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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버튼의 그림들 -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들

박영택

이미지는 자신이 본 것, 상상한 것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없었던 것에 생명을 부여하고 보이지 않았던 것을 비로소 보게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그림이란 결국 그가 사물과 세계를 보고 이해하고 느낀 모든 것을 발설하는 감각적인 일이기에 한 개인의 개체성과 그의 독자적인 감수성, 그가 꿈꾸는 상상력, 그만의 몸놀림과 감각의 층을 만나는 일이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오직 그만의 모든 것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나 버리는 일, 그것이 그림이고 예술이다. 그래서 시각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이미지를 통해 꿈꾸고 대화하고 상상하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놀라운 이미지를 통해 사물과 세계를 다시 보고 깨닫고 이해하게 된다. 나는 한 편의 영화와 한 폭의 그림, 하나의 조각,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그런 체험을 추체험하고 있다. 좋은 이미지는 바로 그러한 경험과 충격, 전율을 동반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좋은 작품은 그 체험을 강렬하고 숨가쁘게 안긴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나는 팀 버튼이 만든 영화를 몇 편 보았다. 그 누구와도 다른 영화였다. 나에게 그의 영화이미지는 한 편의 그림처럼 다가왔다. 초현실적이고 기이한 상상력으로 물든 음산한 이미지들의 편린이 스쳐지나간다.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묘한 유머와 해학이 깔려있었다. 나중에서야 그가 그림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모아 전시를 하고 화가로서도 활동 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아니 화가라가 보다는 그는 그림을 그리고 몽상하고 그것을 모아 영화를 만드는 영상시인, 영상화가인 셈이다. 그에게 그림그리기와 이를 영화화하는 일은 다른 일이 아니다. 영화를 대신해서 직접 그가 그린 그림들을 서울에서 대면하게 되었다. '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09 팀 버튼 전’은 2012년 12월 12일(수)부터 2013년 4월 14일(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팀 버튼이 어린 시절에 그린 습작부터 회화, 데생, 사진,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만든 캐릭터 모형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고 보관해 온 작품에 이르기까지 총 70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가위손>, <배트맨>, <크리스마스의 악몽>,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그의 대표작이 탄생하는데 그려졌던 스케치에서부터, 캐릭터 모형들, 실제 영화 속에 등장한 소품 등 높은 예술적 수준을 자랑하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상상력의 세계를 펼쳐 온 팀 버튼 감독의 새로운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의미있는 기회였다.

전시가 열리는 첫 날 아침에 미술관에 들렸다. 날이 차고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전시장 안에는 젊은 남녀들이 바글거렸다. 한결같이 팀 버튼의 영화 매니아들인 듯 했다. 전시장에는 그의 영화 속 장면, 이미지들이 튀어나와 그림으로, 조각으로 자리하고 있다. 전시장에 걸리고 놓인 이미지들은 단순한 에스키스나 취미로 그려진 그림을 벗어나 그 자체로 매력적인 드로잉, 회화들이었고 입체물이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이미지를 그리고, 그것과 대화하고 상상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만의 상상력 속에서 불거져 나온 이미지들은 악몽 같기도 하고 괴이하지만 유쾌하고 발랄하다. 마치 거미의 몸에서 풀려나오는 줄처럼 선들은 자유롭게 번져나가고 엉기면서 묘한 형상과 상황을 만들고 있다. 넵킨과 노트, 메모지와 캔버스의 공간을 가리지 않고 메꿔나가면서 무엇인가를 그려나갔던 궤적이 전시장 안에 가득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과도 같았다. 어린아이들은 모두 타고난 화가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빈 종이를 이미지로 가득 채우곤 한다. 아이들은 주어진 작은 종이에 자신만의 왕국을 가설하고 온갖 것들을 그려나가면서 자기 안의 세계에 몰입한다. 팀 버튼 역시 유년기에 오로지 그림그리기에서만 위안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버튼은 그림을 그려서 남에게 보여주거나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어린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건 다 그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리고 싶은 욕구죠. 스스로를 위해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것 말입니다.”(팀 버튼)

그는 스스로 지옥의 구덩이라고 부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뱅크에서 태어났다. 1958년이었다.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남동생 한 명이 있는데, 부모님에게는 항상 거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자신을 전혀 이해해주지 못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그런 버튼을 자유롭게 만들어준 것은 오직 그림뿐이었다. 
“어린 시절에 고통을 많이 겪을수록 어른이 된 후의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운이 좋다면 그런 감정들을 발산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출구를 마련할 수도 있겠죠”(팀 버튼)

