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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백 / 선과 색의 중첩, 기이한 형상들의 변이

박영택



김원백-선과 색의 중첩, 기이한 형상들의 변이

 


김원백은 캔버스 면 천위에 여러 겹의 물감을 균질하게 발라 올렸다. 납작한 평면성을 강조하고 있는, 단색으로 단호하게 발려진 천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회화/색면추상회화에 해당하는 표면이다. 작가는 그 천을 임의적으로, 우연과 우발성에 맡긴 체 거침없이 자르고 오려낸다. 그것은 전적으로 훈련된 손, 무수한 기억을 머금고 있는 손이 해내는 일이다. 자기 몸의 최전선에 위치한 손을 이용해 평면의 천을, 그 손의 감각이 요구하는 대로 절취한다. 작가가 천을 마주하고는 느닷없이 칼과 가위를 수단으로 자르고 오려내는 행위는 즉흥적이자 무의식에 내맡긴 체 이루어지는 편이다. 물론 이 과정에는 무수한 드로잉작업(다양한 형태를 연상시키는 곡선의 유희)이 바탕에 깔려있고 그렇게 축적된 드로잉에 의해 숙련된, 감각화 된 손의 놀림, 그 기억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작업과정에는 이전의 드로잉이나 밑 작업은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작가는 전적으로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각/기억에 의지해 가위/칼질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납작하고 평평한 천을 오려내고 절취해서 묘한 형상, 윤곽을 선명하고 확고하게 새기는 일이고 그림이 얹혀지는 바탕 면/천을 무의미하게 만들거나 참혹하게 파괴하는 일이자 동시에 그 천에서 또 다른 이미지를 발굴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미 바탕 면인 천 자체가 궁극적으로 이미지가 생성되는 마당이고 원천임을 보여준다. 천을 오려내는 일은 단호한 선 작업이 되고 그 선/면들이 겹쳐지면서 또 다른 선/면을 파생시킨다. 개별단위인 작은 천 조각들이 또 다른 조각들과 바느질로 얽히고 묶여서 다시 표면위로 저부조로 부착되고 매달려있는 형국을 연출한다. 이 과정은 이미 하나의 색채로 존재하는 물질/피부를 다양한 형태 꼴로 추출하는 일이라서 직접 천에 드로잉을 하는 일, 다시 말해 날카로운 칼로 윤곽선을 따내고 가위로 자르면서 일종의 드로잉을 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면들이 중층적으로 포개어져 올라오면서 모종의 입체(조각)가 되거나 일종의 오브제 작업에 해당한다. 다양한 형상을 지닌 천 조각들이 만들어지고 이후 그 조각/파편들을 결합하고 집적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인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회화이자 동시에 저부조들이 입체적으로 구축되는 과정이자 또한 조각조각들이 바느질에 의해 박음질되고 결합되면서 예상치 못한 존재로 거듭나는 기이한 변이를 목도하게 한다. 여기서 천 조각들은 회화이자 조각의 경계에서 유동한다. 평면의 캔버스 바탕에 부착되거나 매달려 있는 천 조각들은 무수한 평면의 레이어를, 시간의 축적을, 기억의 다층적인 공간을, 손이 지닌 기억과 행위의 편린들을, 기기묘묘한 선의 생애를 목도하게 한다. 이는 다분히 자연계에서 수집한 생명체의 구조나 형상을 떠올려주는가 흡사 DNA 이중나선구조를 연상시키는 이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패턴, 형상은 무수히 반복되고 결합되어 나온다. 그리고 그것들은 색채, 형태, 구조 등에서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러 음들이 모여 소리를 구성하듯이, 혹은 수많은 세포들이 생명체를 만드는 과정과의 유사성이 자리한다.

