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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엔날레의 미래

김영호

제주비엔날레의 미래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비엔날레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비엔날레는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곳곳에서 신생의 팡파레는 계속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비엔날레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대체로 정치적 논리에 매어있다. 좁은 국토에 너무 많고 개성이 없으며 예산낭비가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비엔날레의 행진이 계속되는 이유는 정신문화 비전의 시대에 비엔날레를 대체할 대안이 아직도 없기 때문이다. 비엔날레는 국가 혹은 지역간 문화 헤게모니의 각축장인 동시에 시대정신을 탐구하는 실험실로 작동해 왔다. 비엔날레 무용론자들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비엔날레의 본성이 무용한 것이 아니라 비엔날레를 운영하는 주체로서 조직과 운영 체계가 아직도 미숙하다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주지하듯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은 미술관의 그것과 다르다. 비엔날레가 미술관 전시와 별도로 100년 이상을 존속해 오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경화된 제도와 규범에 대한 도전과 문화 개혁의 실험실로서 비엔날레를 말할 때 우리는 전설적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1933-2005)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36세가 되던 해에 8년 동안 몸담았던 미술관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150회가 넘는 전시를 기획하고 조직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기존 전시공간에서는 소화하지 못했던 실험적인 주제와 미술사조를 전방위로 포섭했으며, 혁신적 전시방법론을 도입하며 독립큐레이터라는 개념을 창안해 내었고, 비엔날레를 시대정신이 표출되는 장으로 올려놓았다.’(한지희, 「강박의 미술관」, 『아트인컬쳐』, 2018.3)     

최근 막을 내린 <강원국제비엔날레>와 <제주비엔날레>는 신생 비엔날레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자는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을 명확하게 보여준 전시였고 후자는 비엔날레가 당면한 현실적 한계를 민낯으로 드러낸 경우로 평가되고 있다. 

우선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을 주제로 내건 <강원국제비엔날레>는 선과 악의 두 개념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지점에 주목하여 어떤 사건의 역사적 의미가 해체되고 재정립되는 상황을 정교하게 보여주었다. 주최측은 제주 4‧3과 강정 해군기지를 둘러싼 분쟁을 비롯해 전쟁, 기아, 인종차별, 여성억압 따위의 이슈가 지닌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맥락에 주목하는 작가들의 작업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 조직위원회를 통해 선임된 전시총감독과 3명의 큐레이터들 간의 협업과 논의의 과정이 전시를 통해 잘 드러났고, 정치적 이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공무원들과의 입장 차이를 조율해 온 기획력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주비엔날레>는 권력에 충성을 보이는 전시였다는 점에서 아쉽다. 주최측이 내세운 주제인 <투어리즘(Tourism)>은 관광지 제주의 도정에 바치는 공허한 헌사였다. 일 년도 안되는 무리한 준비기간과 도립미술관 중심의 폐쇄적 조직, 그리고 문화계와의 소통이 배제된 운영방식으로 추진된 비엔날레는 ‘최악의 비엔날레’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도 내외 언론의 반응은 냉담했고 도내 미술인들의 태도는 무관심 자체였다.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 등의 기관에 힘입어 출범에는 성공했으나 바로 그 이유로 인해 비엔날레가 지켜야 할 권력의 시선으로부터 팔거리를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1회 행사를 마친 <제주비엔날레>는 실험대 위에 놓여 있다. <제주비엔날레>의 미래는 비엔날레의 조직과 운영 방식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비엔날레가 해당 지역 관료들이나 특정 이데올로기의 종이 되어서는 건강한 미래가 없다. 비엔날레는 깨어있는 정신으로 동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문화적 쟁의장치가 되어야 한다. 제주비엔날레가 ‘저예산으로 작고 강한 비엔날레’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비엔날레의 본성과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다. (서울아트가이트 201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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