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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클링에의 영성적인 인체 조각

박영택

디트리히 클링에의 영성적인 인체 조각



  디트리히 클링에의 조각은 나무를 거칠고 대담하게 깎고 나가 인간의 육체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만든다. 분명 사람의 얼굴과 몸을 재현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부단히 빠져나온 또 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작가에 의해 해석되고 창조된 인간의 이미지이자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해 이미지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남긴 그 모든 인간 육체의 조각적 재현에 대한 총체적인 기억과 학습 속에서 건져 올린 것이기도 하다. 선사시대부터 현대 조각에 이르는 긴 여정 속에서 출현한 인체 조각에 대한 여러 흔적들이 클링에의 인체 조각 안에 거칠고 생생하게 숨 쉬고 있다. 클링에의 조각은 전통적인 조각의 요소에 현대적인 질문이 동시에 함축적으로 녹아있고 그 안에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조각의 세계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영성적인 힘과 마력을 지닌 불가사의한 원시조각에서부터 20세기 현대조각에 이르는 여러 미술사의 궤적이 두루 관통하는 작업이다. 


 클링에의 조각은 비교적 작은 두상이거나 반신상 내지 전신상들이다. 실재하는 인간의 몸을 모델로 하기보다는 작가의 상상에 의해 변형되거나 왜곡, 굴절된 이 인간상은 나무와 인간 사이에서 자연스레 파생한 결과물로 다가온다. 실재하는 식물처럼 자라나는 착각도 든다. 특정한 형상을 접하기 이전에 나무의 물성을 깎고 쳐내고 과감하게 절단해 낸 자국과 단면들이 우선적으로 생생하게 감촉된다. 인위적인 수공의 자취와 오랜 시간의 흔적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남겨진 것이 혼재하고 최소한의 이미지와 나무 자체의 물질감과 그 원초적인 형태가 긴장감 있게 공존한다. 클링에의 조각은 조각들이 자연물처럼 취급되기를 바라는 동시에 그것이 불가피하게 예술가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작가는 나무를 과감하게 추려내면서 자신이 원하는 영성적이고 마력적인 인간의 얼굴과 몸을 남기고 있는데 이 인체는 가장 전통적인 조각의 소재이자 주제인 동시에 아카데믹하면서도 전위적인 실험을 모색하는 매개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구상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다분히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내러티브를 연상시키는 형태들이 대단히 개성적으로 마감된 조각이다. 


 클링에의 조각은 현대조각의 여러 어법을 수용해내면서도 원시미술, 전통미술에 내재한 근원적인 미술의 힘을 적극 끌어안고 있다. 신화와 종교미술에 내재한 영성적인 힘, 정신적인 이미지를 여전히 중시한다. 신화는 과거에 의해 현재를 설명하고 현재에 의해 미래를 설명하는 시간통합적인 특성을 지니며 어떤 질서가 나타나면 그것이 영구히 계속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통해 확인시키고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원형예술로의 회귀는 삶과 예술이 융화된 원시 사회를 부활시켜 기계문명으로 인해 상실한 인간성과 대화 단절, 그리고 관리 사회가 빚어낸 인간 소외를 해결할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이는 사회적 삶의 문맥 안에 존재하는 예술을 되살리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통찰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링에 조각의 지향 점 또한 그 어딘가에 놓여있다. 