당시 그는 미국의 유명 만화가 닥터 수스의 만화책에 매료되었고 그 책의 여백에 자기 그림을 그려 넣었고 만화와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은 물론 영화 속 악당에게까지 자신의 감정을 이입했다고 한다. 버튼은 자라면서 에드가 앨런 포우와 빈센트 프라이스, 그리고 저급영화에 나오는 각종 괴물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만의 상상 속에서 지내기를 좋아했는데, 여전히 그림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도피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된 최초의 작품은 중학교 3학년에 그린 쓰레기차였다고 하는데 그 그림이 좋은 평가를 받자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전공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캘리포니아 인스티튜드 오브 아츠에 진학 해  애니메이션(일러스트레이션과 디자인 전공)을 공부하게 된다. 2학년을 마치고 그는 월트 디즈니 사에 입사했지만 식상한 디즈니표 애니메이션에 실망하여 그만둔 후 <피위의 대모험>(1985)으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다. 이후 <배트맨>, <가위손>, <찰리와 초콜릿공장> 등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을 드러내는 내밀하고도 개인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졌다. 팀 버튼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매력적으로 혼란스럽다고 애기된다. 그는 산만하고 재미있는가 하면, 바깥세상과는 철저하게 동떨어져 지낸다. 음침한가 하면 농담꾼이고, 진지한 예술가이면서 멍청한 괴짜이기도 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행복하고 운이 좋은 미친 우울증 환자’라고 말한다. 하여간 그는 '할리우드라는 어둡고 우울한 공장에 비치는 한 줄기 섬광 같은 존재'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진정한 몽상가요 예술가다.  

그의 영화와 마찬가지로 그가 그린 그림들은 한결같이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바탕으로,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 한 팀 버튼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이루어졌다. 그는 어린이 같은 느낌에서 상당 부분 많은 부분을 가지고 와 작업을 한다. 어린이 같은 느낌에는 현재의 그 사람의 모습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들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아이들 그림에는 힘과 열정, 그리고 명확함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 그런 것들이 빠져나간다. 이른바 '타락'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존재라 할 수 있기에 그들이 그린 그림 역시 감동적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들은 길들여지고 상투화되고 관습적인 시선으로 사물과 세계를 대하고 그린다. 타락하는 것이다. 여기서 타락이란 문화적인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문화의 틀 속으로 들어가고 이제 문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버튼은 말하기를 그런 틀을 깨고 나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힘과 단순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늘 어린이와 같은 힘과 열정, 단순함을 지니고 싶어한다. 문화의 틀에서 벗어나있고자 한다. 그의 그림과 영화는 바로 그곳에서 나온다. 그는 혼자만의 세계에 거주하는 고독한 자이고 다른 어떤 일보다도 잠자기를 좋아하며(그는 잠에는 정말 멋진 무언가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아주 내성적인 사람이며 항상 일종의 슬픔을 느끼며 지내고 있단다. 생각해보면 모든 예술가들은 어느 정도 그런 상향을 공유하고 있다. 
“저는 아주 내면화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지적인 방식보다는 직관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지켜내려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팀 버튼)

팀 버튼은 완벽하게 자신의 미학이나 정신을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개성적이고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영상을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무엇보다도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사유와 길들여지지 않은 눈과 마음에서 나온다. 그것이 창조적인 예술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의 영화들은 순전히 비주얼에 관한 작품이며, 비주얼이 어떻게 인물들의 특징을 드러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극단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그의 영화는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그의 영화는 사람들의 지성보다는 감성에 곧장 다가선다. 그의 그림 역시 그렇다. 나는 그의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이 바로 팀 버튼이라고 생각한다. 외롭고, 오해받고, 온통 분류하고 파괴하기만 하는 환경에서 무언가를 만지고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 인물이 바로 그다. 그의 영화는 어지러울 만큼 유쾌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차갑고, 무엇이 튀어나올지 짐작할 수가 없다. 그가 그린 그림 역시 동일하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황당함 사이의 독특한 경계에 놓여있다. 바로 그 경계에 있다는 사실이 그의 그림이 지닌 매력을 알려주는 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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