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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훈 / 비의 메타포

김영호



김강훈 / 비의 메타포  


김영호 | 미술사가, 중앙대교수

최근 김강훈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는 비(雨)다. 자연 현상으로서의 비를 회화적 실험의 주제로 삼고 있다. 작가가 비에 관심을 갖게 된 사연은 나름 있을 터이지만 그저 풍경으로서 비를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떤 상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은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비의 메타포’가 김강훈의 비 그림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작가는 비를 통해 자연 현상의 본성과 순환의 원리에 대해 성찰하고, 그 자연에 머무는 존재들의 유기적 속성과 변화상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의미들을 표상하기 위한 조형의 방식과 표현 기법에 대해 치열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예술 노정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비평의 키워드는 물, 파동, 입자 등 ‘비의 현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비의 현상을 그림으로 나타내기 위한 ‘비의 조형’,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파생되는 ‘비의 상징’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비와 더불어 살아가는 작가 자신과 우리 모두의 존재에 관한 성찰로 귀결될 것이다.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이다. 오묘하게도 이 물은 하늘에서 내려 오지만 하늘을 향해 거슬러 오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태양과 지열(地熱)의 도움으로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상승하게 된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듯이 내리는 물에는 공기보다 가볍게 변신하는 기화(氣化)의 능력이 있다. 이 신비의 능력은 곧 자연의 유기적 순환 법칙이라 불리운다. 하늘과 땅 사이를 내리고 오르는 물은 생명을 잉태시키고 성장하며 살아가게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물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부른 것은 유기물의 합성을 도와 자연의 생명 현상을 견인하고 만물을 존재케 하는 근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선인들이 비를 천상수(天上水)라 불렀던 것도 이유가 있다. 비에서 개인과 집단의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을 가늠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우제를 비롯한 민간 신앙과 전설과 신화의 주제로 작용해 오기도 한 비는 그래서 예술가들의 창조적 영감을 불러 일으켜 왔다. 화가 김강훈의 그림에 등장하는 비는 그래서 비의 물이자 생명의 물이며 삶을 지탱하는 원천으로 다가온다.         

내리는 비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중력이라 부르는 자연 속의 힘을 다양한 모습으로 쏟아져 내리는 비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렇게 낙하한 비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표면을 두드려 자극한다. 웅덩이를 비롯해 연못과 강과 바다의 표면에 떨어진 빗방울이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에너지가 발생하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비의 에너지는 고인 빗물의 표면 위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대지와 그 위에 자라는 생명들, 예를 들어 나뭇잎과 이끼의 표면을 보듬어 생명 현상을 유지토록 한다. 크고 작은 들짐승의 몸도 가리지 않는다. 때로는 에너지가 축적되어 언덕을 허물고 산사태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물길이 커져 세상을 덮친 대홍수는 재앙과 종말을 알리는 종교적 메시지로 기록되어 왔다. 이렇듯 비는 자연의 비밀을 전해 온 전령사(傳令使)였다. 김강훈의 비그림은 이러한 비의 비가시적인 에너지를 파동이라는 동심원의 형태로 화폭에 옮기고 있다. 화면에 점과 선으로 묘사된 빗줄기와 파동들은 전장의 궁수부대가 쏘아올린 화살비처럼 에너지가 넘친다.            

빗물은 자연의 실체가 축약된 세계다. 빗물이 만들어낸 연못과 강과 바다가 이를 증명한다. 빗방울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물이란 존재의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인 원자(原子)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탈레스의 철학적 주장이 다시 떠오른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물의 실체를 과학적 맥락에서 정합하게 설명할 수 있다. 물이란 두 개의 수소와 하나의 산소가 결합된 존재, 즉 H₂O라 규명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구에 존재하는 사물의 95% 이상이 다음의 4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탄소(C), 수소(H), 산소(O) 그리고 질소(N)가 그것이다. 과학자들은 인체의 70% 정도가 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 몸의 70% 정도가 수소와 산소라는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김강훈의 비 그림은 단지 비의 그림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있다. 비의 메타포는 해석의 무한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의 비 그림은 자연의 유기적 순환의 구조와 융합의 현상 그리고 유기적 융합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생명 현상과 존재의 실체를 이해하는 차원으로 다가설 수도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김강훈의 비 그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주제적 측면과 이를 통해 다가서게 되는 은유적 메시지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김강훈의 비 그림이 궁극적으로 채택하는 조형 방식과 그 메타포의 형식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 김강훈의 비 그림에는 몇 가지의 조형적 특성이 있다. 우리는 그 형식을 드리핑과 선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작가가 사용하는 기법으로서 드리핑은 비의 에너지와 작가의 뿌리기 행위를 연결하는 요소다. 낙하하는 빗방울들이 수면에 부딪히며 파동을 일으키는 현상과 작가가 캔버스 위에 흩뿌린 물감이 표면에 부딪히며 만들어 내는 파동의 현상 사이에는 어떤 일체감이 존재한다. 작가가 겪게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험이라 할까. 이러한 행위는 작가가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비 내림 현상이 작가의 생명 현상에 대한 메타포로 읽힐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신체적 경험 때문이다. 김강훈의 그림에서 비의 에너지는 동심원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뿌려지는 물감 자체의 에너지는 파열된 물방울의 이미지를 통해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작가가 화면에 올린 선묘의 역할은 무엇인가. 붓으로 올린 단선(單線)들은 화면에 어떤 선율을 나타낸다. 가령 수직으로 그어져 내리거나 사선으로 그어진 단선들의 집합은 빗줄기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단선들은 시간성을 품은 점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때 단선들의 방향성은 대기의 흐름을 품은 기호로 작용한다. 가령 수직의 선묘들은 여름의 장대비가 되기도 하고 사선의 선묘들은 겨울 바다에 쏟아지는 폭우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는 이 다양한 표정을 강조하기 위해 동심원을 도입하고 있다. 비의 에너지 즉 비의 파동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김강훈이 사용하는 선묘 방식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단선들이 하나의 소실점 즉 방향으로 쏠려 원근감을 나타내는 경우다. 빌딩에서 내려다보거나 혹은 하늘로 올려다 본 비의 풍경이 연상되게 되는 것은 화면에 설정된 소실점으로 선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때로 이 단선들은 일정한 방향이 아닌 거칠고 자유분방한 터치로 화면에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 때 나타나는 메타포가 바로 폭우다. 폭우가 내리는 바다의 풍경은 마치 추상표현주의자들의 그림처럼 화면에 힘찬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김강훈의 비 그림이 지닌 최상의 가치는 실존의 메타포일 것이다. 실존이란 ‘개별자로서 자기의 존재를 자각적으로 물으면서 본래적인 자기를 구하는 인간의 운동’으로, 주체적인 인간 존재의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어떤 그림이 관객들에게 특정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결국 작품이란 시대와 환경에 대응하는 작가의 관점을 표현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관찰자로서 관객은 작가와는 별도로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추억에 비추어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므로 김강훈의 비 그림에 대한 해석의 가능성은 열어둔 상태로 놓아 두어야 할 것이다. 다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비를 소재로 삼아 작가가 그린 회화적 표현물로서 그림이라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우리가 차창이나 찻집의 창 등 어떤 창을 통해 풍경을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 김강훈의 그림은 기억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창으로 작동한다. 그 창을 통한 해석의 가능성은 이미 위에서 언급했으니 그 실존적 삶의 메타포를 발견하는 일은 관객들 자신에게 맡겨 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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