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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열 / 쪽지의 변주들

박영택

인터넷과 핸드폰이 보편화되면서 타인과 소통을 이루는 매체의 급격한 변화가 초래되었다. 지금은 편지나 엽서, 전보 대신에 간편한 문자나 카카오톡, 메일을 주고받으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자신의 신체와 접속되어 한시도 떠나지 못하는 기계들은 지속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공유하는 한편 타인의 의식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무한히 열려있는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하였다. 이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이다. 현대 네트워크의 핵심은 ‘수평의, 민주적, 상호소통의, 다중의, 파워중심이 없는 유연함’을 자랑한다. 이 정보통신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인간 의식의 새로운 확장이자 타인과의 소통을 무한정으로 열어놓았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느냐 하는 것은 좀 별개의 문제다. 하여간 이제 사람들은 책상위에 놓인 종이위에 문자를 기재해서 전달하는 소통방식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펜을 잡던 손은 간편하게 키보드를 누르는 일로 대체되었다. 이 글쓰기의 전환은 사실 엄청난 변화다. 하여간 너무 빠른 이 변화는 지난 시간대의 소통 매체들을 순간 추억하게 만든다. 백동열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자신에게 전해주던 쪽지에 대한 추억으로부터 그림의 단서를 잡았다. 

작가가 유년시절 학교에서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편지종이를 간단하게 접은 쪽지가 어김없이 식탁위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으며 부재한 부모님의 육성과 체온을 대신해 그 작은 종이쪽지가 그와 부모 사이를 매개시켜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년시절과 부모님의 사랑과 고독했던 당시의 시간 등을 복합적으로 상징하는 기호가 되었고 그 형태 자체는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각인되어 남아있다. 접혀있던 쪽지는 이내 궁금증을 유발하고 그것을 펴보는 순간 마주한 글자들은 순간 여러 감정들을 밀어 올려 주었던 것 같다. 식탁이나 화장대, 책상위에 놓였던, 간단한 문구가 적힌 지난날의 쪽지는 추억과 향수, 그리움 등을 동반하는 심리적인 매개물이자 지난 시절을 떠올려주는 감상적인 존재가 되었다. 작가는 그 쪽지를 단순하게 형상화하고 이를 무수히 반복해 화면에 올려놓았다. 명료한 직선의 패턴 아래 쪽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되어 부드러운 톤으로 물든 색채의 지층 위로 슬그머니 떠있거나 부유한다. 마치 비행물체나 배, 혹은 새처럼 자리한 이 쪽지의 형태는 실재하는 쪽지의 재현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인 기하학적 패턴이기도 하다. 

이제 쪽지의 형태는 작업의 알리바이가 되어 화면에 반복적으로 출몰한다. 작가는 마스킹 테이프 작업으로 쪽지형태를 올린 후에 그 위로 채색을 했다. 테이프를 떼어내면 쪽지의 윤곽선은 하얗게 남고 나머지는 색에 의해 잠긴다. 종이는 표백되지 않은 한지를 사용해 종이 자체의 부드러운 색채와 질감을 살려냈고 다양한 기법으로 색채와 질감효과를 올려놓았다. 백동열의 작업은 실상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표현했다기 보다는 재료의 물성과 기법의 극대화를 고려하는 상당히 형식적이고 기술적인 문제에 방점이 놓인 작업이란 생각이다. 알다시피 그림이란 구체적인 형상이나 이미지 이전에 물질이다. 그림을 이루는 존재론적 조건들이 그려진 이미지에 앞선다는 생각이 모더니즘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은 미술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탐색해왔고 주어진 물질 자체가 그림이 되는 방안을 고려해온 긴 여정을 보여준다. 알다시피 한국의 현대 동양화 역시 그런 모더니즘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응로의 한지콜라주작업이나 권영우, 황창배 등의 재료실험이나 매체의 강조는 선구적인 제스처들이다. 반면 백동열은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 정서의 세계를 차분히 깔아놓은 상태에서 기법을 실험한다. 그 기법은 동양화 장르자체를 전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깊이있는 화면과 전통적 재료체험과는 다른 효과를 극대화하는 쪽에서 풀려난다. 동양화작업에서 흔히 접하는 모필의 맛이나 관습적인 소재들을 지우고 대신 정교하고 치밀한 실험처럼 여러 재료들을 동원해 최적의 화면 상태를 만들어 보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미묘하고 독자적인 감각과 취향을 물질화하는 작업에 속한다. 붓에서 벗어난 그는 훨씬 자유로운 창작기술을 실험하고 그 데이터를 저장해서 작품 안에 용해한다. 그러니 그의 작업실은 일종의 실험실과도 같은 뉘앙스를 지닌 공간이다. 

