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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제주에 중광미술관인가?

김영호



왜 지금 제주에 중광미술관인가? 


김영호 / 중앙대교수, 한국박물관학회장


제주에 중광미술관 건립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재추진 중이다. 지난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립미술관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에서 상·하반기 두 차례 모두 탈락되어 발목이 잡힌 상태기 때문이다. 탈락의 원인은 ‘중광스님에 대한 연구자료 미흡’으로 알려져 있다. 추진 내용을 보면 사업비는 50억이고 저지문예술인마을의 현대미술관 근처에 부지 7165㎡, 건축연면적 850㎡ 규모로 2026년 개관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중광미술관 건립에 제동을 두 차례나 건 이유가 연구자료 미흡이라는 사실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제주도는 중광스님 작품 432점을 특정 소장자로부터 기증받아 미술관 등록의 기본 조건을 갖춘 상태다. 2011년에는 중광스님 작고 10주년을 기념하며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걸레스님 중광-만행>이라는 제목으로 회고전을 개최하여 중광의 예술세계를 망라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부속 세미나를 통해 그의 행적이 한국 문학사와 미술사 그리고 연극 및 영화사의 얼개들과 긴밀하게 얽혀져 있음을 확인했다. 국내 학술단체인 인물미술사학회에서도 2011년 추계학술대회와 논문집 ‘인물미술사학’ 제7호의 <걸레스님 중광의 삶과 예술>를 통해 연구논문 4편을 소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숱한 연구자료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중광미술관 설립 사전평가 탈락 사례는 제주도의 미술관 건립 과정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연구자료 미흡 평가란 지역 공동체의 의견수렴이나 전문가 집단의 심도 있는 연구 과정이 생략된 채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졸속 행정의 관행은 비단 제주만이 아니다. 정부가 지난 2020년 공립박물관에 대한 평가인증제를 시행한 결과 30%가 탈락이라는 지표는 저간의 공립박물관 건립과 운영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중광미술관이 제주에 들어서는 것을 환영할 일이다. 제주도가 원적지인 예술가의 개인미술관이며 이중섭미술관, 김창렬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립미술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또한 중광미술관은 광기와 예술의 관계가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는 21세기형 미술관으로 특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중광은 스스로를 걸래라 불렀고 타자에 의해 미친 중(mad monk)라 불리었으며 거침없는 언변과 기행으로 무애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이성과 합리를 숭배해 온 근대사의 흐름 속에서도 비이성과 감성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고 예술 창작 동기와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다는 사실을 고야와 반 고흐 그리고 뭉크 등의 거장을 통해 증거된다. 

중광미술관은 제주를 넘어 한국 근현대사를 담아낼 미술관이 될 공산이 크다. 중광이 걸어온 청소년의 시공간은 식민과 해방 그리고 항쟁과 전쟁으로 점철되었던 광란의 시대였다. 중광의 행보는 인습과 제도화된 규범을 넘어선 어떤 세계를 드러내었고 제도화된 미술에 과감히 도전장을 내밀며 스스로 이단아임을 자처했다. 욕망과 광기가 작용하는 본성이 중광 예술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면 그는 현대미술의 절반을 이해하기 위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라일보 김영호의 월요논단 202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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