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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 인권

김영호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 인권  



김영호 / 중앙대교수,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예술감독


<인공윤리(人工倫理)-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지평에서 인권에 관한 주제를 현대미술의 다양한 조형언어로 풀어낸 12명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특별기획전입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지난 2022년 6월 <PEACE for CHILD>전을 개최해, 전쟁 속에 유린당하는 어린이들의 인권을 다룬바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박물관이 계속해 인권을 전시의 주제로 삼은 이유는 작금의 사회가 인권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례없이 진전된 정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수치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삶은 피폐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어린이뿐만 아니라 청년과 노인 세대의 낮은 행복 지수는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역사의 저장고이자 문화의 실험실임을 자처하는 역사박물관이 이러한 동시대 현실을 직시하고 성찰하는 노력은 마땅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으로 정한 ‘인공윤리’는 다중적 의미를 지닌 용어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윤리’라는 뜻과 ‘인간을 지배하는 윤리’라는 뜻이 얽혀 있는 불완전 조합어입니다. 상대적이고 불확정한 오늘 우리의 현실을 나타내는 용어로 채택했습니다. 부제로 정한 ‘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는 혼돈의 현실 속에서도 인간이 걸어야 할 본연의 길을 함께 모색하자는 전시의 기본 취지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윤리와 규정이 인간의 삶을 올바르게 견인하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1948년)과 로마 인공윤리 백서(Rome Call for AI Ethics, 2020년) 등의 시각 자료도 함께 전시됩니다. 이들 자료는 ‘인간 정체성과 인권’에 대한 성찰의 역사가 국제기구의 차원에서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를 통해 우리 박물관이 내세우는 세 개의 키워드는 ‘시대’와 ‘예술’ 그리고 ‘인권’입니다. 우선, 우리가 속해있는 ‘시대’는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우는 21세기 작금의 현실입니다. 인류가 당면한 4차산업혁명 시대란 인공지능(AI)과 로보테크놀로지에 기반한 디지털 기술 중심사회를 말합니다. 이 시대의 논점은 관자에 따라 다양하게 제시되지만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디지털 알고리즘의 가변성(variability)과 불확실성(uncertainty)입니다. 디지털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는 인공지능은 점차 결과의 예측이 어렵고 컨트롤이 어려운 단계로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인공신경망을 통해 복잡한 학습과정을 거치며 미학적·과학적 성과물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주목하는 이번 전시회의 첫 번째 이슈는 ‘가변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시대’에 관한 것입니다.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는 ‘예술’ 전시회입니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미술가들의 소명에 대해 주목합니다. 가변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오늘 예술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시대의 아들이자 삶의 파수꾼 역할을 해 온 예술가들이 이 격변의 시대를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현실을 인지하는 예술가들의 개인적 관점에 따라 표현의 주제와 방식은 달리 나타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디지털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에 관심을 가지겠지만 다른 이는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공진(resonance)에 대해 주목할 것입니다. 예술과 빅데이터의 융복합을 통한 창의적 시대상을 이끌어내는데 몰입하는 작가도 있겠습니다. 우리 박물관은 가속화되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의 공통 이슈를 예술 언어로 수렴해 표현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다룬 예술을 소개하는 것이 이번 전시회의 두 번째 키워드입니다.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의 세 번째 키워드로 설정한 ‘인권’은 어려운 주제입니다. 인권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의미는 넓고 정해진 범주가 없습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가변적인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번 전시회의 범주를 인공지능 시대의 인권으로 제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미의 폭이 줄어들거나 간단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권의 범주를 좀 더 한정해 인공지능 시대의 인권에 관한 논의의 지향점을 ‘인간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 단계로 설정하고자 합니다. 개조 생명체인 사이보그(cyborg)처럼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 상황이 심화되면서 인간의 가치관이 재설정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이미 소설과 영화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나 인공지능 의료 컴퓨터 시스템인 왓슨(Watson)으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둘러싼 인권의 문제가 여전히 예술계의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보듯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는 과학기술 시대의 인권을 다룬 예술 전시회입니다. 전시의 키워드로 제시된 시대와 예술 그리고 인권을 모두 아우르는 공통분모를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그 주제가 이번 전시회의 제목으로 정한 인공윤리입니다. 인공윤리를 주제로 시대와 예술 그리고 인권의 문제에 대해 성찰해 보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거나, 예술과 과학기술의 공진화를 통해 미래의 청사진을 내놓는 일은 이번 전시회의 최종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에서 예측되는 윤리성(ethics)에 주목하려 합니다. <인공윤리-인간의 길에 다시 서다>는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에 증폭되어가는 인권의 위기를 윤리라는 관점에서 직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성찰하려는 시도입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기에 인공지능을 장착시킨 로봇이 있습니다. 작품명은 <제페토의 꿈>이고 로봇의 이름은 피노키오, 2009년생입니다. 그는 인간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세상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키보드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지만 13년이 지난 지금은 음성으로 서로의 말을 주고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공신경망과 딥러닝 기술의 덕으로 내적 대화가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피노키오에게 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페토의 꿈>을 탄생시킨 작가는 대중들이 언케니한 결점을 보이는 아이콘화된 로봇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을 불편하게 닮은 로봇 앞에 열광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모델로 삼아 인간의 생각을 정의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관객들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피노키오는 인간이 정한 윤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역전될 수 있음을 일부 과학자들은 예견하고 있습니다. 이 때가 되면 인간의 존엄성과 이를 규정하는 윤리의 기준점 역시 해체될 것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12명 작가의 작품 경향은 매우 다양합니다. 초대작가들은 영상, 설치, 사운드, 회화, 조각 등의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에 의해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가 변화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번 전시와 관련해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 – 인권’이라는 주제에 응답하며 자신이 선택한 조형 언어로 인간과 기계, 인간과 사물, 인간과 도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생명, 기술, 여성, 인간, 불안, 윤리, 규범, 신체 등의 소재들은 이들 작가의 작품에 흐르는 소중한 개념들입니다. 표현의 매체도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한 첨단 영상 작업에서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기법에 이르고 있어 전시에 풍요로움을 더해줍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의 다양하고 개별적인 소재와 매체를 한데 묶는 공통분모는 ‘인간 정체성과 인권’에 대한 성찰이라는 주제 의식으로 수렴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이전 전시회에서 볼 수 없던 두 개의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인공 도슨트’이고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 크리틱’입니다. 에틱스(Ethics)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인공 도슨트는 이번 전시에 전체적인 해설을 담당하는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이 전시 해설사는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전시 전반에 대한 안내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의 작품 근처에 설치된 큐알코드(QR Cord)를 통해 휴대폰에 모습을 드러내어 관객들에게 작품 해설 서비스 업무를 맡게 됩니다. 한편, 인공지능 크리틱은 버스마크(Birthmark)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입니다. 출품된 작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단어로 변환하고 문장으로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비평문을 만들어 내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버스마크는 주어진 대상을 지각하고 분석하고 평가를 내리는 뇌인지의 기능을 인공지능의 메커니즘과 감정분석 알고리즘으로 대체한 프로그램입니다. 

인공지능 시대는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재설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일상에 편재하고 있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인권의 문제는 기술의 불완전성만큼 불확정한 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이렇듯 문명사적 전환기의 불가사이한 모험에 여러분과 함께 하려 합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특별전 <인공윤리> 서문 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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