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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영 / 빛의 사유

김영호

 
정보영 / 빛의 사유

김영호 | 중앙대교수, 미술평론가


정보영의 그림은 한 편의 시를 떠올리게 한다. 몽상적 사유로 걸러낸 바슐라르의 서정시라 해도 좋다. 객관적 세계가 아니라 내면에 비친 외부세계를 그려낸 것이 작가의 그림이라는 말이다. 빛이 좋은 날, 작업실에 종일 머물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유심히 관찰하는 일이 작가가 그림의 시작을 위한 일상이다. 문틈의 시간을 타고 조용히 바닥과 벽으로 이동하는 빛은 어느덧 작업실 공간을 명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천천히 그러나 세밀히 흐르는 시간과 그것이 연출해 내는 공간은 작가의 캔버스 안으로 표상되어 머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더이상 빛의 흐름이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빛이 만들어낸 바닥과 벽의 그림자도 변화하기를 멈춘다. 파장을 지닌 자연의 빛이 사유의 빛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정보영의 그림은 움직이는 빛의 경험에서 온 것이지만 정지된 시간과 공간으로 고착되며 새로운 생명을 얻어낸다. 물리적 빛이 명상의 빛으로 변화되는 찰나가 정보영의 빛 그림이 잉태되는 순간이다. 캔버스는 빛의 축성 예식을 받아드려 환상 세계로의 여정을 모두에게 허락해 준다.

정보영의 그림은 빛이 사유를 거치며 완성된다. 작가는 빛의 속성과 작용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미지들을 기호로 변화시킨다. 빛의 사유를 통해 작가가 도달하려는 환상 세계는 어떤 곳일까? 바닥과 벽에서 반사된 빛이 지각(perception) 회로를 지나 인식(cognition)의 공간으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빛의 정보에 기억과 통찰의 옷을 입히며 완성한 그림에는 다양한 세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 세계를 환상이나 은유 혹은 상징의 세계라 부른다. 예술이 피워내는 이 다양한 관념의 세계는 우리를 미적 경험의 영역으로 안내하고 가치 판단으로 결론을 맺게 된다. 빛의 사유로 일구어낸 환상 세계가 신체적 경험을 거쳐 현실로 지속되는 삶이 작가가 도달하려는 곳이라 할 것이다. 작가가 꿈꾸는 세계는 이른바 현상을 넘어선 본질의 세계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은 환상을 부르고 그 환상을 현실로 연장시켜 지속할 수 있는 삶을 꿈꾸는 것이다. 정보영의 그림은 빛의 사유가 지각의 터널을 지나 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기호로 작동하고 있다.

정보영의 그림은 정지된 시간과 공간을 담아낸다. 캔버스라는 오브제 위에 정지된 시간은 흐르는 강물이나 지나가는 바람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여준다. 움직이는 순간을 촬영한 한 컷의 사진처럼 정보영의 그림은 삶의 연속성을 알 수 없는 침묵의 공간으로 머물게 한다. 정지된 시간 앞에서 관람객이 느끼는 체험은 현실을 떠나 텅 빈 공간 속을 부유한다. 시간이 사라진 공간이다. 무중력의 우주 공간과 블랙홀을 연상하자. 정보영의 그림에서 숭고(sublime)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시간은 빛의 사유가 텅 빈 시·공간과 조우하게 되는 순간이다. 헤아릴 수 없는 붓질로 일구어진 텅 빈 공간과 그 공간이 담아내는 정지된 시간은 보는이를 또 다른 차원의 기쁨 세계로 안내한다. 두려움을 동반한 환희의 감정은 정지된 시간과 텅 빈 공간 앞에서 느껴지는 역설의 쾌감이다. 헤아릴 수 없는 공간을 자신의 어법으로 표상하고 그 안에 상상과 은유의 이미지들을 파생시키며 얻어낸 성취이기도 하다.  

2022년 겨울 정보영이 개인전을 열어 신작들을 내놓았다. 캔버스 작업과 파스텔 드로잉으로 그려낸 그림이 갤리리 공간에 걸렸다. 정지된 시간과 공간을 담은 그림들이 흐르는 시간과 차거운 건축 공간 속에 다시 자리를 틀었다. 벽에 걸린 벽, 책상 앞에 놓인 책상, 창문 건너에 걸린 창 그림도 있다. 캔버스라는 정지된 시간과 공간의 덫에 포획된 것은 비단 벽이나 책상 그리고 창문만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일상의 사물들로 생산된 유리공과 촛불 그리고 길게 드리워진 커튼의 무리들이 몽상의 이미지로 변해 자리잡고 있다. 삶의 애환과 기억을 품은 오브제들이 연극 무대 위에 올려진 세트처럼 자리잡고 있다. 유명한 연기자들을 기다리는 무대처럼 오브제들은 정교한 빛으로 텅 빈 공간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개인전에 <흐르고 멈추는(Flowing and Pause)>이라는 제명을 달았다. 이제 막이 오르고 침묵의 공연이 시작될 것이다. 활력의 갤러리 공간에 전시된 그림들은 시간과 공간에 맴돌던 빛이 흐름을 멈추고 박제화된 유물처럼 기억의 시간을 소환하는 경험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정보영이 그림에 초대한 오브제들은 저마다 나름의 메타포를 지닌다. 텅 빈 공간과 빈의자, 테이블, 촛불, 유리공과 유리병 등은 창문에서 들어오는 빛에 감싸여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관객들의 기억을 소환하고 몽환의 옷을 입히는 도구들이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작가가 행하는 빛의 사유를 위한 것들이다. 그 중 촛불은 1999년 작가의 첫 개인전에서 시작된 이래 20년 넘게 등장하는 소재로서 작가의 트랜드가 되었다. 그것은 현실을 밝히고 삶을 성찰하는 도구이자 명상과 묵상 그리고 소멸과 죽음의 메타포로 사용되기도 한다. 때로는 기도와 신성의  표상으로 다가오는 촛불은 자연광과 인공조명 사이에 자리잡아 시간과 공간의 변화무쌍한 기운을 강화시키는 기호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슐라르의 마지막 저작 <촛불의 미학>에 의해 촛불은 밤의 몽상을 부채질하며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는 사물이자 상상과 기억의 세계로 안내하는 도구로 소개되고 있다. 스스로 빛을 발하며 사라져 가는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다루어지며 예술가들에게 더없이 친숙한 오브제가 되었다. 

2015년부터 등장하는 유리구는 빛의 사유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오브제다. 빛을 품어 발광하고 일부를 투영해 신비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유리구는 촛불의 메타포와 다르지 않은 메시지를 드러낸다. 표면의 거울효과를 통해 그것이 놓인 주변 공간을 빠짐없이 비추어 내는 현상으로 작가는 유리구뿐만 아니라 유리병과 유리 재질의 인형들까지 폭넒게 등장시키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 크게 눈에 띄는 오브제는 커튼이다. 미술사에 커튼은 은닉의 메타포로 자주 등장한다. 시간과 공간을 단절하고 재단하는 임무는 사유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시각적 장치로 사용되고 있다. 빛과 그림자의 효과를 분절하고 빛의 사유 작용을 토막내는 커튼의 효과가 작가의 그림 속에서 바라보기와 보여지기의 강도를 조절하는 전압기와도 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할까. 이상과 같은 소품들이 그림 속의 텅빈 공간에 자리한 빈 테이블이나 빈 의자와 어우러지면서 작가가 시도하는 빛의 사유가 한층 심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2022.12


정보영 Looking 2022 캔버스에 유채, 130x1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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