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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인가? – 해인사의 법계도 표절 시비를 보며

김영호




예술적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인가? 
– 해인사의 법계도 표절 시비를 보며



김영호 / 중앙대교수, 한국박물관학회장

지난 10월 13일,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공문을 보내 박물관이 소장 중인 작품 하나를 철거할 것을 요청했다. 상설 전시된 나전칠화 <일어나 비추어라>가 ‘불교의 정체성과 사상을 대변하는 법계도(해인도)를 변용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불교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다. 해인사 측은 신라의 의상대사가 만든 이 법계도가 특허청 상표등록이 되어 있어 법적 보호를 받고 있음도 경고하며 박물관 측이 정중한 사과를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해인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작품을 제작 기증한 작가측과의 협의를 통해 문제로 삼은 해인도 부분을 삭제하고 재제작 설치하기 위해 11월 14일 박물관에서 철수했다. 종교적 분쟁으로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차원의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해인사 승려와 일부 신도들은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박물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급기야 해인사측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대표단을 조직해 박물관과 서울대교구에 항의 방문을 단행하며 언론을 통해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대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법보신문의 담당 기자가 그동안 연속해 내놓은 관련 기사를 보면 이번 사태의 궁극 목적은 박물관 기증작품 철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의 행간에서 성지 지정을 둘러싼 교세의 다툼과 그 견제에 목적을 두고 있음이 감지되면서 참담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기사는 종교간 화합과 국민 화합으로 포장되어 있으나 결국 종교간 분열과 국민 분열을 조장하는 결과로 전개되고 있다. 생전에 친교를 맺었던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 같은 어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  

예술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면 불행이 따른다. 더 큰 불행은 정치적 목적으로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예술은 시대의 자식이라 하였다. 예술가들이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내고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소명이 주어져 있다는 말이다. 문명사적 전환기로 대변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종교가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세간으로부터 외면을 받게될 것이다. <일어나 비추어라>에 차용된 법계도가 불교정신과 가톨릭 사상이 융합된 도상으로 읽혀질 수는 없을 것인가? 한국인들의 특수한 종교관을 담아낸 소중한 창작물로 해석될 수는 없을까? 

<일어나 비추어라>는 모두 3개의 버전으로 제작되어 있다. 김경자 작가의 이미지 도안 아래 소목장, 나전장, 옻칠장 등 무형문화재 명장들이 참여해 전통 기법으로 만들었다.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가톨릭의 역사와 한반도 평화와 생명 문화 회복에 대한 기원을 형상화한 작품이라 한다. 나는 이번 사태가 작품을 둘러싼 표절과 차용의 문제와 더불어 예술 표현의 자율권과 박물관의 특수한 소명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차 게재: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22.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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