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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동 / 에체 호모(Ecce Homo) - 이 사람을 보라

김영호



조영동 / 에체 호모(Ecce Homo) - 이 사람을 보라  
 

김영호 중앙대 명예교수, 미술사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기증된 조영동 화백(1933-2022)의 작품은 모두 147건(196점)으로 드로잉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유화를 비롯해 조각과 판화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작품의 재료를 보면 드로잉은 종이에 연필, 펜, 볼펜, 파스텔, 크레파스, 먹, 수채 등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으며, 유화는 캔버스 위에 물감과 석고 따위를 혼합해 촉각적인 물성이 강조된 것들이다. 작품의 제작 시기를 보면 60세가 되던 1993년 이후에서 2017년에 이르는 24년의 기간 동안 제작된 것이 주를 이룬다. 작품 기증의 기준은 종교적 주제가 드러난 작품들로 정했다 한다. 그래서인지 작품에 붙여진 제목은 <자화상>, <얼굴>,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수난>, <돌아온 아들> 등의 구체적 형상을 품은 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와 더불어 작가가 국내외 화단에 발표해 온 추상적 경향의 작품들로서 <공-상(空-想)>, <토양, 생성>, <토양, 인성> 시리즈들도 포함되어 있다. 조영동 화백이 한국 추상회화의 제2세대에 속하는 작가로 분류되어 온 점을 고려하면 이번 박물관에 기증된 소품 드로잉 작품들은, 그동안 순수추상의 형식으로 제한되었던 화백의 예술세계를 폭넓게 연구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다름 아닌 종교성에 기반한 작품 해석의 관점이다.   

조영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화단을 풍미했던 모더니즘 계열 작가의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창작미술협회(17회, 21회/1972, 1976)와 서울현대미술제(2회, 3회/1976, 1977) 등의 단체 전시에 참여하던 1970년대 초반부터 그는 다양한 제명의 시리즈를 발표하며 추상적 경향의 조형 실험을 전개해 왔다. 

시대에 따라 순차적으로 변화되어 온 조영동의 조형 방식을 크게 나누어 보면 세 개의 경향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유동>, <연결>, <점(點)> 시리즈를 아우르는 작업으로, 캔버스의 표면에 올려진 물감의 운용을 통해 우연성과 생동적 세계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평론가 임영방은 이 시기의 작품을 ‘원색적인 물감이 서로 번지고 침식하는 데서 회화의 음악성을 보였던 그림 세계’로 분석하고 있다. 둘째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펼쳐진 <공-상> 시리즈의 경향으로, 화면에 색채가 점차 억제되는 반면 칼로 긁어낸 선들을 통해 캔버스 표면의 물성과 공간이 드러나는 단조로운 정관적 세계를 추구하는 경향이다. 이제 그의 화면은 자유분방하고 표현적인 요소들이 제거되고 화면 자체의 구조와 개념상을 찾아 나서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셋째는 1990년대 후반에 시작된 <토양, 생성>, <토양, 인성> 시리즈에서 도달한 경향으로, 화면 자체의 구조나 개념상을 추구하는 태도를 다시 극복하고 예술과 삶의 일치를 탐구하는 경향이다. 이른바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논리를 넘어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한편 절대에 대한 귀속의 차원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평론가 심상용은 작가가 ‘물질계의 만상을 통솔하는 정신의 추상적 비전’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상의 작품 노정에서 볼 수 있듯이 조영동의 평생 일구어 온 추상적 경향의 작품세계는 서구 모더니즘의 형식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이른바 점과 선 그리고 색이라는 순수 조형 요소 안에서 표현적인 세계를 발견하기도 하고 절대적인 공간개념과 물성의 본질적 세계를 추구하기도 하면서 모험을 지속해 왔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환갑의 나이에 이르러 그는 모더니스트들의 합리적이고 차가운 형식논리를 극복하며 고향과 토양의 기억에 기반한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의 결실로서 삶과 예술이 통합된 합일적 예술 노정을 발견해 내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을 보면 유기적 자연의 모습과 그 운영의 질서를 관장하는 그 어떤 힘이 그의 작품에 내재 되어 있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환갑의 나이에 이르러 일구어낸 조영동의 예술적 성취는 순수 조형 요소와 절대적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이 절대적 세계란 종교적 영역의 세계이며, 교회미술의 범주에서 언술 될 가능성이 주어진 세계라 할 수 있다. 이번 기증작품들은 이 시기의 성취를 오롯이 담아낸 것들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조영동은 1995년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가 창립되고 부회장직을 수행하기 이전인 1980년대부터 로마에서 열린 <국제종교미술전 86> 등을 통해 종교미술의 범주에서 활동해 왔다. 당시의 국내 미술계의 상황을 보면 1970년대에 불어닥친 모더니즘 미술 계열의 작가들 다수가 가톨릭교회의 신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장발을 위시해 김종영, 김세중, 최종태, 최의순이 그들이다. 종교미술과 모더니즘 미술의 만남은 정신으로서의 절대와 형식으로서의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절대적인 세계를 받아들여 내면화하고 그것을 근원적인 형태로 표상하는 일이 당대 일련의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소명이었다면 이는 신앙인들에게 주어진 종교적 소명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에 기증된 드로잉 작업들은 작가가 공식적인 활동을 전개하며 발표해 온 순수 추상적 경향의 회화작품들과는, 주제와 표현 방법에서 사뭇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증작품들의 제목을 보면 <자화상>, <얼굴>,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수난>, <돌아온 아들> 등 구체적 형상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 중심을 이룬다. 이들 작품 제목에서 유추해 수 있는 작가의 창작 의도는 특정 인물에 대한 시선이다. 그리고 그 시선은 다양한 인물을 향해 있다. 작가 자신의 모습에서 보편적 인물상 그리고 예수와 성서 속의 인물과 구도자로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그로 하여금 <이 사람을 보라>라는 제목의 시리즈를 탄생케 하였다. 라틴어 <에체 호모(Ecce homo)>를 번역한 <이 사람을 보라>는 요한복음 19장 5절에 나오는 어구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무리 앞에 나올 때의 모습을 가리키는 말이다. 

