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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 너를, 바라보다-인간의 폭력성과 투쟁 본능 읽기

김영호



박찬용 / 너를, 바라보다 
인간의 폭력성과 투쟁 본능 읽기 

김영호 | 예술감독, 중앙대교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박찬용 초대기획전은 조각가로 살아온 지난 25년의 성과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작들은 기존의 대표작 시리즈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돌아볼 수 있게 배치되어 있다. 기획전시실 입구의 적벽돌 울타리 상부에 도열된 거대한 동물 조각들은 고대 이집트의 신전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기획전시실 안쪽의 기획 소강당 내부에서 느닷없이 마주치는 거대한 백색의 투견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우상처럼 처연하다. 관객들은 작가가 연출해 낸 이 가상의 전시공간에서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본능적 욕망으로서 폭력과 투쟁 그리고 권력의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물론 관객에게 요구하는 하나의 정답은 없다. 우리는 이번 전시회의 제명을 <너를, 바라보다>로 정했다. ‘너’란 관객이 바라보는 작품이거나, 작품 앞에 노출된 ‘나’ 자신이 될 것이다

조각가 박찬용은 오랫동안 ‘투견 시리즈’를 통해 인간의 폭력성과 투쟁 본능에 대해 탐구해 왔다. 본능적 욕망의 알레고리를 드러내기 위해 투견을 등장시켜 온 까닭에 그는 ‘개 조각가’의 독보적 위상을 지니게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저부조 작업 <순수 폭력-진화>는 1998년에 제작된 소품으로, 핏불테리어를 흑인 권투선수와 대비시켜 표현한 첫 작품이다. 핏불테리어는 인간이 개량해 놓은 투견으로 폭력의 유희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능을 대변하는 존재로 작가의 작품에 차용되어 왔다. 폭력의 유희를 타자를 통해 실현하고 충족하려는 인간의 욕구는 고대 이래 잔혹한 역사를 만들어 왔다. 법과 윤리에 의해 제한하고 있음에도 잔혹의 역사는 투견과 투계 그리고 투우뿐만 아니라 스포츠를 가장한 권투와 레슬링 그리고 이종 격투기 같은 형태로 지속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1999년에 발표된 <개들의 침묵>은 브론즈로 떠낸 핏불테리어의 두상을 철재 케이지 속에 가두어 놓은 작품 시리즈로, 억압된 투쟁의 본능을 표현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번 전시에는 ‘박제 시리즈’도 선보이고 있다. 2012년에 제작한 <박제-나비 263>와 더불어 같은 공간에 내걸린 2013년의 <우상-2> 역시 박제 시리즈의 범주에 포함시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나비 모양의 말코손바닥사슴뿔과 토템의 형상으로 제작된 산양의 조형물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폭력성을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박제란 특정 동물을 지배하거나 우상화함으로써 스스로를 절대 권력의 위치에 올려놓으려는 본능적 욕망의 산물이다. 실물 소가죽과 양가죽을 사용해 제작된 이들 박제 시리즈는 귀하고 강한 것에 대한 인간의 정복 욕망과 그 결실에 자기 과시적 속성을 얹힌 대리물이라 할 수 있다. 타자의 생명을 거두고 소유하려는 인간의 폭력성과 투쟁 욕망은 박찬용의 박제 시리즈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때로 과장되거나 변형된 짐승들은 연극적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는 작가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찬용의 ‘무기 시리즈’는 이전의 ‘박제 시리즈’에 대한 자신의 작업 의도를 좀 더 명확히 세우기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골리앗의 시>는 저격용 소총을 알루미늄으로 캐스팅해 펼쳐놓은 것이고, <박제-1106>은 저격용 소총의 표면에 짐승의 가죽으로 감싸놓은 작품이다. 신화적 메시지와 문명의 폭력성을 오버랩 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엿보 수 있다. 한편 <미스터 빈>은 철과 목재를 사용해 만든 소총으로 특정 테러 집단의 조직적 폭력과 살생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라 할 수 있다. 짐승이나 인간 등 생명이 깃든 존재를 겨냥한 살생의 도구로 탄생되었고,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해 온 무기들이다. 짐승의 가죽을 입힌 무기들에는 활과 창을 거쳐 총기류로 진화해 온 인류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작가는 무기 시리즈가 수렵과 전투의 역사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폭력과 투쟁 그리고 그 배면에 숨겨진 본능적 욕망을 상징하고 있음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이번 개인전에서 특별히 주목할 작품은 일련의 신작 시리즈들이다. ‘화석 시리즈’와 ‘욕망의 신전’ 그리고 ‘아누비스 시리즈’가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그간 작가가 지속해 온 폭력과 투쟁의 화두를 고고학과 종교의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들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화석 시리즈’는 사슴뿔을 지닌 거대한 공룡의 두상을 나타낸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와 유인원의 두개골 형상들에 송곳니를 강조시킨 <견치 발달사>들이다. 