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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아 / 폐기물을 향한 세 개의 시선

김영호




조민아 / 폐기물을 향한 세 개의 시선  


김영호 |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급하게 성장해 온 국가 경제 탓인지 우리는 한동안 산업과 생활 현장에서 생겨난 폐기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갖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 결과로 우리의 산하와 바다는 아직도 쓰레기로 채워져 있다. 폐기물에 대한 우리 공동체의 무관심은 시대를 담아내는 예술 분야에서도 예외 없이 드러난다. 이른바 눈부신 국가 경제의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네오다다(정크아트)나 프랑스의 누보레알리즘 같은 집단적 미술운동을 찾아볼 수 없다. 새천년에 들어와 환경과 생태의 문제가 미술계의 이슈로 부상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산업사회의 생산물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심과 성찰은 아직도 부재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조민아의 작가 노정은 폐기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2014년 신라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혼돈의 시대>는 고철 덩어리 이미지를 소재로 삼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과 목탄 그리고 콘테와 커피 따위를 재료로 삼아 큐브 모양으로 압축된 고철 더미의 표면 이미지를 그린 것이었다. 경주 지역의 한 고철소에서 얻은 시각 경험을 고스란히 옮겨낸 이 작품에는 작가가 걸어온 일상의 편린들에 대한 애정 어린 기억이 함께 깃들여 있다. 작가에게 고철은 현실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의 소재가 아니라 삶을 담아내는 기호이자 기억의 저장고였으며 무엇보다 조형 실험의 원천임을 보여 주었다.  

<혼돈의 시대>에서 자신감을 얻은 조민아는 자신의 작품에 리뉴얼(Renewal)이라는 제명을 붙이고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10여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작품들은 세 개의 시리즈로 구분된다. 첫 번째 <리뉴얼 I> 시리즈는 압축된 고철 덩어리의 표면을 생경한 그대로 묘사해 그린 그림들이다. 라디에이터나 엔진 등의 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다양한 생활 폐기물들이 압축된 형상으로 화면에 등장한다. 두 번째 <리뉴얼 II> 시리즈는 변형된 폐기물의 형상을 화면 위에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조형 이미지로 탄생시킨 그림들이다. 찌그러진 양재기를 저부조의 볼륨을 지닌 형상으로 연출해 낸 작품에는 폐기물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 시선이 깃들여 있다. 세 번째 <리뉴얼 III> 시리즈는 폐기물 이미지에 원더우먼이나 슈퍼맨 따위의 캐릭터를 곁들여 해석의 폭을 넓혀 놓은 그림들이다. 이 시리즈에서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폐기물의 의미가 기계 산업사회에서 정보 산업사회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조민아가 사용하는 재료들은 대부분 일상 속에서 쉽게 채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고철 폐기물 외에도 스티노폼, 비닐, 신문지, 라면 봉지, 노끈, 플라스틱 포장지와 봉투 따위의 일회용 소비재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삶의 주변에서 얻은 생활 쓰레기들이 그녀의 작품에서 소비 산업사회의 기호들로 다시 태어난다. 작가가 폐기물을 예술작품으로 변주하는 방식은 콜라주 기법과 철재 사포로 얻은 스크래치 효과, 젤스톤을 이용한 표면의 거친 마티에르, 그리고 원두커피를 사용해 만들어낸 독특한 물성 효과 등이 있다. 이러한 조형 방식의 도움으로 작가가 선택한 온갖 폐기물들은 작품이 되어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켜 낸다. 고철 덩어리 표면의 사실적 묘사에서 시작되어, 폐기물의 변형과 재구성을 통한 조형 실험 과정을 거치고, 캐릭터의 과감한 도입으로 소비재의 의미를 확산해 온 그간의 리뉴얼 시리즈 작업들에서 작가의 진솔한 시선과 표현 기법의 변화를 점진적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조민아의 리뉴얼 시리즈는 시대를 드러내는 기호들로 다가온다. 작가가 경험한 시대의 단면을 나타내는 의미들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일그러진 양재기 냄비는 작가의 시선에 의해 포획된 오브제이며 작가가 실행하는 조형의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담은 기호가 되는 것이다. 작가가 파생시킨 의미는 뉴욕과 파리를 풍미했던 오브제 미술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의 의미들이다. 1950년대의 네오다다나 1960년대의 누보레알리즘의 경우 산업사회가 배출한 폐기물들을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 제시함으로써 소비 산업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조민아의 경우 산업 폐기물들에 대한 작가 개인의 시선을 평면 위에 다시 펼쳐 냄으로써 개인적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결국 작가가 선택한 리뉴얼 오브제들은 작가 개인이 걸어온 삶의 파편들이자 그 일상을 담은 기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조민아의 조형 실험은 캐릭터를 도입한 <리뉴얼 III> 시리즈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슈퍼맨이나 캡틴아메리카 그리고 원더우먼이나 배트맨 따위의 캐릭터들이 산업 폐기물과 어우러지면서 색다른 차원의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화면에 초대된 카카오 시리즈의 여덟 식구들로서 레오, 라이언, 피치, 제이지 등도 작가의 관심이 대중 미디어를 통한 정보 산업사회의 이미지들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삶의 현장에서 소비되는 자동차와 산업 오브제의 이미지들과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고 있는 만화 광고 이미지들이 지닌 기호적 의미들이 동일한 맥락에서 읽혀지지를 바라는 것일까. 

이상에서 보듯 작가의 리뉴얼 시리즈는 미적 체험과 그 조형적 표현의 범주에서 해석될 수 있다. 낯설고도 친숙한 작품에는 소비되어 버려진 것과 그 과정에서 겪었던 삶의 체험에 대한 기억들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그 경험에는 개인을 넘어 쓰레기라는 부정적인 시선만이 아니라 소비의 과정에서 경험했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추억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도 하다. 현실은 괴롭고 과거는 언제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는 어느 시인의 관점이 작가의 리뉴얼 작품 시리즈에서도 엿보인다. 폐기물을 예술작품으로 재생시키고 있는 작가의 작품 세계는 그래서 생산적이고 정겹다. 
(2022.9)



리뉴얼 시리즈 I
 

리뉴얼 시리즈 II
 

리뉴얼 시리즈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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