4 빌라도가 다시 나와 그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저 사람을 여러분 앞으로 데리고 나오겠소. 내가 저 사람에게서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라는 것이오.” 5. 이윽고 예수님께서 가시나무 관을 쓰시고 자주색 옷을 입으신 채 밖으로 나오셨다. 그러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자, 이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6 그  때에 수석 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를 보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고 외쳤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이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죄목을 찾지 못하겠소.”하자,
요한복음 19장 4절~6절


이 어구는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영감을 주어 예수의 고난사를 그려내는 주제로 다루어져 왔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안토넬로 다 메시나(1430~1479)는 이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고 제목을 <에체 호모>라 붙였다. 147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눈빛과 입술의 모양에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한다’는 논평을 얻어내었다. 이후 안드레아 만테냐(1431~1506)와 베첼리오 티치아노(1488~1579) 등이 뒤를 따르면서 <에체 호모>는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 작품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인간 심리의 복잡성을 드러내는 그림으로서, <에체 호모>는 <피에타>와 견줄만 한 화제가 된 것이다.
  
조영동은 <이 사람을 보라>라는 제명으로 2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을 보라>는 군중의 시선에 노출된 한 인간을 나타낸다.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다양한 감정들, 내면적 고통이나 슬픔과 더불어 연민과 공감의 메타포로 보는 이들의 심리를 사로잡는다. 조영동의 경우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형상은 얼굴 이미지의 구체적 형상에서 형상을 알 수 없는 추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인물들의 표현 방식은 자신이 일구어 온 추상화의 기법들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인물상들은 <자화상>, <얼굴>, <그리스도>, <구도자> 등으로 이름 지어져 있으나 작가의 심리적 표현의 과정에서 동일시 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자신의 삶에서 얻은 고통이 무수한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오버랩되고 있다. 노년에 들어서며 얻게 된 병환이나 자식을 잃은 후에 느낀 슬픔과 절망 그리고 인간의 한계 등을 복합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조영동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2003, 89×130㎝, 캔버스에 석고와 유채
   

조영동 <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 2015, 26.5×40㎝, 종이에 수채, 펜, 혼합재료



이상에서 보듯 조영동의 종교적 주제의 드로잉 작업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성찰의 결실로 여겨진다. 공인된 화가로서 그의 캔버스 작업이 일정한 형식과 체계를 갖춘 구조와 관념적인 공간의 표출이었다면, 그의 드로잉 작업은 자발적이고 충동적인 필법을 숙성시키면서 작가의 예술세계에 대한 비평적 가치를 한 단계 증폭시키고 있다. 다양한 재료와 기법이 만들어 내는 우연적이고 촉각적인 효과는 억압되어 있던 내면 의식과 억제된 감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 의지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시선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만들어 낸 연민과 공감의 메타포, 이것이 그의 드로잉 시리즈가 일구어낸 또 다른 성취라 할 것이다.

2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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