사슴뿔이 달린 공룡은 물론 상상 속의 동물이며, 육식종 맹수의 송곳니를 지닌 유인원의 화석 역시 의사(疑似) 고고학의 산물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상 동물의 화석을 제작한 작가의 의도는 작품의 제목에서 드러난다. <무섭고 아름다운 이야기>란 숭고미의 개념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고통을 동반한 쾌의 감정’으로 일컬어지는 숭고미는 숫자나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이한 대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이른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대할 때 체험하는 미적 경험이다. 가상적 생명을 실재하는 존재로 형상화한 작품 앞에서 관객이 경험하게 되는 심리는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것이다. 결국 박찬용의 화석 시리즈는 불확실성에 대한 믿음의 상황을 알레고리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또 다른 신작 ‘아누비스 시리즈’는 세 마리의 거대한 개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저승사자 아누비스에서 착상을 얻었다는 이 작품은 기획전시실의 우측 적벽돌 울타리 위에 설치되어 신전 내부의 극적 상황을 연출해 내고 있다. 사후 세계로 안내하는 과정에서 심판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 아누비스는 신의 위상을 지닌 동물로 소개된다. 작가는 이 짐승의 눈동자를 유리알로 제작해 넣었다. 아누비스가 쏟아내는 안광의 줄기에 관람자가 마주하게 될 때 얻게 되는 시각적 감흥은 가히 충격적이다. 이번 전시의 제명 <너를, 바라보다>는 이들 아누비스 시리즈에서 온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내세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저승사자가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헤아리는 일은 전적으로 관객들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작가가 그동안 천착해 온 주제의 일관성을 염두에 두고보면 아누비스 시리즈에서 폭력과 투쟁 그리고 권력의 메시지를 종교적 차원으로 확산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인전의 마지막 공간인 기획 소강당에 설치된 ‘욕망의 신전’은 인간의 욕망이 끝없이 전개되는 현실 세계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의도를 담아낸 작품 시리즈라 할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계단식 공간의 건너편에 거대한 백색의 투견 하나가 자리잡아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조각대 위에서 위용을 과시하는 이 핏불테리어는 앞선 작품 시리즈에서 제시했던 우상이거나 저승사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양쪽 벽면에는 개의 두상을 부조로 형상화한 패널 작품 8개가 도열해 있다. ‘욕망의 신전’은 도지코인이 지배하는 작금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가상화폐이자 인터넷 미디어의 산물인 도지코인 스토리로 장식된 이 전시공간에는 가상적인 것 혹은 가상적인 세계에 대한 열광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거대한 핏불테리어는 위압적이면서도 무기력해 보인다. 이 거대한 형상의 핏불테리어에 붙여진 제명 <올드 챔프-21>이 암시하는 것과 같이 욕망의 화신은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현실의 아이콘으로 다가온다. 벽을 따라 도열된 개의 두상은 욕설과 감탄과 희화적 표정을 지닌채 불안한 현실에 대한 풍자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 이번 전시의 제명 <너를, 바라보다>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시선이자 작품에 의해 노출된 관찰자의 처지를 나타낸다.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 사이에 자리를 잡은 관객의 시선은 불편하고 당혹스럽다. 전시의 제명은 내가 작품을 바라보고 작품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중적 상황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경계가 사라지는 이러한 상황은 몰입의 순간이자 공감대를 형성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조각가 박찬용은 이성과 감성 사이에 흐르는 부조리한 인간의 본능적 욕망의 세계에 대해 성찰하고 그 세계를 조각의 언어로 표상해 왔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그의 예술 노정이 어떤 향방을 가지게 될지 사뭇 기대된다. 

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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