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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식 / 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 뮤지엄을 찾다

김영호



김홍식 / 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 뮤지엄을 찾다



김영호 | 예술감독, 중앙대 교수


플라뇌르(Flâneur)는 ‘한가롭게 거니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말이다. 상징주의 문인 보들레르가 1863년 <르 피가로>에 기고한 「근대적 삶의 화가」라는 글에서 ‘체험하기 위해 도시를 걷는 사람’으로 새 의미를 부여한 이래 이 말은 미술계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제2제국의 강력한 국가통제적인 경제정책 아래 도시가 팽창하던 시기, 플라뇌르는 근대적 도시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검은색 정장과 중절모에 우산과 지팡이를 든 파리지앵의 모습은 인상주의 그림에서 종종 등장한다. 이후 독일 철학자 벤야민이 보들레르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고 플라뇌르를 여러 유형으로 분석하면서 급기야 ‘근대 도시의 대중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벤야민의 에세이에서 플라뇌르는 자유로운 시선으로 군중 속에서 고독을 즐기는 보헤미안이자, 근대 도시의 획일성과 익명성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비판적 관찰자로 묘사되었다. 이 도시 산책자들은 자본의 상징인 아케이드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와 명품 샵이 늘어선 거리, 혹은 군중으로 채워진 광장을 배회하며 욕망의 도시를 소비한다.  
    
김홍식은 2011년 개인전 이래 ‘플라뇌르’를 주제로한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작가가 이 도시 산책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현대 도시와 그 안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 대한 성찰의 방식을 플라뇌르라는 인물상에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이라는 역사도시와 그 안을 사는 다양한 유형의 삶을 관찰하고 표상하는 일은 현실을 사는 예술가에게 주어진 마땅한 소명일 것이다. 작가는 작업노트에서 도시에 대한 소견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도시는 현상 사이의 명확한 경계 없음,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의 혼용이 난무하는 공간이다.” 김홍식은 플라뇌르의 역할을 자처함으로써 스스로 도시의 관찰자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플라뇌르. 텍스트로서의 도시를 서술한다. 자연과 문화, 현대와 신화가 얽힌 변증법적 의미 공간인 대도시를 역사적 기억뿐 아니라 도시인의 자아와 삶의 추구라는 내재한 사적인 측면을 드러내며, 기록된 현재와 과거를 기억을 통해 채집하여, 작품 외부에 가시적인 각인의 과정을 드러냄으로 기억의 형상화를 실현하고자 한다.”

이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초대기획전에서는 김홍식의 플라뇌르 시리즈들을 모아놓았다. 좀 더 정리해 말하자면 ‘뮤지엄을 찾은 플라뇌르’가 이번 초대기획전의 중심 컨셉이다. 시인 보들레르와 철학자 벤야민의 시선으로 도시의 일부인 뮤지엄을 바라보자는 것이다. 김홍식의 작품에 등장하는 뮤지엄은 프랑스의 루브르와 오르세 그리고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이곳을 찾은 플라뇌르들의 모습과 행동은 다채롭다. 카메라와 휴대폰을 들이대고 인증샷을 찍거나 상기된 표정으로 서둘러 전시실을 돌아다니거나, 아니면 조용히 작품 속 인물과 묵언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들의 모습과 행동은 지금 이곳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의 그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김홍식이 내놓은 플라뇌르 연작에는 다양한 시간대와 공간 그리고 무수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명작이 작품 소재로 채택된 사연과 그 명작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독특한 행동의 원인들 그리고 이 두 개 혹은 세 개의 시간대가 하나로 겹쳐 어우러지면서 소환되는 과거의 기억들이 거기에 있다.  

