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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관 / 자연이 만든 우연적인 선

박영택

흔히 회화를 '일정한 평면에 눈속임(일루젼)을 불러일으키는 장치' 혹은 '어떤 지지대나 장소 위에 각종 안료를 써서 형상을 표현한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회화란 자신의 존재론적 조건인 평면위에 이미지를 불러내는 일이다. 이는 사진의 경우도 동일하다. 사진 역시 일정한 평면위에 이미지를 안착시키는 일에 해당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선험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존재에 부단히 밀착하는 일이다. 마치 사물의 피부에 투명한 미농지(트레이싱지)로 눌러 그린 것처럼 세계의 표면을 문지르는 행위가 사진이기도 하다. 그것 역시 일정한 평면 안에서, 주어진 사각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사진 역시 회화와 마찬가지로 주어진 평면, 그리고 사각형의 프레임 자체가 사진의 내용을 규정짓는 핵심적인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Bamboo Gray Series, 2012, Archival inkjet print


최병관의 사진은 정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대나무와 물을 담았다. 수직의 대나무와 수평의 물은 사각형 프레임 안에 적막하게 응고되어 있다. 대나무의 수직선들은 화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면서 일정한 간격을 만들어 분할하고 있다. 눈부시게 환한 밝은 바탕을 등지고 약간의 두께와 짙은 색을 지닌 대나무의 몸통은 매력적인 윤곽선은 만들면서 슬쩍 흔들린다. 역광으로 인해 흑백의 미묘한 톤들이 부서진다. 차이를 발생시키는, 동일하지 않은 선들이 납작한 사각형의 평면 안에 다양한 조형적 선, 공간을 만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는 흑백의 톤 역시 마찬가지다) 그로인해 여백이 만들어지고 비어있는 틈이 벌어진다. 마치 수묵으로 그려진 대나무 그림을 닮았다. 얼핏봐서는 사진인지 묵죽화인지 헷갈린다. 대나무에 달린 댓잎들은 바람에 흩날리거나 미세한 움직임을 동반하면서 우연적인 흔적, 기미를 남긴다. 이는 예기치 않은,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다. 고정된 대상을 포착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바람 등의 조건과 그로인한 대나무의 움직임이 만든 비의도적인 결과물이 사진이 되었다. 사진은 동일성의 법칙, 재현의 틀에 사로잡히지 못하고 지속해서 미끄러진다. 결코 반복할 수 없는 대나무의 재현이다.



Bamboo Gray Series, 2012, Archival inkjet print


한편 정사각형의 화면을 가득 채운, 물(수면)을 담은 사진은 화면과 수면이 등가의 관계를 이루며 확고한 수평을 보여준다. 따라서 깊이가 부재한 화면에는 그저 수면이 지닌 그 표면만이 가득하게 펼쳐져있다. 심도를 상실한 수면/표면은 밋밋하고 단일한 색조로 적셔져있다. 그러나 그 색채 역시 문자화할 수 없는 색, 언어의 체계 바깥으로 미끄러지는 색채이자 매번 변화를 거듭하는 색이다. 그러니 동일한, 고정된 표면은 존재할 수 없다. 더구나 잔잔한 수면이지만 미세한 움직임이 조심스레 발견된다. 얼핏봐서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화면 같은, 그저 단일한 색으로 적셔진 색면 추상같은 사진이지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표면에는 약간씩 다른 색채와 기포와 원형의 선들이 퍼져나가고 있다. 작가는 오랜 시간 수면을 응시하다가 예기치 않은 움직임, 수면에 생겨난 예민한 상처 같은 것을 발견한다. 외· 내부의 충격으로 인해 수면의 적막과 부동의 상태가 깨져나가는 순간이 걸려들었다. 그러자 수면은 매번 다른 동심원을 만들며 매혹적인 선을 그려낸다. 만들어낸다. 그 선은 있음과 없음 사이에 있다.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오로지 자연만이 우연적이며 순간적으로 만들어낸 선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사진은 그 사라지는 순간을 고정시킨다. 이렇게 사진은 사라지는 순간의 덧없음을 애도하듯 절박하게 수면의 상태를 기록한다. 그것이 사진의 쓸모 있음을, 그 기록과 재현의 정당성을 은연중 부여한다.


