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최영관 / 온기를 상상하게 해주는 난로

박영택

문화인류학적 정의에 따르면,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정의는 바로 '불의 공유'라고 한다. 인류가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부터 음식을 조리하고, 이를 좀 더 맛있고 영양가 있게 섭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가족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수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불은 사람들을 한데 모이도록 했다. 추위와 짐승의 위협을 피해 불 주변으로 한데 모이면서 그들은 비로소 친밀감, 공동체 의식, 나아가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 얇고 가련한 피부를 동일하게 두른 헐벗은 인간이란 사실, 그리고 불 없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공감하면서 불 주변에서 간절한 생애를 도모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불가, 난롯가는 그곳에 모인 이들 스스로에게 서로 측은지심의 정과 배려의 마음을 심어주던 공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난로를 떠올리면 훈훈하고 따뜻한 추억, 난로의 뜨거운 열기에 비례한 추위, 그 혹독한 겨울을 견뎌 냈던 일련의 사연들이 김처럼 모락거린다.  

최영관은 불을 담는 ‘난로’를 제작했다. 난로이자 그 자체로 조각 작품이자 버려지고 오래된 것들로 이뤄진 우아한 골동품이기도 하다. 이 난로는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물건이 아니라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하나의 난로, 난로 조각이다. 그는 온갖 철판, 철로 이루어진 사물들을 수집해 그 단편들을 결합한다. 특정한 도구나 기능을 지녔던 물건의 몸통들이 수명을 다해 폐기처분되고 일상의 공간에서 자취를 감추면서 제각기 분해되고 잘려져 나와 흩어진 것들을 수습해서 난로로 환생시켰다. 버려진 철들은 특정 맥락(원래의 물건, 도구)에서 빠져나와 그것 자체로 매혹적인 오브제가 되었고 그 낯선 파편들은 작가에게 영감과 상상력을 작동시키는 매개가 되었다. 그러니 사물들, 차갑고 단단한 철 조각들이 스스로 의미화되거나 발화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작가란 사물이 내는 소리를 듣는 이들이고 그것들에게 새로운 육체를 성형해주는 이다. 이런 작업을 흔히 정크아트(버려진 사물들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일) 혹은 오브제작업, 또는 철을 콜라주나 몽타주한 작업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다. 작가는 일상에서 그 용도 폐기된 철들을 수집했다.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등을 다니면서 사 모았다. 그렇게 쌓인 철로 이루어진 온갖 물건들을 펼쳐놓고 그 하나하나를 연결해서 어떤 형태, 상을 만들어간다. 상상력은 비로소 사물들을 통해 번져 나온다. 그는 사물, 철이란 물질을 통해 상상하는 이다. 그런데 그가 무겁고 차가우며 단호한 철의 편린들을 통해 상상해 낸 것은 다름아닌 난로다. 그는 이런저런 철판들을 연결해서 용접하고 잇대어놓으면서 독특한 모양의 난로/조형물을 만들었다.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이 유희, 놀이는 유년의 추억을 동반한다. 작가의 아버지는 철공장의 기술자였기에 이미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철이란 물질은 친숙한 것이었다. 동시에 그 철로 이루어진 난로에 대한 기억이 뜨겁다. 그는 난로를 떠올리면 어머니의 포근함, 불장난, 난롯가에서 있었던 여러 추억 등이 번진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가 난로를 만든 이유는 ‘사람이 태어나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따뜻하게 하며 인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불이라는 매개체가 있어 따뜻함을 주는 난로의 이미지로 따스함과 훈훈한 인간상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것은 실생활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실용품이자 그것자체로 매혹적인 조각, 오브제가 되었다. 그 경계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어쩌면 이 작품은 현대미술이 일상과 분리되고 실용적 차원에서 멀리 떨어져나간 것에 대해 반성의 차원을 거느린다고도 말해볼 수 있겠다. 순수한 심미적 차원에서만 작동되는 야룻하고 난해한 미술작품보다는 실제로 사용가능하고 더구나 사람들에게 온기를 제공해주는 것을 선사하자고 마음 먹은 것이다. 작가는 ‘예술은 인간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난로를 선사한다. 추위를 이기는 열기를 발산하는 저 난로 하나야말로 겨울에 더없이 소중한 물건이다. 작업을 하기 위해 비교적 넒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작가들에게 겨울은 무척 혹독하다. 특히 조각가들의 겨울나기는 쉽지 않다. 더러 교외에 위치한 조각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하면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비싼 난방비를 절감하기 그리고 장난삼아 스스로 만든 난로를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솜씨 좋은 이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그 난로들은 이미 훌륭한 작품이라 즐거이 감상하곤 했다. 최영관은 그것을 좀 더 밀고나간 경우다. 자신의 작업실을 뜨겁게 덥혀줄 난로를 스스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난로오브제를 만들었다. 우선 다양하고 흥미로운 철판이 필요하니 수소문해서 채집, 수집을 하고 그런 인연으로 자신의 작업실 바닥에 가득 쌓인 조각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그것으로 인해 떠오르는 상을 쫓아 용접을 해서 이어 붙여나갔다. 그 철들은 본래 특정한 도구나 물건의 일부이고 부품이었을 것이다. 페인트가 칠해지고 숫자나 문자기 기재된 표면, 또는 오랜 시간을 머금어 녹이 슬거나 벗겨진 피부, 사람의 손때와 반복된 기능으로 인해 마모된 부위들이 엉켜 있는 그 철들은 너무나 풍부한 이야기와 제각기의 사연, 추억을 머금고 있는 텍스트다. 작가는 그 철들을 불러들여 뜨겁게 달궈져야 할 난로로 환생시켰다. 기발한 상상력과 흥미로운 난로를 접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그 난로는 또한 차가운 불임의 철과는 다른 생명체와 온기를 떠올려준다. 저 난로조각은 이제 누군가의 실내공간을 긴 겨울동안 훈훈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차가운 겨울에 따스한 온기만한 것은 없다. 삭막한 삶에서 인간의 사랑만한 것이 없듯이 말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