분명 화면에는 단 하나의 쪽지 형상만이 놓여져 있다. 그러나 결코 동일한 바탕, 같은 기법 안에 갇혀있지 않다. 그래서 단조로울 수 있는 작업이 여러 볼거리를 감각적으로 안겨주는 맛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시각이 아니라 주의 깊은 관조와 심안으로의 접근에서 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다채로운 기법으로 마감된 배경위에 쪽지가 놓여져 있다. 마치 납작한 화면 위에 쪽지를 설치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쪽지는 여러 색채와 질감을 지닌 바탕위에서 유사해 보이면서도 결코 같지 않는, 무수한 차이를 노정한다. 반복적으로 배열된 쪽지는 얼핏 봐서는 단일해보이지만 실은 조금씩 다른 편차를 생성해나가는 중이다. 작은 차이를 통해 무수한 다름을 보인다. 그로인해 화면은 매우 유동적인 일루젼이 발생한다. 마치 쪽지들이 횡으로 이동하고 흐르는 듯한 착시를 안겨준다. 정형화된 쪽지의 형태를 둘러싼 색채의 차이와 화면질감의 편차들이 어우러져 모종의 관계를 야기하고 의미를 파생시키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또렷하면서도 실은 모호하고 그와 연관된 저마다의 사연이 각기 내밀하고 개별적일 수밖에 없는 쪽지에 대한 무수한 상념을 안개처럼 피워 올리도록 권유하는 것이다. 아울러 반복적으로 연결된 화면(16:9나 4:3의 비율로 이루어진, 그래서 마치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선사하기도 한다)은 복수화 되어 개체성, 단일성, 사각형의 한 화면이란 틀을 깬다. 그것은 결코 하나의 화면 안에 가둘 수 없고 다른 것과 연루되어서 퍼져나간다. 추억은 하나의 인상이 아니라 매순간순간에 따른 여러 이야기와 감정을 동반한다. 그것은 저마다 다른 순간이 모여 이룬 집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작가는 염색한 한지 위에 아교반수를 수차례 해서 두텁게 안료를 올리기도 하고 한지에 혼합재료를 섞어서 혹은 드라이 피그먼트와 린시드 오일, 색연필과 오일파스텔 등으로 칠해 완성한다. 그런가하면 장지 기법을 한 한지위에 들기름을 먹인 화선지를 잘라 붙여서 쪽지를 만들기도 하고 색을 입힌 한지를 콜라주하거나 율피로 염색한 한지를 구겨진 상태로 화판에 붙인 후 붓으로 쪽지 형태를 그리는가 하면 두툼하게 바른 석고 피터 위에 칼로 형태를 파내기도 하는 등 실로 다채로운 방법들을 고안해 바탕 처리에 신경을 쓴다. 화면에 직접 그려지는 방법과 저부조로 돌올하게 올라오는 입체적 맛, 촉각적인 표면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그림 그리는 행위, 작품을 제작하고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유년시절을 안쓰럽게 떠올려주는 추억의 반추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물질의 구현일 수밖에 없는 미술행위를 재미와 흥미의 차원에서, 그리고 한 개인이 지닌 감각을 고양시키는 섬세한 물질의 유희에 유사하다. 분명 작가 개인에게는 더없이 즐겁고 행복한 작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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