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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경 / 정서로 포착된 찰나의 순간

박영택

정서로 포착된 찰나의 순간


사람은 세계 속에, 일상 속에 산다. 그곳은 항구적이면서도 찰나적으로 바뀌는 매혹적인 장소다. 진부함과 경이로움이 교차하고 그것을 보는 이의 몸과 감정에 따라 매 순간 다르게 해독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화가는 자신이 보고 만 것을 그린다. 누구나 다 보는 것이지만 동시에 누구도 보지 못하는 것, 오로지 자신만이 본 것을 그린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저 특정 풍경으로부터 생겨난 막연한, 그러나 선명한 느낌을 형상화할 뿐이다. 형상과 색채는 그것을 겨냥하면서 나가다가 멈춰 선다. 여주경은 일상 속에서 문득 접한 풍경과 그 속에 자리한 사람을 주목했다. 대부분 적막한 풍경, 그 어딘가에 홀로 있는 사람, 커다란 화면에 상대적으로 작게 자리한 인간의 모습이다. 자신의 삶의 동선에서 자연스레 접한 그 장면이 어느 날, 자신을 '푹' 찔러버린 것이다.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거대한 도시 공간 속에서 혼자 있는 그들은 고독하고 외로워 보인다. 그들 존재의 왜소함은 공기 속에서 사라지기 직전이다. 여주경은 그 장면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기에 그것을, 그 분위기를 그리고자 했다. 아마도 작가는 그 모습에서 자신을 보았거나 삶의 피곤과 무력감, 소외감이 나 만의 것이 아님을 확인한 듯하다.



장지에 채색, 78×71cm, 2015


여주경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공간/사람을 주목해서 그렸다. 그 특정한 소재인 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과 그 안에 자리한 누군가의 모습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감지하는, 더구나 욕망하는 힘에 의해 그 대상을 다시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그렸다. 그는 바로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그 현재라는 시제에 만난 것, 어떤 것이 이 순간 바로 내 앞에 있는 현전의 체험에서 문득 낯선 느낌을 받는다.


장지의 피부 사이로 스며든 색채는 찰나의 순간을 안타깝게 기억한다. 짙은 습성으로 가라앉은 색채들은 자신의 존재성을 발화하기보다는 종이 속으로 녹아 들어가 어느 감정의 영역을 섬약하게 도포한다. 그것은 발려진 색상이 아니라 그림 안의 존재들이 발산하는 기운, 정서의 층을 이루며 가라앉아있다. 사물의 지시나 재현으로서의 색채가 아니라 모종의 감정을 응고시켜주는 영역으로서의 색채다. 윤곽을 잡은 선 역시 동일하다. 자기 마음의 결을 색채로 전환시켜 이룬 그림이자 어떤 한 순간에 이입되어 그와 동일시되는 지점에서 가능해진 그림이다. 특히 절제된 이미지와 희박한 색채, 그리고 아련한 분위기와 왜소한 존재들이 어우러져 그림을 더없이 감상적으로 만들어준다. 아련하고 쓸쓸하고 덧없다고나 할까, 비근한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는 풍경이 주는 익숙함과 생경함, 그리고 몸을 지니고 사는 이들이 공유하는 생의 비루함이 안개처럼, 성애처럼 잔뜩 끼어있다.



장지에 채색, 35×58cm, 2015


삶은 촘촘한, 그러나 너무도 모호한 기억/상처로 수놓아져 있다. 산다는 것은 지난 기억을 갉아먹으며 나가는 일이고 기억에 기생하는 일이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완고하고 비밀스러운 기억을 고치처럼 두르고 산다. 그것들은 대개 불투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다. 여주경의 흐릿하고 안타까운 이미지와 색채는 기억으로 인도 되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과 경험에 의존해 그 이미지를 독해하도록 권유한다. 그 이미지는 마치 흐릿하고 애매한 기억의 형태와 매우 유사하다. 흐릿한 이미지는 직접적이고 선명한 윤곽과 형상을 지우고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허용한다. 뚜렷한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사고를 제한하는 데 반해 이 흐릿한 이미지, 휘발된 듯한 색채는 생각에 잠기게 유도하는 편이다. 그것은 하나의 단일한 의미만을 가지는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관자의 마음속에 다양한 의미작용을 유발시키는 '흔적'을 남겨준다. 그로 인해 이 그림은 불확정적인 상황을 경험하게 한다. 여주경은 도시공간에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생활의 단면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것은 본능적인 응시와 기록의 욕망이기도 하다. 작가는 먼발치에서 건물과 벤치, 나무 그리고 외로운 인간들을 응시한다. 이 거리감은 작가의 심적 거리를 반영한다. 환한 햇살에 의해 밝게 다가오는 장면은 기이하게 환각적이며 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 역시 비현실감을 고취시킨다. 전체적으로 희박한 색채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강화하는 편이다. 그곳에 자신의 초상 또한 서늘하게 직립해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고독하고 낯선 존재의 몸짓이 어른거린다. 작가에게 그림이란 도시란 특정 공간에서의 삶에서 파생된 내면심리와 인간관계, 타인에 대한 기억과 응시의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도시 공간과 그 안의 인물들을 담아내는 것은 작가에게 문득 다가온 현실의 모습이자 자신을 흡입해내는 소재이기에 그렇다. 한편 그 장면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이를 기록, 재현하는 것은 삶을 돌아보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자기 응시의 한 방편이 된다. 본다는 행위는 헤아릴 수 없는,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 기억 등을 동반한다. 작가는 자신의 신체가 받아들인 그 지각, 감각을 형상화하고자 그린다. 응시한다는 것은 모종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 욕망은 사물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것이자 시선이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욕망은 충족되거나 실현되기 어렵다. 어쩌면 미술은 그러한 불가능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주변의 사물, 타자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것은 동시에 불가해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욕망과 포개어진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생생하게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을 그리고자 한다. 더불어 그로 인해 파생된 감정, 모호하고 애매한 정서를 가시화하고자 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본질이 보고야 만 풍경이다. 좋은 작가는 철저히 자신의 내부로 본 것을 그리는 이다. 그래서 그림은 한 작가의 인식, 감정, 마음의 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니 그림은 바로 그것을 그리는 것, 보여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그 사람만의 정서와 분위기 말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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