 그리고 우리가 처해 있는 온갖 사회적 논쟁과 정치적 이슈마저도 재고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분쇄된 책의 페이지에는 소멸에 숨겨진 생명의 돌기들이 가쁜 숨을 쉬며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상의 세 작가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이슈는 조형 형식으로써 평면과 공간에 대한 질문이며, 내용적인 측면에서 삶과 일상 그리고 그것이 집합된 정신현상으로써 문명에 대한 발언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이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현대 사회의 당면적 성찰의 과제에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번 전시에 화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성과에 대한 주목은 갤러리의 이전 개관전이 갖는 의미이자 향후 일상과 삶에 기반한 예술과 문명에 대한 성찰을 널리 전하는 소명을 계속할 것으로 생각된다. 
(20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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