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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일 / 실존의 서사 - 구원의 노래

김영호



오상일 / 실존의 서사 - 구원의 노래



김영호 | 예술감독, 중앙대 교수

  예술은 삶의 흔적이고 전시는 삶의 결실인 작품에 의미를 입히는 일이다. 예술이 작가가 속해 있는 시공(時空), 즉 시대와 환경에서 연유된 것이라면 전시는 작품을 통해 시대정신을 규명하고 함께 나누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출범 1주년을 맞아 마련한 <중견작가 초대기획전> 시리즈는 현대미술 전시를 통해 박물관의 설립목적에 부응하려는 기획사업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이 초대기획전이 우리나라 근대기의 시작이라 불리는 조선 후기 이후의 사상사 정립을 목표로 탄생한 박물관의 정체성을 현대사의 맥락으로 확장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되기를 바란다. 오상일 초대기획전 <구원의 노래>는 이 야심찬 시리즈의 두 번째 전시회다. 
    
  올해 칠순을 맞는 조각가 오상일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함께 시작되었다. 전쟁의 포성이 한반도를 뒤흔들던 1950년 평안남도 진남포의 어느 방공호에서 태어났고, 100일 무렵인 1951년 1·4후퇴 때 모친의 등에 업혀 황급히 철수하는 미군함정에 몸을 실었다. 피난민의 신세로 부산과 제주 그리고 거제와 진해 등지를 떠돌며 보낸 것이 오상일의 유년기였다. 전쟁둥이와 피난둥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국한되어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사는 남달리 가혹했다. 진남포 부두의 북새통에 형과 누이, 네 명을 남겨놓고 나머지 가족 네 명이 떠나온 것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이산의 비극적 상황은 가족과 함께 생활할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앗아가 버렸다.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오상일이 대학에서 불문학을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자신이 인문학 세계에 들어서게 된 이유를 ‘삶의 본모습을 비극적인 것으로 이해하면서 성장했고 그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라 적고 있다. 그리고 고려대에서 프랑스 사상과 문화에 심취하게 되었고 머지않아 문필의 세계를 넘어 치열한 몸의 노동을 요구하는 조각가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이태리 유학을 거쳐 전업 작가로 일흔이 되는 세월 동안 그는 자신이 겪은 실존적 삶의 서사를 조각으로 표현해 내는데 천착해 왔다.     

  이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개인전은 오상일이 조각가로 데뷔한 이래 자신이 일구어 온 예술적 성향들을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다음과 같은 세 개의 마디로 정리된다. 재현 원리에 근거한 고전적 인체조각의 성향, 근대적 인체조각의 물성에 실존적 사상을 가미한 작업 성향, 그리고 인체를 기반으로 문학적 수사법인 상징과 알레고리를 도입한 설치작업의 성향이 그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성향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는 일관된 하나의 원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른바 ‘문학적 서사성’이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문학성을 바탕으로 한 구상적 조각’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의 작품 전반에는 비극적 한국 현대사의 시공간에 대해 성찰하고 대응하며 살아온 인생의 무거운 색채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가 그의 조각 작품 앞에서 불안, 고뇌, 욕망, 상실, 슬픔, 폭력, 구원 따위의 단어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단어들은 작가의 작품이 불문학도로서 오랫동안 천착해 온 실존주의 사상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추측케 한다. 

  실존주의는 세상에 홀로 던져진 존재로서 인간은 무한한 자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 자유의 대가로 치루어야 할 값이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그 값을 ‘두려움과 떨림’이라 말한다. 이 자유와 두려움이 교차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를 세계와 연결해 느끼며 스스로 경험하고 창조하는 일이다. 창조적 활동으로서 예술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결국 실존주의자들에게 예술은 실존적 자유와 그 대가로 치루어야 할 실존적 고뇌 사이에 나타나는 부조리에 대해 성찰하는 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으로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 즉 실존적 자아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창조적 활동, 이것이 실존주의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소명이라 할 수 있다. 

  오상일의 작품에 나타나는 실존주의 사상은 격변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삶을 지탱해 온 에너지로 작동해 왔다. 그것은 전쟁의 폐허와 가치관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짧은 기간에 높은 경제 성장과 정치의 민주화를 이끌어 온 정신적 힘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실존주의 사상이란 한국 현대사의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삶의 속성을 극복하고 창조적 활동을 유지케 해 온 원천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오상일의 작품에 나타나는 불안과 고뇌의 색채는 개인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맥락에서 다루어질 가능성이 주어진다. 결국 오상일의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비극적 서정은 타락한 현세와 속죄 그리고 구원의 세계에 대한 상징적 표현의 결실이자, 이러한 요소들이 이번 초대전에서는 종교적 차원의 연출방식으로 표상되고 있다. 
 
