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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불의 변주곡 - 조윤득의 도자조각

김영호



흙과 불의 변주곡
조윤득의 도자조각

김영호 |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조윤득은 도자조각의 길을 걷고 있는 작가다. 대학에서 미술교육을,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며 일본의 세라믹센터 연수와 국내 클레이아크미술관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도자예술 세계를 증득했으니 그를 도자조각가라 불러 마땅하다. 모더니즘의 순수혈통주의가 종식되고 장르의 경계를 해체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본격화된 20세기 후반 이후의 다변화된 조형예술 세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조윤득이 거둔 도자와 조각의 융합적 성취는 기대 이상의 것으로 보인다.

조윤득의 도자조각이 지닌 특성을 이념과 형식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 보자. 우선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는 창작의 이념이란 리글의 표현에 따르면 예술의욕(Kunstwollen)에 속하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회의 조건들을 반영하는 예술가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로서 시대성을 비추어 보는 관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태·환경·생명 그리고 자연으로 대변되는 이슈들로, 문명사적 전환기를 사는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과제들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조윤득이 채택하고 있는 조형 형식의 특이성은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흙과 불을 이용한 성형의 과정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도자조각은 흙으로 빗어낸 형상을 오랜 시간 동안 건조시킨 후 불로 구워내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다. 흙의 성형과 완전 건조 그리고 가마를 이용한 소성의 과정은 우연과 필연이 함께 작동하며 과학과 종교적 사유가 융합되고 물질과 비물질의 세계가 하나 되는 시간을 체험토록 해준다. 이러한 작가의 주제 의식과 창작 경험은 곧바로 관객의 감상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최근 조윤득은 자신의 예술의욕을 ‘화산섬’과 ‘곶자왈’이라는 주제에 집중시키고 있다. 모두 제주도에 관한 것으로 대부분 이번 여름에 제작된 신작들의 제작 배경이 되는 화두들이다. 이번 인사동 제주갤러리에서의 개인전은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화산섬 제주와 그 섬을 살아온 제주 사람들의 문화를 오늘의 관점에서 포착해 보여주는 전시라 해도 좋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21세기의 제주도는 몸살을 앓고 있다. 생태·환경·생명 그리고 자연의 위기로 요약되는 위기의 상황은 비단 제주도만의 것이 아니다. 마스크로 걸러내야 숨을 쉬는 오염된 공기와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그리고 온난화에 따른 화재와 홍수 등 위기의 상황은 전지구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조윤득이 내놓은 화산섬과 곶자왈 시리즈는 이러한 재앙적 상황에 대해 성찰을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담론을 불러 일으킨다.  

조윤득이 내놓은 <화산섬> 시리즈는 말 그대로 용암 화산인 한라산과 기생화산인 오름의 모습을 담아낸 것들이다. 우리는 그의 도자조각에서 화산섬 전역에 펼쳐진 현무암의 물성과 그것이 연출해 내는 신비로운 형상들을 발견할 수 있다. 화산의 화구에서 빠져나온 1,000°C 전후의 용암이 만들어낸 오름과 동굴의 이미지 속에서 제주의 시간과 공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흙의 조형과 동일 온도의 가마 소성을 거쳐 완성한 그의 조형 방식이 이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곶자왈> 시리즈는 이 신비스런 돌섬에 형성된 생태계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용암 바위와 그것의 파편 지대인 자갈밭 위에 형성된 곶자왈은 다양한 생태와 생명을 품어 독특한 환경을 일구어 온 영겁의 공간이다. 야생 넝쿨에서 동백나무 군락지에 이르는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된 그야말로 제주의 원형적 공간이기도 하다. 나무뿌리와 돌이 서로 뒤엉켜 자라는 원시림의 모습에서 우리는 생명의 신비와 생태의 경이로움을 본다. 그리고 이 자연을 살아온 제주인들의 치열한 삶의 근원을 추상케 해준다. 화산섬과 곶자왈은 제주의 신화와 무속 그리고 방언을 배태시킨 섬문화의 모태이자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조윤득의 도자조각은 흙과 불이 일구어 낸 결실이다. 흙이 불을 만나 돌이 되는 이치를 담아낸 신비의 창작물이다. 작가가 사용하는 흙의 종류는 제주흙과 조합토로 불리는 것들이다. 제주흙은 철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고온 소성을 통해 완성되는 자기류의 재료로 적합하지 않지만, 유약 처리를 하지 않고도 물을 투과시키지 않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주로 옹기류의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이와 대조적으로 조합토는 샤모트라는 모래질이 섞인 흙으로, 시멘트에서 자갈의 역할처럼 조형물에 강도를 높이고 불에도 잘 견디는 흙이라 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요구되는 성형과 건조 그리고 소성의 방식은 이러한 흙의 성질을 따라 조정되지만 작가가 이들 재료를 통해 표상하려는 창작 배경은 단일한 것으로 제시된다. 앞서 언급한 생태·환경·생명 그리고 자연으로 대변되는 이슈들이 그것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특별히 주목할 작품은 <곶자왈> 시리즈다. 그 중 돌과 나무의 관계성을 나타낸 신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른바 돌을 품은 나무의 다양한 표정들을 형상화한 것들이다. 우리는 이들 작품 시리즈에서 작가의 창작의도를 명확히 감지할 수 있다. 대자연이 운영하는 무한한 에너지와 돌과 나무와 생명 있는 것들이 유기적 관계를 지니며 살아가는 생태계에 대한 경의의 관점이다. 우리가 그의 작품에서 들뢰즈와 가타리가 제시한 리좀(Rhizome) 이론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그의 작업이 이질성과 다양성 그리고 유기성에 관한 사유의 연결고리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윤득의 <곶자왈> 시리즈는 화산섬 제주의 근원이자 그 위에서 독자적인 삶을 일구어 낸 제주인들의 문화적 원형을 상징하고 있다.

도자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조형 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의 실험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대는 그동안 작가가 보여준 다양한 창작 시도와 활동의 성취들이 자신의 고유한 예술세계로 귀결되고 있음을 이번 개인전에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된 실체가 없이 항상 변하는게 무상과 무아의 세계라면, 작가의 조형 실험이 무상과 무아의 이치 속에서 자연을 살아가는 유기적 생명과 존재의 본성을 드러내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상상은 나로서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2022.8




조윤득, 더불어 숲 6, 20x21x43cm, 세라믹, 2022



조윤득, 화산섬, 54x45x29cm, 세라믹,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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