 

이 작업에는 그의 취향과 관심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미술가로서의 능력에 뒤따라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와 기타를 다루는 뮤지션으로서, 그리고 과학에 대한 관심 등이 두루 반영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와 조너선 와이너의 핀치의 부리아 같은 과학책을 즐겨 읽는 다고 말한다. <유전자로부터>라는 작품의 제목 또한 이와 연관되어 있다. 미술과 과학은 먼 거리에 위치에 있는 같지만 실상 생명체를 바라보고 경이롭게 그 현상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는가 하면 또한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일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김원백의 형상은 모든 생명체의 외형과 그 내부 질서, 유전자의 질서를 흥미롭게 보고 그 과정을 추적해서 건져 올린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단지 세포나 DNA 이중나선구조를 흉내 낸 이미지 작업이 아니라 그 원리를 응용하는 일이다. 모든 생명체는 작은 변이로 인해 사는 자와 죽은 자가 결정된다고 한다. 다양성과 변이의 근저에 깔린 원동력은 모든 생명체의 발전을 이끄는 일반원칙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대에서 세대로 여행하는 모든 생물들에게 완성된 형태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매우 느리고 점진적으로 일어나 먼 훗날 화석에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 매일 매시간 숨 가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생명체는 오랜 진화기간을 거치면서 단순한 형태에서 점점 더 복잡한 생물을 빚어낸다. 이는 김원백의 작업과정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유전자는 DNA 가닥의 복제를 통해 복제된다. 자기복제자는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신할 수 있는 기호체다. 유전자는 DNA에서만 복제된다. 작가가 오려낸 기본적인 형태들은 이후 무수히 중첩되고 얽혀지면서 복잡한 존재로 변화된다. 그것은 원본으로부터 빠져나와 이질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로 변화되지만 여전히 유사한 형태 속에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생물 자손이 부모나 형제자매와 똑같지 않으면서도 대개 생물로서 살아남는 것처럼 말이다. 김원백이 오려낸 유기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진(자연계에 직선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유기적인 곡선만이 춤을 추듯 산개해있다) 형상은 생명체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유전자 정보의 한 단위로도 보인다. 그것들이 지속해서 진화, 변이를 거듭하는 형국이 그의 작업이 된다.

진화는 생물의 몸에서 일어난다.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에볼루티오에서 유래하는데 본래의 뜻은 둘둘 말리거나 접히거나 닫혀 있는 것풀거나, 펼치거나 연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생물학자들이 생명이 풀리고 열리는 과정을 자세하게 관찰하듯 김원백 역시 주변의 생명체를 유심히 관찰하고 엿보다가 그 형태를 추상화해 얻은 기호를 오려내서 그것들끼리의 우연적이고 초현실적인 조우를 감행하면서 그 결과 얻어지는 예기치 않은 다양한 형태, 상황을 작업으로 제시한다. 오려낸 작은 단위들이 거듭되어갈수록 약간씩의 차이를 지닌 것들이 무수한 존재로 거듭난다. 이는 유전자의 배열을 임의로 조작해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시도하는 일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과 대단히 복잡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그리고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받기도 하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는 몸을 만듦으로써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인데 김원백의 작업 역시 그러한 과정을 추인한다. 유전자를 단서로 삼아 온갖 형상을 자유롭게 창조해내고 그것들끼리 중첩시켜 또 다른 존재를 만드는 일종의 놀이와 겹쳐진다. 유사하지만 차이를 발생시키는 변천의 과정이고 여기에 음악적 요소가 개입하며 아울러 많은 기억을 지닌 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에서 생물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혁신과 모든 창조의 유일한 기원은 우연이다. 순수한 우연,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맹목적인 그 우연만이 진화라 불리는 거대한 건축물의 뿌리이다.” 라고 적고 있다. 김원백의 작업 역시 순간순간의 우연,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모종의 형상을 오리고 이를 중첩시켜 다시 제시한다. 원색의 단호하고 선명한 색채들이 결정적인 선의 흐름 아래 마치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생동감 있게 출현하고 있다. 평면에서 풀려난 선으로 이루어진 얇은 면들이 다시 얽혀가면서 만들어내는 알 수 없는 기이한 변형체들이. 무수한 변이들이 자유롭게 증식하는 화면은 여전히 선과 색으로 충만한 회화의 한 장면을 기꺼이 발산하면서 흡사 살아있는 생명체의 유전자처럼 거듭나고 있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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