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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강 / 시선의 역설

박영택

우리가 세상과 사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개념에 의지해서이다. 개념이란 우리 인간의 지성적 판단에 부합하게끔,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형성된 것이다. 개념이란 뜻의 사전적 정의에는 '어떤 것을 움켜쥐거나 잡아채서 포착한 것'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반면 예술은 모든 개념어에 저항한다. 이것이 예술의 역설이다. 개념에 의해서 세계를 학습하고 이해하면서 동시에 그 개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게 예술의 운명이고 과제라는 얘기다. 그러니 하나의 미술작품, 한 장의 사진은 대상이 아니라 순수한 주어짐으로서의 현상이 되고, 그것은 우리의 시선 아래 고정된 대상을 넘어선 어떤 것이 된다. 되어야 한다. 그 안에는 보이는 것 안에 내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것의 효과, 즉 시선의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Stamp Edition of 5, 검 바이크로메이트 프린트, 37×50cm, 2003


김수강의 사진 속에는 일상의 사물에 적조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흔하고 사소한 사물이고 특정한 물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맑고 투명한, 진공과도 같은 배경을 등지고 병과 돌이 나란히, 혹은 단독으로 설정되어 기념비적으로 자리하는 순간 그 사물에 대해 평소에 갖고 있던 개념적 지식은 무효화되고 개별적 존재성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그 사물에 달라붙던 기계적인 선입견이나 개념은 망실되고 순수한 시각적 대상으로 그 존재를 목도하게 된다. 그로 인해 평소에는 결코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출현한다. 이른바 시선의 역설이다.


작가는 쓸모 없어진 사물, 혹은 방치된 사물의 존재성 또한 환기시킨다. 자신의 눈에 들어온 저 쓸쓸한 사물을 나와 대등한 존재로, 의미 있는 것으로, 매력적인 것으로 응고시킨다. 생각해보면 저 작고 하찮은 것들 안에 무한한 것이 내재되어 있고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 일상에 대한 주목과 예찬, 미시적이고 사소한 것에 대한 애정,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등도 묻어 있다. 그러기 위해 구체성을 단호하게 지시하는 선에서 사진이 지닌 재현(인증)의 힘을 빌고 검프린팅 특유의 효과로는 아련하고 매혹적인 감성을 발산하는 표면을 만들었다. 그것은 사진과 회화의 경계에서 가늘게 진동한다. 두 장르가 뒤섞임으로써 오히려 묘한 효과가 부각된다. 그 모든 수사와 장식을 덜어낸 이 사진은 외부세계와의 문맥이 상실된 진공 속의 정물이자 심연이 부재한 납작한 세계이다. 그로 인해 비근한 일상을 점유하고 있는 친근한 사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낯설어 보인다. 그 낯섦이 사물들의 존재감을 비로소 일깨우고 있다. 김수강의 사진은 논리와 개념을 지운 자리에, 개념이나 드라마가 사라진 장소에 또한 표현과 장식이 절제되고 스러진 곳에 덩그러니 남은 사물 몇 개를 통해 새삼 자신들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침묵으로 전달해준다 그리고는 시선 너머의 자리를 환하게 펼쳐 보인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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