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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광주비엔날레 소감

김영호

제12회 광주비엔날레 소감          

김영호(미술평론가, 중앙대교수)

 ‘형식의 빈곤과 이념의 과잉’. 제12회 광주비엔날레를 돌아보고 난 소감이다. 이 개인적 평가는 비단 올해 광주비엔날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모든 회기의 광주 행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비엔날레 대부분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벽면에 부착된 다양한 인쇄물과 공간을 채운 오브제들은 ‘예술’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 관객들에게 당혹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질문한다. 도대체 어디에 예술이 있는가? 예술은 이념의 시녀인가?  
   제12회 광주비엔날레가 쏟아내는 이념은 무엇인가. 팸플릿의 첫 페이지를 열면 유토피아, 모더니즘, 정부관료, 도시환경, 사회적 진보, 정치적 흐름, 이데올로기, 집단 정체성 따위의 개념들이 보인다. 이 단어들은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상상된 경계들>을 설명하는 빙산일각일 뿐이다. 비엔날레가 채택한 본전시의 7개 섹션과 11명의 큐레이터들이 홍보물을 통해 제시한 이슈들을 뽑아본다면 현대 지식사회의 사전처럼 다양하다. 국민국가, 지정학적 복잡성, 이민, 이주, 국경과 사회통제, 인도주의, 종말, 포스트 인터넷, 행동주의, 쇼설 미디어, 거짓된 이데올로기, 시위문화, 충돌하는 경계들, 난민의 위기, 정치사회적 행동주의, 극단적 분열, 생존의 기술, 대칭적 상상력의 붕괴, 성적 교환과 수탈, 군사적 집결지.... 쓰나미 같이 밀려오는 이념의 파장 앞에서 관객들은 혼란스럽다. 유독 비엔날레 본전시의 마지막 섹션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한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가 관객들에게 낯선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이유는 형식의 빈곤과 이념의 과잉의 역전된 상황을 여기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념의 빈곤과 형식의 과잉!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형식의 빈곤과 이념의 과잉’ 현상은 미학자 헤겔이 일찍이 주장했던바 ‘예술의 종말’ 상황을 떠오르게 한다. 이념이 형식을 앞질러 저만치 달아남으로써 ‘예술’은 균형을 상실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엔날레는 현대미술을 운반하는 매체로 성장하면서 예술의 종말에 비견되는 현대미술의 해체상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제 비엔날레에서 예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사치스런 일일까? 이념의 도구로 편중되어가는 비엔날레 증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는 이러한 비엔날레의 상황을 비관할 필요는 없다. 비엔날레가 담당하는 영역은 미술관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된다. 태생에서부터 비엔날레는 정치적 쟁의의 장치이고 시대가 토해내는 이념을 먹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내세웠던 주제인 <경계를 넘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995년 당대의 상황에서 ‘경계’란 양분된 이질적 힘의 사이를 말한다. 광주비엔날레는 이원론적 세계관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들에 주목하고 이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는 지구촌의 예술가들을 한 장소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예술과 정치 사이의 생산적 역학관계를 실험하는 문화적 쟁의장치로서 성장해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14개의 국제 비엔날레를 보유한 천국이 되었다. 그것들은 세계화와 지정학적 경계, 지역의 정체성과 보편성, 인종과 종교의 분리와 대립, 유목주의와 디아스포라 따위의 주제를 다룬다. 비엔날레가 예술의 형식을 소외시키며 이념의 무게를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볼 일이다.(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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