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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회고전 <우주를 향하여> 소견

김영호



문신 회고전 <우주를 향하여> 소견


김영호 | 중앙대 교수, 미술사가


1. 프롤로그

  2022년 8월 31일,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조각가 문신(1922~ 1995)의 회고전 개막식이 열렸다.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마련된 전시에는 회화, 조각, 드로잉, 도자를 비롯해 각종 서지류와 영상자료들을 망라해 놓았다. 일제 강점기에 혼혈로 태어나 해방과 전쟁 그리고 혁명으로 점철된 격변의 세월을 보냈으며, 프랑스로 건너가 유목적 삶을 살았고 귀국 후에는 국내 환경조각의 장르를 개척했던 72년 성상(星霜)의 시간을 한 공간에 담아낸 전시였다.  

  나는 이 전시를 본 소감을 이렇게 두 갈래로 정리할 작정이다. 우선 문신 미술사를 ‘회화 중심’으로 다시 쓰게 할 전시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전시디자인과 연출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전시였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1940~1960년대에 제작된 문신의 회화 작품들이 특별히 돋보였다. 화가로서 문신의 역량은 재료와 형식의 실험에서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사물과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선도적 시선이었다. 서울대학교 미술학부 교수였던 화가 길진섭이 월북 직전인 1948년 문신의 첫 개인전 서문에 적었던 글귀들이 새삼 다시 떠오른다.    

  “문 군을 소개한다는 것은 너무나 주제넘은 일 같다. 왜 그러냐 하면 하나의  회화가 그 작가의 사상과 구상(構想)으로부터 표현되는 작품이며, 그것으로 곧 작가의 품격과 교양에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 군의 작품에서 감득(感得)할 수 있는 솔직한 소박성, 그것이 곧 이 작가를 반영하고 있다. (...) 낡은 사상과 양식의 허의(虛儀)와 화려한 화면이라는 것을 벌써 모조리 주워 담아서 조각배에 띄워버린 지 오랜 작가다. (...) 따뜻한 마산이 낳아준 문 군을 해방 후에야 알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도 늦은 감이 있어 섭섭하다.”

  한편, 이번 문신 회고전의 전시디자인과 연출에 대한 소견은 전시기획의 도발성에 관한 것이다. 자고로 전시기획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데 목적을 두면서도 보여주기(showing) 넘어 소통의 방식(exhibition)을 통해 작가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 활동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전시기획은 살아 있는 유기체를 다루는 일과 같다. 동일한 작가의 작품이 전시디자인과 연출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는 이치는 그것이 열린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더니즘 시대의 전시공간이 작품 자체의 물성과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화이트 큐브’로 발전되어 왔다면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시공간은 다원적이고 융합적인 작품의 개념과 형식에 부합하는 장소로 변모해 왔다.     


2. 전시 제목과 작품 

  문신 회고전의 전시 부제 <우주를 향하여>는 문신이 1985~1989년에 제작한 작품 시리즈 제목에서 따 온 것이다.(도판) 과학자의 눈앞에 펼쳐진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예술가에게 우주는 창조적 영감을 주는 대상이었다. 문신에 있어 우주란 대자연의 영역을 포괄하는 개념이었고 그 안에서 자신이 찾은 조형 원리로서 시메트리의 질서가 숨쉬는 곳이었다. 문신이 평생을 몸담고 살았던 세계이자 작품으로 구현되어 표상된 조형적 결실이었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노정의 결실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기획자는 이 결실들을 모두 네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각각 1) 파노라마 속으로, 2)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 3)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 4) 도시와 조각 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았다. 

  우선, 제1전시관에 연출된 <파노라마 속으로>는 문신의 회화 작품을 보여주는 섹션이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이 <자화상>(1943)이다.(도판) 이 그림은 문신의 유학시절 남긴 유일한 작품인데 학업기의 문신이 몰입했던 작품 경향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준다. 화실 이젤 앞에 앉은 청년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창조적 도전과 결의를 다지고 있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이후의 회화 작품은 전과 다른 화풍으로 변화한다. 주제는 자화상, 마산풍경, 정물 등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과 그 안에 널려진 사물들이었다. 자유분방한 필치와 강한 색채대비 그리고 파격적인 화면구성, 1848년 첫 개인전에서 길진섭이 ‘낡은 사상과 허의를 벗어린 작가’라 찬탄한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1950년대로 들어서면 다시 한번 변화가 나타난다. 복수 시점으로 사물을 파악하고 봉합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 시기에 그려진 <생선>(1950)과 <닭>(1953)에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며 <황소>(1957)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도판) 소의 엉덩이는 깔때기 모양의 기하학적 형태로 그려져 있으며 몸통은 갈빗대가 투사되어 드러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입체주의와 표현주의의 조형적 실험은 문신이 한국 현대회화를 주도한 화가의 한사람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황소>를 그린 1957년은 모던아트협회가 창립된 해이고 2회전부터 참여한 문신은 추상미술의 수용에 기여했던 유영국, 한묵, 이규상, 황염수, 박고석 등과 알게 된 시기였다. 그러나 문신에게 국내 화단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한다.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간 문신은 곧바로 추상회화 연구에 몰두했다. 이듬해에 그린 <사랑>(1962)에서 일시 귀국한 시기에 제작한 <알타미라 인상>(1966)과 <무제>(1966> 그리고 <달표면>(1966)에 이르는 작품들은 문신은 완전한 추상의 세계에 들어서 있었음을 보여준다.(도판) 석채를 섞은 두꺼운 물감의 물성과 선묘적 터치 그리고 색채가 강조된 이 시기의 작품은 문인이 앵포르멜 미술의 본산인 프랑스에서 체험하고 실천한 결실이었다. 1963년에 제작된 <무제>에서 금속 수저와 깡통 뚜껑 그리고 고무줄 등의 일상적 폐품을 도입한 것을 보면 문신의 실험이 오브제 미술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전시관에 연출된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은 문신의 실험했던 다양한 유형의 조각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꾸며져 있다. 1967년 재차 프랑스에 건너간 문신은 조각가로서 본격 활동하기 시작한다. <무제(개미)>(1970)는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 시리즈의 하나다.(도판) 이 작업은 제목과는 달리 추상 조각으로 완성되었다.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무제>로 붙였던 제목이 대중들에게 보여지면서 자연스럽게 <개미>가 된 것이라 한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곤충이나 악기 등의 외적 형상을 연상케 하지만 대상의 외적 형상이 아니라 그것의 배면에 숨겨진 본질적 형태를 드러내려 했다. 자체의 리듬과 질서를 지닌 형태였다.

