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한국 신형상 조각의 계보를 세우는 미술관

김영호



한국 신형상 조각의 계보를 세우는 미술관 1)





김영호 | 중앙대교수, 한국박물관학회장


1. 한국 근현대조각의 역사와 계보학의 의미  

청년 김복진이 동경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한 1920년을 기점으로 삼는다면 서구의 근대 구상조각이 교육기관을 통해 한국인에게 유입된 지 어느덧 100년이 지났다. 한국의 근대조각은 일제 식민통치라는 비운의 공간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구 근대 구상조각이 주체적 예술 장르로 정착하기 위해 걸어야 할 길은 참으로 고난한 것이었다. 해방과 군정, 분단과 전쟁 그리고 첨예한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점철된 시대적 상황은 미술계에도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쳤다. 예술이 시대의 아들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한국의 근현대조각사에는 한국인들이 걸어온 근현대기의 시련과 극복, 희망과 좌절, 도전과 성취의 인간사가 오롯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김복진을 위시해 대부분이 일본 유학생이던 1세대 조각가들은 인체에 기반을 둔 서구 구상조각의 조형기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근대조각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해방 이후 분단 그리고 전쟁의 상황을 겪으며 등장한 한국 근현대조각 2세대 작가들은 서구로부터 유입된 구상조각의 형식을 점차 극복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에 이르면 비구상(추상) 조각의 형식을 수용하며 객관적 재현을 넘어 새로운 조형성에 격정의 시대와 실존적 자의식을 담아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실험과 모색을 위한 다양한 조형방식들이 등장하고 국가간 문화 교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급기야 한국조각의 위상은 국제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 중 괄목할 만한 성취는 서구미술에 대한 검증과 반성을 거치며 이룩한 ‘오브제·설치’와 ‘신형상’ 분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을 맞은 시점에서 조각사의 계보를 세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걸어온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접하고 숨결을 느끼고 주체적 역사인식으로 당면한 삶의 과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일이 계보학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는 1970년대 전반의 글과 대담에서 계보학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정리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계보학이란 “투쟁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수립하고 그 지식을 전략적으로 이용하게 해주는 넓은 지식과 세부적인 기억의 결합”으로 보았다. 2) 푸코의 계보학은 시대에 대응하는 예술의 가치를 진단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 시대를 반영하고 예술작품이 시대상을 담아내는 저장고라면 근현대조각사 100년의 노정에 투영된 삶의 모습과 숨결을 주체적 역사인식으로 정리하는 계보학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2. 신형상 조각의 계보 : 새로운 리얼리티의 모색 

1970년대 이후의 미술사 계보에서 연구 대상이 되는 주요 작품 경향의 하나가 바로 ‘신형상’이다. 신형상이라 할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은 선재 개념으로서의 형상(形象)이다. 이 형상은 구상(具象)과도 다른 뉘앙스를 지닌 단어로 ‘형태와 상’의 개념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를 품고 있다. 미술에 있어 사람이나 사물의 형체를 본떠 만든 구체적 이미지가 구상(figure)이라면 형상은 모양새(shape, form) 자체에 방점을 둔 이미지로 이해될 수 있다. 조형예술의 영역에서 구상의 원리가 모방과 재현이라면 형상의 원리는 형태와 형체에 가깝다. 미술사에서 추상미술은 구상미술의 대응개념으로 등장했다면 신형상 미술은 질료나 물성에 주목하는 현대미술의 조형방식에 대응하며 생겨난 경향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형상은 모던과 탈모던의 역학에 의해 추동되었던 근대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신형상이라는 용어는 1970대 말 몇몇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들을 통해 채택되면서 미술계에 파급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동아일보에서 창설한 ‘동아미술제’와 중앙일보사가 주최한 ‘중앙미술대전’은 신형상 계열의 작품들을 수용하면서 미술계에 큰 변화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 민전은 동시대에 주류를 이루었던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상미술을 적극 수용하면서 국전과의 차별화를 도모했다. 특히 동아미술제는 ‘새로운 형상성’을 채택함으로서 미술계에 새로운 기류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공모전에서 특정한 이념을 표방하고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형상성은 전통적 모방과 재현의 전통적 양식을 넘어 실재와 환영의 문제를 새로운 차원의 과제로 표상한 경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 동아미술제 창립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던 오광수는 동아일보 지상에 새로운 형상성에 대한 개념을 다음과 같이 올리고 있다. 