  오상일 초대기획전 <구원의 노래>는 모두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2층에 자리한 기획전시실의 내부 동선을 따라 설치한 일련의 작품군에는 각각 ‘실낙원’과 ‘심판’ 그리고 ‘복락원’이라는 제명이 붙어있다. 

  우선 첫 번째 파트인 ‘실낙원’은 문자 그대로 낙원의 상실 상황을 연출한 공간이다. 나무둥치가 절단된 채 바닥에 널려 있고 절단된 토막에는 라틴어로 인골의 부위 명칭들이 새겨져 있다. <나무를 위한 레퀴엠>이라는 제명이 붙은 이 작품의 중심에는 나무의 정령이 서 있고 그 시선이 향하는 지점에 비디오 영상 이미지가 돌아가고 있다. 오염된 도시와 파괴되고 있는 생태 이미지다. 오염과 파괴의 상황은 같은 전시실 공간 벽면에 세워진 한 인물의 주검으로 이어진다. 예수를 팔아넘긴 자책에 스스로 목을 매단 <가리옷 유다>의 모습이다. 가리옷 유다의 죽음 통해 작가는 오염과 파괴의 상황이 자연을 넘어 인간의 영역으로 넘어옴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 ‘실낙원’ 파트는 기획전시실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박물관 내부의 다양한 공간으로 확대되어 있다. 지하 1층에 복도 바닥에 자리한 <섬> 시리즈와 지하 3층의 상설전시장 안쪽의 ‘보이드 공간’에 자리한 <그리고 포옹하지 않았다>라는 제명의 인물상은 모두 실낙원의 범주에서 전시된 작품들이다. 섬 시리즈는 40개의 고립된 섬을 나타내는데 각각의 섬 상부에는 인물이 홀로 서 있으며 가슴에는 등대처럼 불빛이 명멸하며 존재성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리고 포옹하지 않았다>는 철재 문을 앞에 두고 마주 서 있는 두 인물상이다. 

  두 번째 파트인 ‘심판’은 일곱 명의 군상이 마주 보며 들고 있는 원탁과 그 원탁의 중앙에 서 있는 조그만 인물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군상의 높이가 각각 210cm, 원탁의 직경이 300cm에 달하는 이 대작은 이번 전시회를 위해 새로 제작한 것이다. 푸른 색채를 입힌 일곱 명의 군상은 각각 일곱 개의 죄악인 교만(Pride), 인색(Greed), 시기(Envy), 분노(Wrath), 음욕(Lust), 식탐(Gluttony), 태만(Sloth)을 관장해 심판하는 상징적 도상들이다. (가톨릭에서 규정하는 칠죄종(七罪宗)에서 죄는 상기한 감정들로 인해서 일어나는 악한 행동이라 보고 있다. 가령 분노는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폭행과 살인, 전쟁으로 나타날 때 죄가 된다.) ‘심판’은 앞서 언급한 ‘실낙원’과 뒤에 소개할 ‘복락원’을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세 번째 파트인 ‘복낙원’은 세 마리의 백마와 모자상 그리고 다수의 천사상으로 연출되어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숲을 연상케 하는 식물들 사이에 여유롭게 배치되어 에덴의 동산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설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문학성을 바탕으로 한 구상적 조각’이라는 작가의 조형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전시의 백미를 이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등신대 크기의 대천사상이다. 그늘 속에 배치된 대천사상은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실낙원과 심판 그리고 복락원의 세계를 묵묵히 주시하고 있다.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대천사’로 불리는 라파엘로 해석할 수도 있는 이 대천사상은 작가가 이번 개인전이 지닌 ‘문학적 서사성’의 상황을 함축적으로 암시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의 시선은 어쩌면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상일 초대전은 이처럼 철저하게 계획되고 연출된 한 편의 연극처럼 다가온다. 전시장이라는 무대 위에 다양한 시간과 공간의 상황을 정지시켜 보여주는 4차원적 연극이다. 에덴에서 현대에 이르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함축적으로 연출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오상일 초대기획전 <구원의 노래>에 담긴 서사적 의미와 표상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가 되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인생 노정의 가치를 선과 악, 현세와 내세, 이상과 현실, 죄와 벌 등의 갈래로 이분하고 있다. 이러한 이원론적 관점과 그 표상 방식은 관찰자인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요구한다. 삶의 주체로서 우리 자신에게 선과 악, 현세와 내세 등의 개념은 분리된 혹은 분리되어야 할 가치나 영역인가 하는 질문이다. 현재를 살고 있을 뿐인 우리에게 미래의 세계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질문도 가능하다. 이러한 질문들은 실낙원과 복락원의 세계는 서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영역인가 하는 질문과 맥락을 같이 한다. 지금 이곳이 천국이고 지옥이며, 현실 속에 미래가 있으며, 이별과 만남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일까. 이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기획한 오상일 초대기획전 <구원의 노래>는 이렇듯 관람객들에게 숱한 질문을 던져 주고 있다. 물론 답은 관람객 스스로가 알아서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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