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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뒤샹의 변기

김영호

마르셀 뒤샹의 변기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시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마르셀 뒤샹>전(2018.12.22-2019.4.7)이 열리고 있다. 때 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전설적인 뒤샹의 원작들을 직접 볼 기회가 주어져 반가운 일이다. 20세기 미술의 향방을 단숨에 굴절시켜 놓았던 남성용 소변기 <샘>(1917)을 비롯해 <자전거바퀴>(1913)와 <병건조기>(1914) 등의 오브제가 전시되고 있다. 유화 작품인 <계단을 내려가는 나체 No.2>(1912)와 <뒤무셸 박사의 초상>(1910)도 함께 들여왔다. 납을 주원료로 그린 <큰 유리>(1915-23)와 에로티즘 논쟁을 야기한 <에탕 도네>(1946-66)가 빠진 것은 아쉽지만 디지털로 재현해 놓았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상 최고가에 구입한 <여행가방 속 상자>도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다. 뒤샹 자신의 대표작 69점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모아놓아 ‘뒤샹의 종합선물세트’로 불리는 작품이다. 
  초현실주의 대부 앙드레 부르통이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이라 추앙했던 뒤샹은 지구촌 미술계에 하나의 완결된 역사 혹은 신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인물이다. 그에 관한 논문들이 수천편이 나와 있으며 그에 관한 에피소드가 빠진 현대미술 이론서란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금부터 33년 전 필자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 것도 뒤샹에 대한 의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1960년대 오브제미술’로 정하고 프랑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주창한 ‘누보레알리즘’을 연구하게 된 것도 뒤샹과 그의 땅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귀국 후에는 뒤샹에 관한 전기 <뒤샹 나를 말한다>(한길사)를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던 것이다. 
  뒤샹은 누구인가? 학계에서는 그를 “모순과 혼돈으로 가득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좁은 통로”라 말한다. 뒤샹 자신이 제시한 변기에 <샘>이라는 제명을 붙여 놓은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의 ‘레디메이드’ 시리즈는 새로운 예술개념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기존의 예술개념을 부정하고 전복하는 것이었다. 뒤샹의 행보가 역설인 이유는 그가 시도했던 반미학과 반예술의 시도가 새로운 예술을 위한 미학과 예술이 원리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그로부터 야기된 반미학과 반예술의 태도는 포스트모던의 해체주의 미학을 비롯한 예술종말론의 원천이 되었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세우기 위한 핵심 원리가 되었다. 뒤샹의 오브제는 20세기 미술에 새로운 계보를 만들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콜라주에서 네오다다,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아르테 포베라, 대지미술, 개념미술에 이르는 20세기 미술사의 얼개가 뒤샹이라는 좁은 통로를 거쳐 이해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뒤샹의 변기는 미술의 개념뿐만 아니라 창조의 개념 자체를 해체시켰고 미술관과 미술시장 그리고 미술제도와 미술기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야기했다. 전시장으로 옮겨다 놓은 변기가 예술작품이 된다면 세상의 모든 기성품들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변기가 미술관 컬랙션으로 구입되어 들어온다면 기존의 미술관 소장품들의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술시장에서 기성품 변기가 거래된다면 그 저작권자는 누구인가? 뒤샹은 20세기 미술을 모순과 혼돈의 영역으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변기가 여전히 많은 관객들을 동원시키는 것을 보면 인간세상은 참으로 오묘하다. (출처: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19.1.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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