“구상이란 용어를 피하고 형상이란 용어를 굳이 선택한 것은 재래적인 사실과, 전후에 등장한 추상의 대립된 개념으로서의 구상이 구분되지 않고 이 전체를 구상이란 용어로 얼버무리고 있는 한국적인 오류를 막아 보자는데 그 1차적인 요인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이라고 강조한 것은 최근 10년간 추상의 반작용으로 강력히 대두되고 있는 일체의 형상적 경향 – 객관화 지향 사조, 표현주의 내지 초현실주의에 연결된 예외적 의식상태의 조형 –을 진작시킴으로써 우리 미술이 안고 있는 조형 사고의 획일성을 벗어나, 보다 풍부한 이념적 바탕을 만들어가자는 의도에서이다” 3)
  

이렇듯 신형상 미술의 표방은 전통적 구상 미술뿐만 아니라 추상의 경직된 형식과 물성에 주목했던 모더니즘 미술을 모두를 극복하고 실재와 환영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시각을 달리하면 우리나라 신형상 미술의 시작은 1980년을 전후해 국제적 경향으로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구미지역의 뉴페인팅(New Painting) 운동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이른바 프랑스의 <자유구상(Figuration Libre)>, 독일의 <신표현주의(New Expressionism)>, 이태리의 <트랜스 아방가르드(Trans Avantgard)>, 그리고 미국의 <배드페인팅(Bad Painting)>은 이미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내세우는 한편 차별적 형식논리를 지닌 신형상 계열의 경향으로 정착되고 있었다. 이들 새로운 조류의 회화는 나름의 자국적 족보를 지닌 것이었다. 가령 자유구상은 1960년대에 등장한 프랑스의 신구상(Nouvelle Figuration) 4) 혹은 서술적 구상(Figuration Narrative) 5) 의 계보를 지닌 것이었고, 신표현주의는 일차대전을 전후해 등장했던 독일 표현주의 미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명실공히 국제적 경향으로 자리 잡은 이들 신형상 미술의 공통분모는 “현대사회의 폭력과 교란 그리고 정치와 역사에 대한 정보 등을 나타내고 있으며 표현방식에 있어서도 동시대적 표현과 즉자성이 풍부한 회화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6) 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에 문을 연 서울미술관은 프랑스 신구상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이 계열의 새로운 기류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오늘의 상황은 아쉽기만 하다. 일찍이 동아미술제와 서울미술관이 공모전과 기획전을 통해 추상 일변도의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각 분야에서 새로운 형상미술에 대한 연구는 회화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논리의 허약성은 자국의 길고 긴 구상 탐구의 전통에서 성취를 이룩했던 서구와는 달리 우리에게는 필연적 논리의 전개과정이 부재한 채 막연한 거부의 몸짓이나 부정의 현상론에 지지된 것일 수 밖에 없는 것에 연유한 것이라 평가되고 있다. 7) 우리에게는 극복해야 할 구상이나 형상의 전통이 없다는 지적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것인가.               

3. 한국미술사에서 김영원 작가의 위상

이번 김해시에서 준비하고 있는 김영원 미술관의 설립은 이러한 한국 근현대조각사 정립을 위한 역사의식과 그 계보학의 수립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970년대 이후에서 오늘에 이르는 새로운 형상 조각의 다양한 사례들을 살피고 그 ‘부재의 계보학’을 동시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것이 김영원 미술관 건립에 따른 하나의 목적이라면 목적일 수 있다. 한국 신형상 조각 분야의 작가들은 김영원, 홍순모, 이종빈, 박헌열, 배형경, 류인, 이용덕, 임영선, 이불, 구본주, 신미경, 조정화, 안재홍, 천성명, 권대훈, 이환권, 권오상, 최수앙, 이동욱, 박영철 등 풍부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작업 경향을 하나의 형식원리로 묶을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들을 하나의 전시로 연대할 수 있는 공통분모는 1970년대 이후에 전개되는 모던과 탈모던의 역학 기류 속에서도 새로운 형상성을 모색하기 위해 고심해 온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이른바 1970년대 이후 지속되어 온 모더니즘의 후기적 경향인 미니멀 아트와, 반예술과 반미학을 내세우며 탈모던적 기류를 주도했던 오브제·설치 경향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세워온 이들이다. 

