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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잠 길의 동행자

박영택

일주에 한 번은 안국역에서 인사동 길을 따라 내려가거나 반대 길을 거슬러 사간동으로 간다. 그 길 양쪽에 흩어진 여러 갤러리들을 찾아 가는 여정이다.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고 어떤 생각에 잠겼다 나오곤 한다. 틈틈이 주변에 있는 작은 가게들도 들른다. 어느날 ‘아름다운 가게’에서 토끼 형상의 수면안대를 발견했다. 마치 작은 베개처럼 묵직하게 들려지면서 부드럽게 처지는 그 무게감이 좋았고 부들부들한 천의 촉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자연스럽고 소박하며 기품있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작은 수면안대를 보는 순간 반해버린 것이다. 특히 그 면의 자연스러운 색감, 부드러운 질감, 적당한 장식성이 일품이었다. 두 눈을 지긋이 눌러주어 어둠을 만들고 지치고 피로한 시시경들을 이완시키는 이 수면안대는 토끼형상을 하고 있고 몸체에는 줄기와 꽃들이 피어나는 형국이다. 부드럽고 포근한 천과 순박한 색감, 단색의 꽃문양, 토끼의 배를 감싼 복대 같은 작은 천과 끈의 ‘매치’가 일품이었다. 무엇보다도 토끼형상이 너무 귀여웠다. 나는 그 토끼를 사들고 집에 왔다. 눈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 말이다. 수면안대를 사온 후로 침대에서 잠을 청할 때면 가능한 저 안대를 눈에 올려놓는다. 적당한 무게감이 내 두 눈을 부드럽게 눌러준다. 비로소 시욕에 지치고 탕진했던 눈들이 휴식을 취한다. 약간은 피로에 의해 부풀어 오른 것 같은 눈알들이 적당한 압력을 받아 밀려들어간다. 낮 동안 혹사당했던 망막에 온몸으로 올라가 누운 토끼는 의도된 어둠과 압력을 행사한다. 그가 만든 어둠과 무게감을 느끼면서 잠을 청한다. 나는 침대 아래로, 바닥으로, 땅 끝으로 조금씩 함몰되는 느낌이다. 천천히 가라앉아 저 아래까지 내려가 보는 것이다. 마치 수직의 갱도를 따라 들어가는 기분이다. 약간은 불안하고 약간은 안락하다. 깊은 죽음과도 같은 잠의 길은 멀고도 길어 보인다. 오로지 나 혼자, 내 몸으로 시작해서 끝내는 것이 잠이다. 그 외로운 잠의 길에 큰 위안이 되는 것은 이토록 귀여운 토끼가 나와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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