작가가 선택한 대상은 고정된 사물, 자연이면서도 동시에 미세한 움직임에 부대끼는 것들이다. 시간과 바람이 대나무와 수면을 건드리고 있다. 대나무와 수면은 스스로 흔들리면서, 표면에 주름을 짓고 파문을 형성하면서 그에 반응한다. 모종의 상형문자로 자기의 상태를 기술한다. 결코 기록될 수 없고 해독되지 못하는 자연의 반응이 덧없이 반복된다. 작가는 그 선으로 이루어진 대나무와 수면의 반응을 촬영했다. 섬세하고 집요하게 관찰해야 그것들이 짓는 작은 동작과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 얼핏 봐서는 간과하기 쉬운 것이지만 숨을 멈추고 차분하고 느리게 바라보고 오래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의 리듬에 자신의 호흡, 숨을 맞추어야 가능한 일이다. 자연과 나의 몸이 분리되어서는 어려운 일이다. 


대나무와 물은 둘 다 모두 선조를 중시한, 유려한 드로잉의 세계를 연상시켜준다. 대나무를 찍은 사진은 동양의 서예나 사군자의 필획을 연상시키는 편이며 대나무 특히 흑백의 계조는 먹의 농담을 그대로 닮았다. 마치 동양의 서예를 연상시키듯 완급, 태세, 경중 등 운필의 구사를 이용하여 대상의 골격을 잡아내 그린 그림과도 같다. 매우 의도적이고 계산적인 화면구성이자 간결하고 운치가 있다. 이는 수면을 촬영한 사진도 동일하다 그의 사진은 엄격한 기하학적 특성 및 '미니멀'하다는 공유성을 거느린다.



Water Series, 2006, Archival inkjet print


또한 이 두 사진은 새벽의 연못과 낮의 대숲에서 포착한 순간의 장면이다. 강한 조명과 빛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부드러운 빛이 전체적으로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분위기다. 박스형 카메라의 모범인 하셀 브라드의 사각형 포맷에 담아둔 이 자연풍경은 무척 엄격하게 절제되어 있다. 대나무 사진은 대 숲 안에서 밖을 본 시선이고 물은 사선의 거리에서, 위에서 내려다 본 구도다. 따라서 대나무의 배경은 거의 흰 색에 가까운 환한 하늘이 되고 물은 수면 전체가 납작한 표면과 일체가 되고 있고 흐릿한 보라와 블루가 뒤섞인다. 대나무는 흑백사진이고 수면을 촬영한 사진은 컬러사진이다. 그런데 그 흑백과 컬러의 색감은 다소 '톤 다운' 된 느낌이다. 중성적인 톤은 부드럽고 몽환적이다. 대상을 찍기보다는 대상을 파고드는, 애무하는 빛을 부드럽게 건져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최병관 사진은 빛이 대상을 어루만지고 적셔내면서 그 대상을 어떠한 성격으로 만들어 내는, 성형해내는 그 지점을 포착한다. 그로인해 우리가 늘상 보는 이 익숙한 대상인 대나무와 수면이 무척이나 색다른 존재로, 해맑은 얼굴로, 지상에 출현한 이래로 지금까지 그 얼마나 다채로웠을 순간을 죄다 머금으면서 동시에 마치 처음 다가오는 표정으로 그렇게 프레임 안에 자리하고 있다.


대나무와 물은 또한 엄청난 메타포를 지닌 소재이기도 하다. 대나무와 물은 동양예술, 특히 동양화에서는 보편적인 화목이었다. 유교적 이념에 따른 종교적 도상에 해당하는 이 두 소재는 자연을 포괄하는 은유적인 도상이자 군자의 덕목을 내재하는 상징이다. 따라서 대나무와 물을 그린다는 것은 특정 자연대상의 재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물이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내재화한다는 의미를 포괄한다. 군자를 꿈꾸는 선비가 당연히 지녀야 할 지조와 절개, 지혜 등이 바로 대나무와 물이 함축하고 있는 덕목이다. 그러니 대나무와 물은 단지 그림의 소재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소재로 대변되던 유교적 이념과 지배시스템, 선비문화는 망실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유전인자 속에는, 문화적 전통 속에는 사군자와 산수에 대한 희구와 그 덕목에 대한 친연성과 기호가 유지되고 있기는 하다. 최병관은 개인적으로 대나무와 물을 좋아하고 자연스레 자신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대나무와 물을 촬영해왔다고 한다. 애초에 그 덕목을 목적론적으로 내세우려는 시도가 아니라, 혹은 그런 소재에 깃든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강박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호, 감각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강화의 한적한 농가로 옮긴 작가의 작업실 주변에는 작은 오죽과 아름드리 소나무가 가득했다. 그는 그늘에 앉아 그 나무들을 바라보며 즐겁고 편안해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사진에는 안분과 자족의 삶으로 자연과 함께 소박한 생을 보냈던 선인들의 삶의 감수성이 반영된 산수화와 사군자의 한 자락이 얼핏 스며들어있다는 느낌도 든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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