김영원은 1977년 <중력 무중력> 시리즈를 발표한 이래 인체조각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로 한국 조각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후배 세대로서 박헌열, 이용덕, 임영선 등은 선배의 뒤를 이어 신체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변화하는 시대상을 동시에 담아내는데 성공한 경우다. 홍순모의 거칠고 투박한 인물형상은 가시적 형태를 벗어나 재료의 형질에서 우러나오는 물신적 기운으로 채워져 있다. 이종빈과 배형경으로 이어지는 인체조각은 세부적 묘사가 억제된 형상임에도 불구하고 진동하는 정신의 원초적 힘을 느끼게 한다. 류인과 구본주는 왜곡과 변형의 인체를 통해 삶의 근원적 불안과 욕망을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 이불의 사이보그나 안재홍의 동파이프 인물상 천성명의 연극적 내러티브 조각 이환권의 변형된 인물상을 하나의 신형상 범주에 담아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모두는 동시대의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색다르다는 것이요 그 색다름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시대상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누 조각가 신미경의 경우 자신의 몸을 고대 그리스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오버랩 시키는 작업으로 자신의 몸을 미술사적 맥락으로 연결시키는 접점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조정화의 극사실적 조각이나 박영철의 텅 빈 인물상은 모두 존재의 껍질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체에 대한 시선은 변화해온 인간에 대한 성찰에 동시대성을 대입시키고 있으며 이런 시선은 권오상의 사진 조각과 최수앙의 불온한 인체조각 그리고 이동욱의 통조림 속의 작은 인물상에서도 예외 없이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서 시작된 신형상 조각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나의 경향 차원을 넘어 양식규정의 차원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이 다양한 신형상 조각의 경향들을 미술사의 맥락에서 정리하기 위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새로운 형식의 특성과 계보를 이론적 지지할 방법론과 논리적 근거를 개발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국제적으로 일어났던 신형상 미술의 현상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1980년대 이후에 나타나는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이 어떻게 미술의 성격 형성에 작용하고 있는지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미술과 내부적 자각의 만나는 접점에서 복합적인 조형의 생성논리를 구출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교차점에서 라캉이 제안한 ‘현대 계보학’은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4. 한국 신형상 조각의 계보학을 수립하는 미술관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을 맞이해 한국 조각사의 계보를 새롭게 정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념과 방법론을 세워야 한다. 단순히 시간의 마디를 재단한다는 논리를 넘어 조각을 포함한 미술문화를 바라보는 시선과 역사서술의 방법론을 구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계보란 ‘연속성’에 기반한 개념이지만 미술의 계보에 대해 고찰할 때 연속성은 역설적으로 부정과 ‘단절’의 마디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절의 연속성’이 미술사 기술을 위한 방법론으로 정착되어 왔다는 사실은 역사적 변증법을 제시한 헤겔 이후 의심할 수 없게 되었다. 

계보의 학으로서 계보학은 특정 경향이나 사조를 구성하는 인물간의 관계를 밝히는 학문으로 정착되어 왔다. 단절의 연속성을 변증법적 관점에서 살피고 그 주체들 사이에 얽혀진 다양한 관계를 밝히는 것이 계보학이다. 하지만 현대 계보학에서는 인물간의 관계를 밝히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진리(의미, 가치, 본성)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탐구하는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다. 예를 들어 푸코의 계보학은 하나의 대안적 사례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계보학의 탐구 대상으로서 진리란 고정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의식의 성숙에 발맞추어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계보학적 성찰이란 고정된 진리가 무엇인가를 묻는 대신에 한 시대의 지식의 구성조건으로 당대의 권력이 만들어낸 법칙이나 규칙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8) 결국 현대 계보학의 맥락에서 한국 근현대조각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시대의 권력으로서 법률, 교칙, 규정, 교리 등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권력에 대한 유착 혹은 극복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19년 5월부터 7월까지 신생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주최한 <한국 현대조각의 단면>전을 기획하면서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사를 정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전시는 한 해 전인 2018년 김세중미술관에서 필자가 기획한 <한국 근현대조각의 미의식>을 연계시키며 발전시킨 것이어서 나름의 소명감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었다. 이 전시회들을 설계하면서 필자는 한국 근현대조각사의 연구 범위를 여섯 마디로 분류했다. 1. 가톨릭종교조각, 2. 기념인물조각, 3. 구상조각 4. 비대상(추상)조각, 5. 오브제·설치, 6. 신형상이 그것이다. 앞의 두 마디(1,2)는 전시회가 열린 김세중 미술관의 특수한 장소성을 고려해 종교와 동상이라는 주제를 내건 것이고 뒤의 네 마디(3,4,5,6)는 역사박물관이라는 조건에 힘입어 20세기에 등장한 조각의 흐름을 몇 개의 경향으로 정리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범위 설정은 연구의 편의를 위한 것이며 한국 근현대조각사의 다양한 경향들을 모두 포괄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 근현대조각의 계보는 구상조각, 비구상조각, 추상조각 등 순수 창작조각의 분야를 비롯해, 종교조각이나 기념인물조각 등의 목적성을 지닌 분야, 그리고 오브제·설치나 신형상 등의 탈조각적 장르의 다양한 경향들을 통해 어느 정도 수렴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이번 김해 김영원미술관 설립과 한국 신형상 조각의 계보를 정리하는데 하나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면 필자에게 더없는 행복일 것이다.



