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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오 / 자연의 상징화

박영택

광활한 창공과 광막한 바다를 배경으로 화려한 색채로 치장된 새와 꽃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 허은오의 그림이다. 새와 꽃은 흠사 도감처럼 사실적인 묘사로, 재현술에 입각해 꼼꼼하게 그려 넣었고 하늘과 물로 여겨지는 배경은 다소 추상적인 처리( 단색조의 색채와 붓질로만, 암시적인 흔적으로만)로 배경을 그려놓았다. 구체적인 실경이 현실적인 소재로, 실측의 시선 아래 취해진 게 아니라 관념의 장소가 상상력에 의해 설정되었는데 그로인해 어딘지 현실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분히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작가에 의해 상상되고 조합된 이 아름다우면서도 낯선, 환상적인 풍경은 아마도 숭고하고 신비하며 고요한 자연을 표현하기 위한 의도에서 연출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과 바다(바다 속), 새와 꽃의 각 이미지를 조합해서 결합 한 일종의 콜라주에 해당하며 그것들의 다양한 배치를 통해 이상적인 풍경, 공간을 만든다.




정(靜), 혼합재료, 50×50cm


자연은 매혹과 두려움의 양가적인 공존을 지닌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이른바 숭고미의 핵심이기도 하다. 숭고미란 인간을 파괴할 정도로 위협적일 수 있는 두려운 현상에 대해 느끼는 기묘한 아름다움을 일컫는다. 이 숭고미는 인간을 압도하는 스케일로부터 연유한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숭고미의 공통점을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대상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자연이 바로 그렇다. 자연을 그린 모든 그림의 이면에는 숭고미에 대한 매혹이 자리하고 있다. 깊은 바다 속 공간이나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물의 움직임을 형상화하고 그 위로 다양한 생명체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모습으로, 또한 광막한 창공이나 광대하고 고요한 하늘 공간을 뒤로 하고 자리한 아름다운 새와 꽃이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런 장소성은 작가에 의하면 ‘본연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고요한 장소’이다. 그 공간에 불현 듯 작은 생명체가 약동하고 피어난다. 한 쌍의 새들이 날개 짓을 하고 있고 화려한 꽃 들이 피어있다. 또는 새와 꽃이 한 몸으로 얽혀있다. 하늘, 바다, 새, 꽃들이 불연속적으로 연루되어 완전한 침묵을 거느리는가 하면 절대적인 고요 속에, 불변하는 영원한 순환의 자장 안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요(窈), 혼합재료, 53×53cm


원경에서 조망한 바다나 깊은 바다 속 심부, 구름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늘 등의 의도적인 배경처리는 공간을 무한하게 보이게 하고 고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려는 작가의 의도를 반영한다. 이 같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공간(우주 자연)에 유한한 새와 꽃이 놓여있다. 화면 속의 화조는 주위공간과 교감하는 듯 하다. 한 쌍의 새 역시 서로 조응하고 응시한다. 이를 통해 그림을 감상하는 관람자를 일종의 사유의 공간으로 이끄는 통로가 된다. 그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고요함에 침잠하는 경험을 유인하려는 의도이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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