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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종교조각의 과제

김영호

한국 가톨릭 종교조각의 과제      

김영호 (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종교와 예술은 역사 속에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한국 가톨릭 종교미술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사를 보면 가톨릭 종교미술은 건축과 더불어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90년에 준공된 명동의 주교관과 1892년의 약현성당, 그리고 1898년의 명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건축의 효시이자 가톨릭 종교미술의 유입에 큰 역할을 했다.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이들 성당과 부속건물들은 서양의 교회건축 양식으로 지어졌고 그 내부 역시 서구 양식의 성상과 성화들이 자리 잡았다.    
한국인 미술가들의 손에 의해 가톨릭 종교미술품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이후였다. 일제 강점기에 동경미술학교에서 유학 했던 장발, 윤승욱, 김종영, 이순석 등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종교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 모두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설립된 서울대 미대에 교수직을 맡게 되면서 가톨릭 종교미술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제자들인 김세중, 최종태, 최의순, 임송자, 이춘만 등은 한국 가톨릭 종교미술의 2세대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최봉자, 김미영 등의 유학파 수녀작가들과 요절한 장동호 등도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은 전국에 들어서는 성당과 수도원 그리고 성지에 십자고상, 예수성심상, 성모상, 성가족상, 14처 등의 작품들을 남겼다. 
가톨릭 종교미술은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국 근대미술 100년 남짓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창작과 비평에 있어 가톨릭 종교조각의 가치를 ‘영성과 기도’에 종속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변화하는 시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서구모델에 일방적으로 경도되고 모방하는 수준을 거의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톨릭 종교가 이 땅에 정착되는 과정에서 토착화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 자리한 <김세중미술관>에서 ‘한국 가톨릭종교조각의 미의식’을 살펴보는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에는 앞서 열거한 여덟 작가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독자적인 조형성을 영성에 융합하기 위한 작가의 예술의지가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김세중의 작품이 지닌 절제된 형태와 조형적 완결성, 최종태의 간결하고 단순한 선의 사유, 최의순의 암묵적 도상과 물질의 섬세한 정신성, 임송자의 숭고한 사실주의 미학, 이춘만이 개발한 굵고 강한 형태미 등은 과연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또한 최봉자 수녀의 단순성과 친밀성에 근거한 소박성, 김미영 수녀의 실존적 영성미학의 표상, 장동호의 작품에 드러나는 투박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날카로운 정신성에서 한국인의 독자적인 미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미지는 초월적인 신성을 표현하는데 더없이 귀한 산물이다. 성당에 설치된 파이프 오르간이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숭고미를 감각적으로 드러내듯 종교 미술품들은 궁극적으로 신이 창조하신 세계를 경험적으로 찬탄하게 해 준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의 정도를 높이기 위해서 요구되는 정신적 감응의 장치가 이른바 토착화인 것이다. “한국 교회는 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라는 비아냥이 있다. 가톨릭 종교가 한국이라는 토양과 정신문화 속에 깊게 뿌리내리기 위해서 할 일이 많다. 그 중 가톨릭 종교조각의 토착화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좀 더 신중하고도 심도 있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8.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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