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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있는 부엉이 도예

박영택

부엉이는 그 야행성에 빚대어 깨어있음, 지혜, 성찰을 은유한다. 헤겔이 언급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그렇고 지혜의 여신 아테네를 동반하는 부엉이가 그런 맥락이다. 어두운 밤을 응시하면서 두 눈을 빛내고 있는 부엉이의 눈이야말로 통찰과 혜안의 상징으로 여겼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부엉이를 은연중 찾게 되었다. 90년대 초반에 내가 근무하던 미술관에서 이 독일 도예작가의 개인전이 있었다. 온화한 표정에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무척 인자한 할아버지 작가였다. 그의 작품을 보니 작가의 인성이 고스란히 감촉되었다. 일상에서 쓰이는 물건들을 무리 없이 만들었고 그 안에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자연스레 밀어 넣었다. 유머와 해학이 있으면서도 조형적인 단단함이 뼈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도예 본래의 그 실용성을 여전히 근간으로 삼으면서도 활달한 상상력과 만드는 재미를 아우르고 흙이 지닌 특질을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나는 이러한 편안함과 소박함, 그리고 작업에 대한 무거운 관념이나 허위의식이 지워진 작품이 더없이 좋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한국작가들에게서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작가들은 작업을 너무 의식적으로 다루는 한편 심오하고 무거운 관념으로 물들이고 싶어 한다. 도예나 도조의 경우도 과도하게 괴이하고 요란스럽게 장식적이다. 너무 드라마가 많이 들어가 있다. 작업을 작업으로 심플하게 여기지 않고 거창한 정신적 행위나 도를 닦는 것처럼 포장하는 편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작품에는 관심이 없다. 좋은 작품은 의미와 무의미 사이에, 관심과 무관심 사이에서 나온다.

독일 도예작가의 작품을 전시기간 동안 매일 보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가 되었다. 당시 작품 가격도 너무나 저렴했다. 대학교수이자 명망 높은 작가의 작품치고는 형편없는 가격이었다. 우리 작가들은 자기 작품의 질적 측면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 또래가 받는 가격에 비춰서 혹은 자신의 경력에 따라 스스로 작품가격을 매긴다. 대부분 과도하게 비싸다. 전시가 끝나는 날 나는 몇 개의 작품을 샀다. 아! 그때 내가 형편만 좀 되었어도 많이 사둘걸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너무 가난했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풍문처럼 전해 들었다. 먼 독일에서 온 늙은 작가의 말년의 작품 하나가 그런 인연으로 내게 왔다. 내 연구실 한 켠에 붙어서 어두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는 부엉이다. 늘 깨어있는 이 야행성의 조류가 재미난 흙의 질감과 흥미롭게 연출된 형태 안에서 고요히 응고되어 있다. 흙으로 부엉이 하나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주물러 빚은 그의 마음을 새삼 되새겨 보는 것이다. 나도 저 부엉이처럼 항상심을 간직한 체 뜨지 말고 눕지 말고 서 있고 싶은 것이다. 늘상 깨어있고 싶은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키워보는 간절한 소망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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