김홍식이 이번 전시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는 <일곱 맹인의 테이블> 시리즈를 통해 암시적으로 파악된다. 전시장 한가운데 늘어선 일곱 개의 테이블 위에는 점자책 형식의 동판 텍스트가 각각 놓여 있다. 그 내용은 라틴어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고대의 유물처럼 깨어진 문자로 제시되어 해독이 쉽지가 않다. 그것은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 관객들에게 그것은 언어로 표현된 진리에 대한 상징적 혹은 알레고리적 해석만이 가능할 뿐이다. 바벨의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 일곱 맹인의 손에 의해 파악되는 실체는 저마다 다르게 읽혀지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작가는 진리와 그 표상들에 의문을 제기한다. 작가는 진리가 그저 언어로 규정된 개념일 뿐임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문득 노자가 떠오르는 것은 흥미롭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이름 지어진 이름은 항상하는 이름이 아니다’. 동시에 ‘문화란 언어로 짜여진 상징계’일 뿐이라는 라캉의 주장도 동시에 떠오른다. 결국 플라뇌르를 자처하는 작가가 바라보는 뮤지엄은 맹인의 테이블 위에 놓여진 세계처럼 관찰자에 의해 생멸변화하는 유기적 실체임을 말하려는지도 모르겠다. 그 뮤지엄의 실체에 대한 가치의 판단은 물론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뮤지엄 시리즈와는 별도로 종교적 주제를 다룬 대작 시리즈 4점이 소개된다. 1925년과 1968년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각각 거행되었던 <79위 순교자 시복식>과 <24위 순교자 시복식> 두 점과, 1984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1984년 103위 시성식>과 2014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14년 124위 시복식> 두 점이 그것이다. 일제 강점기라는 제한된 상황에서도 바티칸에서 한국인 순교자 시복식이 거행된 것은 한국 교회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비록 세 명의 한국인만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하지만 이 시복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으로 이어졌으며 마침내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에 의해 여의도 광장에서 103인 복자들 모두가 성인품에 오르게 되는 성취를 거두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위상은 계속해 커지면서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에 의해 124위 순교자가 복자품에 오르는 성과로 확산된다. 이번 전시회에 뮤지엄 시리즈와 시복시성 시리즈가 한 전시 공간에 모이게 된 것은 뮤지엄과 성전 그리고 광장 사이에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본론을 말하자면 이번 기획전의 컨셉은 뮤지엄(성전과 광장)을 바라보는 군중의 시선에 대한 질문이다. 플라뇌르의 시선으로 바라본 뮤지엄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뮤지엄은 전통적으로 축성과 권력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뮤지엄의 어원이 고대 그리스 문예의 여신 뮤즈(Muse)에게 봉헌한 신전인 무제이온(Mouseion)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축성과 권력의 공간으로서 뮤지엄은 유럽의 역사를 거치며 다양한 공간들을 창출했다. 르네상스시대의 스투디올로(Studiolo)나 트리부나(Tribuna) 같은 방은 무기, 도자기, 메달, 지도, 수학도구, 천체관측 기구 등을 수집하고 그 안에 숨겨진 지혜와 과학을 정치에 활용했다. 절대왕정의 시대로 접어들어 탄생한 캐비넷(Cabinet)이나 쿤스트캄머(Kunst Kammer) 따위의 밀실 역시 우주와 자연의 비밀을 지식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 루브르와 같은 근대적 뮤지엄이 등장한 이후에도 뮤지엄은 축성과 권력의 공간으로 오랜 세월 동안 지배계급을 위한 장치로 기능해 왔다. 뮤지엄은 근대정신의 실현 혹은 ‘근대성을 비추는 거울’임을 자처했지만 서구중심의 제국주의 전통은 자본주의의 물결 아래로 견고하게 흐르고 있었다.  

프랑스 철학자 이브 미쇼는 근대적 뮤지엄이 처한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평문 「현대미술과 미술관: 결산」에서 그는 축성과 권력의 공간으로서 ‘과거의 뮤지엄’의 영역에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뿐만 아니라 구겐하임, 휘트니, 뉴욕근대미술간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유명 뮤지엄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들 뮤지엄이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전위의 미명하에 전투적으로 새로움을 추구해 온 뮤지엄이 대중을 고립된 엘리트주의로 몰아넣었고 자본과 상업주의로 파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진단이다. 19세기 후반에 보들레르가 마주하고 20세기 초에 벤자민이 제시한 근대도시와 대중문화의 위기가 20세기 말에도 지속되고 있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근대 도시의 연장선에 서 있는 현대 도시, 그리고 그 기억과 역사를 저장하는 뮤지엄의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21세기 새천년도 20년이 흐른 지금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답해야 한다. 

지구촌의 뮤지엄 전문가들의 모임인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2020년 ‘세계박물관의 날’ 기념 학술대회의 화두를 <평등을 위한 박물관 :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정했다. 158개 국가 및 지역이 동참하는 이 행사를 통해 오늘날 뮤지엄에게 부여된 소명이 평등과 다양성 그리고 포용성이라는 키워드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의 뮤지엄의 가야할 방향성에 대한 지표가 되고 있다. 과거의 축성과 권력의 공간으로 작동하던 차원에서 벗어나 관계와 소통의 장소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박물관은 점차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로서 불평등과 편견 그리고 배타성 따위의 문제들에 대해 성찰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 공동체와 협력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기획한 김홍식 초대기획전은 변화하는 뮤지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실천적 방법으로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들어온 관람객에게 플라뇌르의 역할을 제안한다. 관람객 여러분이 도시의 산책자, 플라뇌르가 되어 뮤지엄을 둘러보고 작품 속의 관람객을 관찰하는 관람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길 권한다. 오늘날의 뮤지엄이 여전히 축성과 권력의 공간인가? 아니면 소통과 나눔 그리고 성찰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가? 전시장을 돌아보고 문을 나설 무렵 우리는 플라뇌르의 존재를 나 자신에게서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1차 게재 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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