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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청색의 차주전자

박영택

주말이면 동네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주로 글을 쓴다. 휴일 아침의 그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에 느린 걸음으로 적당한 카페를 찾아 들어가 자리에 앉아 써야할 글을 내려 놓는 것이다. 사실 그 시간은 너무 암담하고 불안한데 하여간 그 순간을 겨우 견디면서, 몸으로 밀고 나가면서 글을 쓰긴 쓴다. 그렇게 쓰여진 글이 도통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거기까지가 나의 한계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투항한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패배자가 되어 카페를 나온다. 그러나 그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조금씩 한 자, 한 자 써나가는 순간은 그런대로 견딜만하다. 아마 따뜻한 차와 넓은 유리창, 적당한 음악, 그리고 무료하고 한적해 보이는 주말 아침풍경과 햇살이 없었다면 상당히 끔찍했을 시간일 것이다. 다행히 그것들이 나와 함께 하고 있어 위안이 되고 있다. 어느 날 카페에 들어와 차를 고르고 있을 때 이 작은 차주전가가 진열대에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저 짙고 깊은 청색, 보랏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블루에 매료되었다. 나는 언제나 청색에 무너진다. 밝고 환한 블루가 아니라 짙고 깊은 블루말이다. 
아득한 심연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를 혹은 서늘하고 투명하고 맑은 느낌을 자아내는 그 색채는 이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바다 너머를 꿈꾸면서 미지의 공간을 찾아나섰다. 모험심에 들뜬 이 뱃사람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색깔이 바로 울트라마린(블루)이다. 바다 너머를 상상하게 해주는 색채가 그것이다. 
나 또한 권옥연의 암청색으로 그려진 소녀상과 리바이스제 반팔 면티의 그 퇴색한 듯한 짙은 청색, 어린왕자 캐릭터 배경에 깔린 청색의 우주풍경 등에서 만나는 그 청색을 찾아다닌 것 같다. 당연히 일요일 오전 카페에서 만난 저 청색의 차 주전자를 기어이 샀다. 작고 아담하며 너무 매혹적인 블루로 적셔진 몸통을 보여주는 이 차 주전자는 실용적 차원에서 쓰여지는 물건이기 보다는 내개는 책상에 놓고 감상하는 기물, 미술품이다. 하루의 일과에 지친 메마르고 충혈된 눈을 이 차 주전자의 표면에 맞추고 있노라면 어쩐지 행복하다는 턱없는 생각도 든다. 저 청색이 없었다면 내게 세상은 마냥 무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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