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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정치 : 러시아의 미술품 조기 반환 요청

김영호



예술과 정치 : 러시아의 미술품 조기 반환 요청   

김영호 | 중앙대 교수, 한국박물관학회장


  시하 서울 세종로에 자리한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러시아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다.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제작된 49명의 문화재급 작품 75점이 선보인다. 러시아 지방의 도시인 예카테린부르크를 비롯해 니즈니 노보고르드, 크라스노야르스크,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진 국립미술관 4곳에서 들여온 작품들이다.    

  그런데 지난 2월 24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며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 문화부는 전시회를 조기 중단하고 작품을 환수하기로 결정하면서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을 통해 집행 명령서를 보내온 것이다. 전쟁 상황에서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라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국내외 언론들은 러시아의 이번 조치가 서방세계의 경제적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분석하고 있다. 

  국내의 전시 주최측인 한국일보는 러시아 문화부의 조치를 받아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치적인 분쟁에 문화예술이 이용되어선 안되며 전시중인 작품 반환의 선례를 남기는 일은 미래의 문화교류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조기 중단할 경우 발생하는 재정적 손실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 러시아 측이 직항 전용기를 검토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전시는 4월 17일까지 계약대로 진행하는 것으로 합의되었다. 

   이번 러시아의 미술품 조기 반환 요청 사태는 정치와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1917년 러시아 혁명기에 생겨난 전위적 예술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 이후 관료화된 소련 정권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찍혀 몰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20세기 초 혁명의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며 다가올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다. 칸딘스키나 말레비치는 대열의 선두에 있었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한 이후 정치인들은 예술가들에게 더 이상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허락하지 않았다. 1934년 채택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을 정치에 귀속시키며 공산당과 노동자를 위한 미술을 강요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이렇게 종식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상황을 다시 한번 역전되었다. 지방 미술관 창고의 그늘 속에 잠들어 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진정 부활한 것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서 자유와 개성 그리고 평등을 위한 혁명의 정신이었다.  

   푸틴 정권의 미술품 조기 반환 명령은 소련 시대의 러시아를 떠오르게 한다. 다행스럽게 주최측의 강력한 거부 의사를 러시아 당국이 수용함으로써 위기를 벗어났으나 이번 사태는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성찰케 하는 하나의 사례로 남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1차게재: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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