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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인문학(2) : 나도 미술평론가?

김영호


미술인문학(2) : 나도 미술평론가?



김영호 |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미술작품은 어떻게 해석되는 것일까? 미술작품을 제대로 분석하는 방법은 없을까? 미술관이나 아트페어 등의 전시회에 소개되는 다양한 미술작품을 대하면서 우리가 흔히 가져보는 생각이다. 옛날 화가들의 답변은 이랬다. ‘그냥 감상하고 즐기면 돼요’ 예술 작품은 해독이 아닌 감성적 경험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일리가 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뇌과학이 급속한 발전을 이루면서 작품 해석의 방법이 흥미롭게 연구되고 있다. 헬무트 레더의 ‘미적경험 모델’이 대표적 사례다. 이 모델은 작품을 바라볼 때 지각(perception)과 인식(cognition)의 과정을 5개의 정보처리 단계로 정리한 것으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❶ 지각적 분석(Perceptual Analyses) : 우선 눈에 들어오는 조형 요소들을 파악하는 자동적인 인지 처리의 단계다. 예를 들자면 색채, 복잡성, 대조, 대칭성, 질서, 집단화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❷ 기억의 통합(Memory Integration) : 시각적으로 분석된 조형 요소들을 나의 기억이나 경험에 연관시키는 단계다. 주어진 시각정보에 대한 친숙성, 전형성, 정점 변경(peakshifts) 등이 기억 통합의 단계에 사용된다. 
❸ 명시적 분류(Explicit Classification) : 감상자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단계다. 작품의 양식이나 주제(내용)에 대한 지식으로 작품에 대한 경험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❹ 인지적 통달(Cognitive Mastering) :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단계로, 전문지식에 의존하거나 감상자의 취향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문가는 양식에, 비전문가는 주제(내용)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❺ 평가(Evaluation) : 작품의 의미를 평가하는 단계다. 미적 판단(Aesthetic Judgment)과 미적 감정(Aesthetic Emotion)이라는 두 가지 출력물을 생산해 낸다. 만약 인지적 통달 과정이 성공적이면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 내려질 것이나, 그렇지 않다면 별 볼 일 없는 작품으로 평가될 것이다.  

자, 이상의 정보처리 5단계를 미술작품의 평론에 각각 적용해 볼 차례다. 이중섭의 작품 <황소>를 예로 들어 보자.
❶ 작품을 대하면 눈에 즉각적으로 들어오는 것은 회갈색 토운의 바탕에 거칠고 힘차게 그어진 굵은 붓 터치들이다. 날일자 모양의 코와 목 줄기에 패인 주름 뿐만 아니라 대퇴부의 삼각근과 뾰죽한 엉치뼈 위에 춤추듯 세워진 꼬리 등은 양식화된 형상들이다. 
❷ 이 작품은 작가가 황소의 해부학적 구조와 그것을 조형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인한 어깨와 대퇴부 그리고 대지를 힘차게 밟고 있는 다리는 황소의 전형적 특성과 부합된다. 치켜세운 앞다리의 리듬 역시 걸어가는 소의 행동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❸ 거친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에서 표현주의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지닌 특성은 모더니즘의 순수조형 형식에 머물지 않고 주제에 대한 탁월한 해부학적 분석 능력에 있다. 그리고 동양의 전통 선묘화에서 얻은 선의 정신성을 떠오르게 한다.
❹ 이 그림의 가치는 다음의 몆 가지로 정리된다. 우선 강력한 필획을 통해 역동적인 소의 동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냄으로써 양식과 주제 사이의 합일을 구현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제와 해방 그리고 전쟁을 몸소 체험한 한 예술가의 치열한 삶을 황소라는 짐승을 통해 담아내었다는 평가다.       
❺ 이중섭의 <황소>는 작가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강렬한 색채 대비와 우직한 필획에 의한 역동적인 황소 이미지는 감상자의 미적 경험을 극대화하고 있다. 아울러 강인한 삶의 노정으로 확대되는 비평의 성취는 그가 남긴 일련의 황소 시리즈를 통해 재차 확인된다. 



이중섭, <황소>, 종이에 유채, 35x52cm, 1953, ©서울미술관


김영호(1958- ) 
현대미술학회 회장, 인물미술사학회 회장,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예술감독,  제12-13대 한국박물관학회장 역임, 중앙대 미술학부 명예교수



 1차 게재: 서울아트가이드, 202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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