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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6) 퇴폐미술로 찍힌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은신처,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김영호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 특집 <6> 
퇴폐미술로 찍힌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은신처,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김영호 | 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미술관은 무엇하는 곳인가? 이런 질문은 별로 유익한 것 같지 않다.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좀 더 세밀히 물어보자. 미술관은 어떤 시설인가? 이런 질문에는 법을 참고하면 된다. 우리나라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하면 미술관은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대답 역시 미술관의 기술적(museographic)인 측면만을 나열한 반쪽 대답이다. 미술관의 진정한 힘은 인문학적 영향력에 있다. 미술관은 축성의 공간이자 권력의 공간이며 이데올로기 생산의 실험실이라는 것이다. 미술관은 평범한 변기를 예술품으로 둔갑시키고, 관장과 큐레이터에게 선택권을 부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이념을 만들어 내는 장소로 성장해 왔다. 이러한 미술관의 기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다.

러시아 중서부에 자리잡은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은 어떤 곳인가? 유물의 은신처였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선전포고도 없이 침공한 나치 독일의 약탈을 피해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품 100여만점을 두 대의 특별열차로 옮겨 왔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에는 지금도 명작들을 실은 기차가 눈보라를 뚫고 달려왔던 수송 작전의 상황이 나무상자와 운송 서류 그리고 영상 이미지로 전시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이 러시아 유물의 은신처로 사용된 사례는 이보다 앞선 시기로 거슬러 오른다. 이번에는 러시아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1917년 혁명을 지지하며 스스로를 '붓의 프롤레타리안 (proletarians of brush)'이라 불렀던 전위적 예술가들이 득세한 것도 잠시, 레닌의 뒤를 이어 집권한 스탈린은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퇴폐예술로 규정하고 철퇴를 가했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은 지방으로 옮겨져 소비에트 연방의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지방이 바로 예카테린부르크였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철의 장막이 걷히며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아울러 작품의 은신처였던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의 위상도 전에 없이 커졌다. 근대적 미술관의 본령인 축성과 권력의 공간이자 이데올로기 생산의 실험실로서 역할이 새롭게 주어졌다. 이곳에 유폐되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혁명의 예술’로 부각되었고 구미 중심 미술사의 지평을 넓히는 예술사조로 부상했다. 그리고 급기야 도전 정신을 담은 실험적 예술의 아이콘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며 영국 왕립예술원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렸으며 동구권의 헝가리와 체코를 거쳐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미술관의 네트워크를 통해 바질리 칸딘스키 뿐만 아니라 카지미르 말레비치, 나탈리야 곤차로바, 일리야 마쉬코프, 표트르 콘차로브스키 등이 새롭게 부상했다. 

오늘날 미술관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실험과 도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을 비롯한 지방 미술관들은 전시라는 축성의 예식을 통해 예술가들의 작품과 정신을 지구촌 공동체에 퍼트리는 소명을 담당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뿐만 아니라 니즈니 노브고로드 미술관, 크라스노야르스크 미술관, 블라디보스토크 미술관 등이 실험과 도전의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1977년 개관한 조르주 퐁피두센터의 국립근대미술관이 <마르셀 뒤샹 회고전>을 개관전으로 선택해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을 문화로 되새겼듯이, 말레비치를 위시한 러시아 혁명의 정신을 문화적 아이콘으로 바꾸는데 이들 지방 미술관들이 나서고 있다. 물론 이들 뒤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국립러시아미술관과 모스크바의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같은 메이저 미술관들이 반석처럼 자리잡고 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미술관은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뉴 뮤지올로지의 등장과 함께 기존의 미술관에서 행해지던 권력과 축성의 독점적 예식들은 점차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미술관은 소통의 장소이자 휴식의 공간이며 평생 학습의 시설로 작동하고 있다. 과거의 일방적인 주도방식에서 벗어나 미술관은 정부, 기업, 민간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과 공동의 관심사에 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을 비롯한 러시아 미술관들이 새 시대의 총아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다. 


1차 게재: 한국일보, 2021.11.23.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전’


특집 <1> 지금, 여기...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21.10.19 : http://www.daljin.com/column/20339


특집 <2> 20세기 예술혁명의 두 얼굴,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

2021.10.26 : http://www.daljin.com/column/20340


특집 <3> 구미 모더니즘 계보의 중심엔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있다

2021.11.02 : http://www.daljin.com/column/20341


특집 <4> 1910, 1920년대 도전정신의 결실, 러시아 아방가르드 네 줄기 

2021.11.09 : http://www.daljin.com/column/20342


특집 <5> 죽음으로써 새 생명 탄생시킨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2021.11.26 : http://www.daljin.com/column/20343


특집 <6> 퇴폐미술로 찍힌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은신처,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2021.11.23 : http://www.daljin.com/column/20344


특집 <7>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원천, 동토를 밝히는 불빛 ‘이콘’

2021.11.30 : http://www.daljin.com/column/2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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