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범진용 / 현실계에 침입한 환각과 환시의 체험

박영택

서구 근대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이 르네상스미술은 이른바 '카메라 옵스큐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작은 구멍 안으로 눈을 대면 세계가 역상으로 보이는 어두운 방 말이다. 이후 이는 원근법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외부세계를 2차원의 평면 안으로 수렴하는 장치이다. 이때 그림을 그리는 주체나 보는 이는 단순히 관찰하는 주체로 그치지 않고 세계를 구성하고 만들어내는 '주체'가 된다. 이처럼 콰트로첸토시대라 불리는 15세기에 처음으로 개인과 개별성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었고 그 결과가 원근법에 입각한 화면구성과 재현회화다.



Beyond the Lights, oil on canvas, 117x91cm, 2015


이처럼 작업의 창조 과정 전체를 총괄하는 통일체로서의 자아의식이 바로 서구 근대미술의 본질이다. 반면 20세기 초에 이르러 이 주체에 대한 인식이 균열을 일으킨다. 이는 인간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이해가 이전과는 전적으로 다르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 이상 이성적이고 합리적 사고에 기반 한 존재가 아니라 실은 무의식과 광기, 우연과 비합리성 등이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요소일 수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런 인식을 유포한 대표적인 이들이 도스토예프스키나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다. 이들의 인간에 대한 해석과 탐구를 바탕으로 현대미술은 이제 무의식, 꿈, 우연, 비합리적인 요소들에 의한 다양한 작업이 추구되었다. 다다와 초현실주의를 비롯해 이후 전개되는 현대미술의 대부분은 이런 인식에 크게 빚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무의식과 우연 등은 기본적으로 작가의 의식이라는 인위적 형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것들이다. 작가의식의 범위와 통제를 넘어선다는 뜻에서 '무의식적'이다. 작가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는 무의식 혹은 우연(자연의 미학)은 미리 계획하고 연출하는 의식을 버린다는 말이자 그것은 또한 무의식을 일깨운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른바 통제되지 않는 존재(우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말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무의식과 우연을 기반으로 한 작업은 개인적 의지 바깥에서 뜻밖에 만나는 세계의 실상을 기록하려는 것이자 우리 상상력과 개념체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을 보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전적으로 낯선 것, 끝없는 우연을 끝없이 긍정하고자 하는 제스처라고 해석된다.



Beyond the Lights, oil on canvas, 117x91cm, 2015


범진용의 그림은 재현회화에 가깝다. 그러나 그가 그린 풍경은 어딘지 낯설다. 분방하면서도 촘촘하고 격렬한 기운을 동반하면서도 세밀한 붓질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온통 꿈틀대는 붓질과 단색 톤에 가깝게 조율된 색채는 일상적인 자연풍경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는 동시에 형언하기 어려운 기운으로 뒤척이는 상황을 드러낸다. 이 그림은 자연풍경을 고정시킨 게 아니라 자연의 생동하는 힘과 그 풍경을 보는 자신의 마음에서 발생하는 '그것'을 급박하게 밀착시킨다. 그는 자신의 삶의 동선에서 접한 일상적인 풍경을 보는 일에서 출발하고 그 보고 느낀 것을 화폭에 옮긴다. 그러나 이 재현적 과정은 단지 보이는 것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풍경 안으로 설핏 침입한 환각적인 장면이나 꿈속의 장면을 오버랩 시킨다. 따라서 익숙한 풍경에 균열이 가고 이격이 발생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무의식을 기록한 꿈 일기'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꿈속에서 벌어지는 생소한 이미지와 이야기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단지 꿈속 장면이 아니라 현실계의 풍경을 보면서 그 안에서 꿈속 장면이 삼투하고 간섭하고 종내는 그 둘이 마구 엉켜버린 형국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그린 풍경은 현실도 꿈도 아닌 그 둘이 교차하고 중첩된 또 다른 세계 같다. 현실 속에 파고든 꿈의 세계, 일상의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온 환각적 장면이 뒤섞여 있다. 더불어 그 풍경 안에는 항상 인간의 형상 같은 것이 어른거리거나 묘한 기운이 꿈틀대는가 하면 격렬한 흔들림, 출렁거림이 휩쓸고 지나간다. 아마도 작가가 보고만 환시의 체험일 것이다. 그것은 꿈속에서 본 장면을 현실계에서 만나고 특정 풍경 안에 온갖 상상력이 개입해 만든 풍경이다.


인간 존재가 실은 이성 밑에 자리한 알 수 없는 그것(이드)에 의해 잠식되고 있음을 밝힌 프로이트의 관심은 표층의 우연에서 심층의 질서로 향하고자 했다. 반면 초현실주의는 우연을 더욱 개방하고 확장하여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 했다. 그들은 친숙한 대상을 전혀 새롭게 보여주고자 했으며 내적인 무의식(우연)과 외적 사물의 현실(객관)이 만나는 순간에 발생하는 새로움을 추구하였다. 그것은 계획된 절차를 따르지 않으며 작업 하는 과정 순간순간의 모든 것을 허용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한다. 그 모든 것을 예술창작 내부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미술은 의식보다는 무의식을, 필연적 계획보다는 우연을, 균제보다는 파격을, 인위성보다는 자연성을 적극 내세우면서 출발했다. 따라서 미술은 이미 확립된, 강제되는 미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미의 관점을 탐구하고 제시하는 과정이 된 것이다. 동시에 본다는 것, 그린다는 것에 대한 개념적 사유를 펼치는 일이 되었다. 특히나 본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단지 망막에 비친 세계상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자리한 것,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세계에 대한 긍정이 중요해졌다. 응시는 머리를 복잡하게 해준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 시선은 학습되고 기억된 것들로 인해 그 관계 안에서 사물을 판독하지만 동시에 그로부터 부단히 이탈한다.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아우르는 것이 바로 그림이다.



풍경, oil on canvas, 151x211cm, 2016


범진용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풍경을 그렸다. 그 특정한 소재인 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그 풍경위로 낯선 장면이 겹쳐진다. 보이는 것만이 세계가 아니다. 그리고 저 세계는 형태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윤곽 지을 수 없는 기운과 규정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해, 현실과 꿈에 협잡에 의해 부단히 달리 보인다.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대는 묘한 힘에 의해 그 대상을 다시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그렸다. 그렇게 남겨진 그림은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걸쳐 있는 묘한 풍경이 되었다. 있으면서 부재한, 실재이면서 환각인 그런 풍경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 시각과 비시각,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위치한 풍경이 되었다. 좋은 작가들은 일상의 시간 속에서 느닷없이, 불현듯 나타나는 것들을 보는 이들 이다. 현실세계에 비이성적이고 우연적인, 몽환적인 세계가 순간 침입한 것을 놓치지 않고 접하는 동시에 이를 재현하는 이들이다. 보는 것의 모든 금기를 넘어서는 이들이다. 범진용의 그림 또한 그런 맥락 안에서 격렬하게 진동한다. 


■ 박영택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