  1970년은 문신의 예술 노정에 큰 획을 그은 해였다. 지중해 연안의 프랑스 항구도시 바카레스 모래사장에서 열린 국제조각심포지엄에 참여해 <태양의 인간>을 제작한다.(도판) 이 작품은 지금도 현지에 전시되고 있는 이 작품은 높이 13미터의 거대한 목조로 직경 1미터 20센티미터의 반구체 형태들이 12단계로 반복되면서 하늘로 치솟는 탑 모양의 형상이다. 프랑스 평론가 자크 도판은 이 작품에 대해 “샤머니즘의 범신론적 영감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며 토템 조각의 의미를 부여했다. <태양의 인간>은 조각가로서 문신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여년 후 그가 귀국해 세운 <올림픽1988>(도판)에서 한국 대표하는 조각가의 한사람으로 대못을 박는다.       

  <태양의 인간>과 <올림픽1988>은 모두 환경조각으로서 지금도 바카레스 해변과 서울 올림픽 공원 현장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두 작품은 목재와 스테인리스강이라는 재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토템 조각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올림픽1988>은 높이 25미더의 거대한 스테인리스강 재질에 38개의 반구형 볼룸으로 그성된 한 쌍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복적 패턴과 파상적 리듬 뿐만 아니라 금속 표면이 주는 반사효과에 의해 환상적 다이나미즘의 세계를 드러낸다. 피에르 레스타니는 이 작품을 올림픽 공원에 자리잡은 조각들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라 평가하고 그 이유를 작품이 지닌 ‘현대성’으로 설명한다. 강렬한 수은빛 리듬을 발산하는 토템 조각은 ‘우주와 생명의 음율’을 전해주고 있다.


3. 전시디자인과 연출   

  제3전시관에 연출된 <생각하는 손: 장인정신>은 기획자의 의도가 조각가 문신의 치열한 장인적 기질을 드러내고자 고민한 섹션으로 보인다. 이 섹션에는 브론즈와 스테인리스강 그리고 대리석이 지닌 무게와 거대한 볼륨의 조각들로 채워져 있다. 좌대 역시 독립적 받침대 형식에서 벗어나 런웨이처럼 펼쳐 놓음으로서 작품 사이에 유기적 관계를 갖도록 연출해 놓았다. <해조>(1989>나 <무제>(1987) 그리고 <정(精)>(1987) 등 1980년대에 제작된 작품에 적용되는 형태와 생명과 리듬의 메시지는 스레인리스강 시리즈의 대표작인 <화>(도판)와 더불어 문신의 일구어낸 종합적 성취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간에서 기획자의 의도는 문신의 조각 제작시 사용했던 도구들을 함께 전시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전시공구가 작품과 동일한 조건의 좌대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은 특이한 연출방식이 아닐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천정에 둥근 거울을 설치해 공간을 확장시키려 시도한 것도 전시디자이너의 연출방식의 하나로 보인다. 실내에 과도하게 채워진 조각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이를 해소하려는 일종의 시도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공간에는 조각이나 조형물만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드로잉과 다양한 에스키스 모형물들이 함께 설치되어 작가의 작품제작 과정과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소품들에 들인 작가의 공력을 보여줄 심사가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제4전시실에 연출된 <도시와 조각>은 전시기획자와 전시디자이너의 공간연출 계획을 공공조각의 맥락으로 넓혀놓은 섹션이다. 3D프린트로 제작한 <공원 조형물 모형>(1974)을 비롯해 공공조형물의 대표작인 <올림픽1988>의 모형과 설계도 그리고 영상물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 한켠에는 VR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조성해 놓았는데 원형의 비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서 관객이 안경을 쓰고 체험토록 해 놓은 것이다. 안쪽에는 문신탄생 10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를 영상을 비롯해 <문신교향곡 Eleonthit>을 사운드로 설치해 놓았다. 이 곡은 드레스덴 국립오페라의 전속 작곡가인 안드레아스 캐어스팅이 문신 작품 <화(和) II>를 주제로 작곡한 헌정곡이다.   


4. 에필로그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문신 회고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문신의 회화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주지하듯 한국현대미술의 연대기를 1960년 전후로 잡고 그 경향을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에서 시작되는 것으로 여긴다면 화가로서 문신의 예술 노정은 한국 현대미술사의 노정과 일치된다는 말이다. 충실한 인체묘사를 가미한 인상주의의 학습과정을 거쳐 야수주의와 입체주의의 표현방식과 시각실험을 거쳐 추상으로 이어지는 문신의 궤적은 국제적 미술사의 맥락에서 보아도 손색이 없다. 문신은 철저한 한국사의 모더니스트였다. 그리고 그가 남긴 회화의 노정은 그가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실존의 결실들이었다. 

1차 게재: 월간미술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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