5. 에필로그 

한국 신형상조각의 계보를 세우는 일은 한국 근현대조각의 계보학 하나를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사업은 어느 미술사가나 비평가 개인의 책상 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조직과 기관의 협력을 통해 성과를 거두게 된다. 한국 현대미술의 위상의 국제적으로 높아져 가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 현대미술이 여전히 중심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연이 미술을 둘러산 논점과 이론적 체계를 마련하는데 소홀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의 정체성은 시대가 낳은 미술에서 공동체의 역사와 삶의 리얼리티를 발견하고 그것은 체계화된 이론으로 정립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점에서 국민과 지역민들의 세금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는 공립 미술관은 계보학 정립의 사업을 추진할 최적의 장소라 여겨진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김해시립 김영원미술관은 개인미술관이면서도 공공성을 띤 공립미술관이다. 따라서 미술관을 특화하고 미술관 사업의 성취를 문화사적으로 세우기 위해서 미술관 설립의 목적과 타당성을 충분히 연구하고 이를 통해 건물과 향후 운영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일 것이다. 김복진에서 시작되어 100년을 넘긴 한국의 근현대 조각사의 계보를 설정하는 일은 미술관이 취해야 할 최적의 사업일 것이다.

김영원은 신형상 조각의 계보를 연구할 때 중심이 되는 작가의 한사람이다. 그가 남긴 작가로서의 족적은 한국 근대조각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구상조각의 다양한 맥락들, 예를 들면 사회적 실천으로서 기념비 조각인 광화문 <세종대왕상>을 비롯해, 인체 탐구와 존재의식이 결합된 <중력 무중력> 시리즈, 인체를 둘러싼 허상과 실상의 경계에 주목하는 <그림자의 그림자> 시리즈,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시각체험을 유도하는 영상작업에 이르기까지 풍요롭다. 사실주의에 기반한 이 모든 작업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컬랙션 연구의 중심을 이루게 될 경우 이를 기반으로 한국 신형상 조각의 계보를 수립하는 일은 한국 현대조각의 국제화를 위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1차 게재 2023.7

ㅡㅡㅡㅡㅡ
1) 이 글은 2019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개관전으로 열린 <한국 현대조각의 단면>에 실린 필자의 서문 “한국 근현대조각 100년의 계보를 찾아서”를 다시 정리한 것임   

2)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은 형벌 체계에 대한 니체의 계보학적 분석을 통해 권력과 지식의 상호 연관성을 밝힌 것이다. 근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감옥은 권력자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그들의 생각에 복종시키기 위한 지배적인 장치였다.

3) 오광수, 『한국미술의 현장』, 조선일보사, 1988, p.54

4) 신구상은 프랑스 비평가 장 루이 페리에와 미셸 라공이 전후 추상미술에 대립하여 1960년대 초에 새롭게 부활한 형상미술의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 사용하였다. 

5) 피규라시옹 나라티브는 1964년과 1965년 프랑스 비평가 제라 가시오-탈라보가 기획한 두개의 전시회를 통해 사용된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소비사회의 일상적 리얼리티 즉, 도시의 생활과 그 생산물에 대한 비평을 시도했으며 나아가 정치 사회적 이슈들에 관심을 가졌다. 대표적 작가로는 질 아이요, 베르나르 랑시악, 쟈크 모노리, 발레리오 아다미, 피터 클라젠, 에르베 텔레마크, 에두아르로 아로요, 제라 프로망제, 알랭 쟈케,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 발디미르 벨리코빅, 에로 등이 있다.

6) 김영호, 「1970년대 한국의 극사실회화」,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한국미술평론가협회, 2014, p.114

7) 오광수, 위의 책, pp.56-57

8) 전경갑, 『현대와 탈현대의 사회사상』, 한길사, 1993, p.190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