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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존재목적’ 훼손하는 법안 통과 곤란

김영호



박물관의 ‘존재목적’ 훼손하는 법안 통과 곤란

김영호 / 한국박물관학회 회장, 중앙대 교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하 ‘박물관미술관법’) 개정 움직임으로 박물관계는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회 배현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의 골자는 ‘박물관은 사업을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박물관 자료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대출·열람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정안의 배경을 보면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국회의원의 지역구에 있는 <송파 책 박물관>이 등장하는데, 해당 지역의 주민을 비롯한 일반인들이 박물관 소장유물인 책을 쉽게 대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상식 밖의 제안이다. 박물관은 도서관이 아니다. 박물관의 목적과 설립 취지에 부합해 수집된 자료는 박물관에서는 소장유물이 된다. 따라서, 소장품을 대출·열람하자는 것은 박물관의 기초적인 기능과 역할을 부정하고 존재의 핵심가치를 훼손하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반 박물관적 제안이 나오게 된 배경을 좀 더 따져보면 의도는 대출과 열람을 통해 국민의 학습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진열장 안에 전시된 귀한 책들의 내용을 대부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법 발의의 동기와 목적은 유물로서 책을 대출하는 차원이라기보다는 그 책에 담긴 내용을 열람하는 데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해당 책 박물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박물관에는 책을 비롯한 기록자료가 박물관 소장유물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서지류들을 해제·해석하여 국민에게 보급하는 사업은 사실상 접어두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력도 부족하지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법 개정과 지원정책을 마련하는 일은 필요하다.

  현행 ‘박물관미술관법’ 제4조에는 박물관 사업을 7가지로 구분하여 명시하고 있다. 그중에 박물관 자료를 대상으로 한 것이 6가지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번 개정 취지를 충족할 수 있는 내용도 다수 있다. ‘자료에 관한 전문적·학술적인 조사·연구’, ‘자료에 관한 강연회, 강습회, 영사회, 연구회’, ‘자료에 관한 복제와 각종 간행물 제작과 배포’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기록자료에 관한 해제, 번역을 통한 보급’ 정도를 신설하면 될 것이다. 

  이 같은 신설 항목은 책 등의 실자료를 간접 활용하자는 것으로, 박물관의 입장과 법 개정의 취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국공립박물관은 이 항목의 추가로 예산확보와 사업추진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전체 박물관의 50%가 넘는 사립의 경우가 문제다. 하지만 ‘박물관미술관법’ 제24조(경비 보조 등)에서 ‘등록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하여는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예산의 범위에서 보조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어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정부의 지원책을 ‘기록자료의 해제와 번역, 보급 부문까지 확대’하면 될 것이다. 

  이번 논란이 국회의원의 발의 취지에 부합하고, 박물관에서는 기록자료의 유물적 가치를 새로이 발견하며, 국민에게는 기록자료의 소중한 내용을 공유케 하는 제도적 장치로 변주되어 박물관의 기능과 역할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차 출처: 대한경제신문, 20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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