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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어가 있는 풍경 / 유영미

박영택

심해어가 있는 풍경



바다에서 인간의 직립은 무효하다. 땅에서 가능한 인간의 삶의 조건은 물속에서는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땅과 바다는 그렇게 날카롭게 분리되어 배타적인 영역으로 자리한다. 땅에서 살아남은 것들과 바다에서만 삶이 가능한 것들이 별도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두 발로 서있어야 하는 인간의 삶은 물 밖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물은 인간의 몸을 완강히 거부하는 미지의 장소처럼 느껴진다. 물은 표면이 아니라 거대한 깊이를 지닌 질료덩어리다. 따라서 광막한 바다는 수평의 너비 못지않게 그 수직의 깊이가 공포를 심어준다. 중력을 대신 한 엄청난 수압이 몸을 짓누르는 것이다. 인간을 대신해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은 대부분 수압을 견디기 위한 최소한의 몸체를 유지하고 있다. 바다는 깊고 어둡고 두렵다. 내 발로 걸어갈 수 없는 곳이자 내 폐로 숨 쉴 수 없는 곳이며 내 피부가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는 장소다. 그래서 깊고 어둡고 무거운 바다는 인간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곳이다.


초인, 혼합재료, 2014


깊은 바다 속은 수압으로 인해 생물이 살기 힘들며 햇빛도 그곳까지는 차마 들어가지 못하는 암흑의 지대다. 사실상 이 깊은 바다는 전체 바다의 9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쉽게 근접하지 못하는 이곳에도 생명체는 살고 있다. 이른바 심해어들이 그렇다. 이 놈들은 수압을 견디기 위해 대체로 납작한 몸체를 지니고 있으며 어두운 곳에서 지내야 하기에 발광 기관을 내장하고 있어 스스로 빛을 낸다. 어두운 곳에서 잘 보기 위해 눈이 엄청 크거나 아예 없는 편도 있다. 먹이가 별로 없으니 뭐든지 많이 먹어 두고 많이 저장하기 위해 입과 위가 매우 크다고 한다. 한편 심해의 환경은 늘 일정하기에 이들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필요가 없으며 수명이 매우 길다고도 한다. 심해어들은 극한의 생존본능을 실험하게 하는 특수한 환경에서 오로지 생존 하나를 위해 진화했기 때문에 대부분 매우 특이하거나 무섭게 생겼다. 심해어들이 이렇게 기괴하게 생기다 보니 인간이 상상하는 공포스러운 존재, 괴물은 대개 그와 유사하게 그려지거나 상상되어왔다. 인간이 두려워한 것이 사실은 극한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형상이었던 것이다.


유영미는 그 괴이하게 생긴 심해어를 그린다. 작가가 그리는 물고기는 '점심해층'이른바 심해중층에 사는 것들이다. 경사가 급한 대륙사면을 포함, 수심 1000~3000m부근인 상부 심해저대라고 불리는 곳, 이른바 대륙붕보다 깊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 종류다. 심해층에 사는 이 어류는 어두운 색채를 지니고 있는데 빛으로 먹이를 찾는 포식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보호색 때문이다. 이른바 위장이고 의태다. 먹을 게 별로 없는 심해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오랫동안 먹이를 먹지 않고도 견딜 수가 있는 몸이란다. 눈이 특화된 경우가 많은 이유는 희미한 빛을 최대한 많이 모으기 위해서 시신경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심해어는 'caulophrynejordani'란 학명으로 불리는 것과 매우 유사한 형태를 지녔다. 여러 개의 지느러미를 지녔고 흡사 아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무섭고 흉측하다.


작가는 은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극세의 스텐레스망 위에 심해어의 형상을 그리고 주변은 부분적으로 검은 색 물감으로 덮었다. 물고기주위를 감싸면서 어두운 바다 속의 짙은 색감을, 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은색으로 빛나는 바탕은 물감의 색채를 대신하면서 그 재료로 인해 은은하게 발광하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이 바탕은 일종의 비단에 유사하다. 그러니 천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작가는 물감을 칠하고 닦아내는 등의 처리를 통해 흥미로운 표면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탁본의 느낌도 든다. 남겨진 부분과 씻겨나간 부분이 희미한 요철효과를 구축하고 그 선, 주름이 붓질의 맛을 대신하고 있다. 물고기를 연출한 작가의 독특한 기법이 상당히 재미있다. 나로서는 그 기법만으로도 회화적인 맛이 풍성한 그림이 되었다고 본다. 얼룩진 내부의 효과와 그 사이로 단호하게 각인된 선들이 자아내는 회화적 맛이 무엇보다 좋은 것이다. 또한 바탕 면과 유사한 은색으로 발광하는 몸체는 스스로 몸에서 빛을 뿜어내는 심해어의 특징을 암시하는 편이다. 단독으로 설정되어 꿈틀대는 심해어와 그를 둘러싼 어둠을 연출하는 배경으로 이루어진 이 단출한 화면은 그러나 힘이 있다. 모종의 기운이 베어 나온다. 결코 몸을 이끌고 심해로 들어갈 수는 없기에 그곳의 느낌을, 인간은 상상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상상만으로 심해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암흑과 수압, 고독 속에서 필사적인 생존을 모색하는 존재에게서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교한 묘사로 그려진 심해어는 다양한 포즈로 유영하고 있다. 깊고 어두운 심해에서 엄청난 수압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이 어류의 상황성을 연출하고 있는 화면이다. 특정 심해어를 재현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그 어류를 빌어 자신의 삶이나 보편적인 인간의 생존방식을 은유하는 매개로 삼고 있다는 인상이다. 작가는 오래 전부터 물고기를 소재로 그림을 그려왔다. 추상적인 바탕 위를 부유하는 단독의 물고기는 그 형태와 질감에서 흥미로운 표면을 보여주는 소재였다. 동양화에서 물고기를 소재로 한 그림도 많다. 예를 들어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린 그림(삼여도)은 세 마리의 물고기를 그렸다는 개 아니라 '삼여', 즉 세 가지 여가를 말한다. 이는 중국의 고사에서 전해지는 내용에 따른 것이다. 농사를 짓느라 학문할 시간이 없다는 농부에게 동우라는 이는 학문을 하는 데는 세 가지 여가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밤, 겨울, 그리고 궂은 날이다. 그러니 삼여도는 면학의 의미가 담겨 있는 그림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여유로운 삶과 자연에 순응 하는 삶의 태도를 암시하는데도 물고기 그림은 빈번하게 그려졌다. 반면 유영미의 물고기, 심해어는 오늘날 이 각박한 삶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상징에 해당하는 것 같다. 그것은 예술가의 초상일 수도 있고 보편적인 삶일 수도 있다. 그것은 물론 분리된 게 아니라 겹쳐져 있다.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생활인이지 동시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서의 삶을 동시에 부여잡고 가야 하는 자기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나 여러 사유가 이러한 심해어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게 한 것 같다. 그러니 이 그림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화목에 연접되면서 당대의 삶에 대한 은유의 성격을 무겁게 드리우면서 진행 중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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