  그의 조각은 왜곡이 심하고 절단, 삭제되어 불충분하거나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인체를 과감하게 변형하거나 과장되게 뒤틀어놓는 것은 원시미술이나 미켈란젤로, 로댕의 전통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큐비즘이나 표현주의의 세례 또한 강하게 인식시킨다. 불완전한 모습을 지닌 조각도 그 자체로 완성된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토르소가 조각이 형식으로 정착된 때부터인데 이는 당시 고대유적 발굴로 인해 부서진 인체조각들이 대중에게 전시된 것으로 인해서리고 한다. 고대의 유물들을 발굴하고 그것이 전시되면서 불가피하게 본래의 모습에서 이탈되고 파편화된 된 것을 접하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완벽한 인체의 재현에서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클링에는 총체적 인간상보다는 각 부분이 주목의 대상이 되게 하고 따라서 인체의 파편화와 이의 결합방식을 흥미롭게 연출한다. 인체의 부분을 삭제하는 방법은 세부묘사를 생략하는 단순화 작업과 더불어 조각을 순수형태로 보는 시각이기도 한데 이처럼 일부분을 미완성으로 놔두면 역설적으로 다른 부분의 효과가 고양된다.  클링에의 조각은 나무의 물성을 자르고 밀고 나간 자국들은 붓질과도 같은 표현적인 터치를 남기고 그 결은 뼈대와 근육, 살과 표정을 이루고 동세와 시선을 유인하는 한편 다각적인 면을 안겨준다. 작가는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고 그대로 남겨 둠으로써 한 단계에서 다음단계로 넘어가는 재료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시각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계속적으로  관람자가 작품을 과정의 결과로서,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상을 이루는 행위의 결과로서 인식하게 만든다. 즉 ‘의미는 경험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의 과정 자체에서 발생한다’는 관점을 관람자에게 주입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로인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무정형의 형상을 관자에게 선사하고 보는 방향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각은 그만큼 다채로운 표정, 다면적인 공간을 안겨준다. 또한 그 같은 처리는 표면과 그 해부학적 깊이 사이의 소통관계를 단절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그 자체의 해부학적 토대를 반영하지 않는 몸짓들, 즉 ‘우리 자신 속의 인식가능 한 선행경험에 논리적으로 부합될 수 없는 몸을 보여주는 피부’가 된다. 나무 덩어리를 격렬하게 깎아내서 자신이 원하는 모종의 형태를 찾아나가는 전형적인 조각의 방법론이면서도 동시에 과도하게 폭력적이고 상처를 안기는 표면으로 인해 재현된 상에 머물기 보다는 그 표면이 주는 힘에 의해 고취되는 여러 감정에 시달리게 하는 클링에의 조각에서 거칠고 표현적인, 뜨거우면서도 우연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표면은 매우 중요한 풍경이 된다. 사실 클링에의 조각은 인체로서보다는 물체로서 보다 더 강하게 인지되게 만든다. 인체 자체를 어떠한 맥락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족적 물체로서 드러내고 있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분명 특정 인간의 얼굴과 몸을 재현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나무덩어리나 기이한 물질로 요동친다. 사실 그의 작업의 최종적 결과물은 나무가 아니라 브론즈다. 작가는 나무 작업을 궁극적으로 브론즈로 캐스팅했다. 나무의 결과 물성을 고스란히 살려낸 주물 작업인 것이다. 여기에는 견고한 표면과 색채, 오랜 시간의 흔적 같은 것들이 무겁게 내려앉은 느낌이 강화된다. 한편 나무를 고스란히 깎아낸 결과물은 나무/브론즈 사이에서 무척 헷갈리게 존재한다. 조각의 물질성 자체를 상당히 애매하게 해줌과 동시에 그 이질적인 모두를 동시에 껴안고 있는 형국이다.


  작가는 인체를 과감하게 분절, 변형하고 또 다른 조각 뭉치나 사물과 결합내지는 콜라주하는 한편 물질을 즉흥적이고 직관적으로 처리한다. 그리고 유기적 요소와 기하학적인 요소를 통합적으로 구현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추상미술이 단순명쾌하고 균형적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고전주의와 부합하는 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지점이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클링에 조각은 인체를 통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내용,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고양하기 위해 세부를 압축, 절제하는 동시에 표면에서 그러한 힘이 발산될 수 있도록 고려한다. 그리고 이는 매우 직관적으로 이루어지는 편이다. 나무를 쳐대는, 깎아대는 방법론은 다분히 자동 기술적이다. 자동주의는 ‘작가가 자신을 외부세계와 완전히 분리시킨 상태에서 생겨나는 모든 사고를 가능한 한 빨리 기술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또한 우연의 법칙이 작동한다. 조각은 원래 있는 그대로 조각가의 손으로 고스란히 세상 밖으로 드러낸 오브제가 아니라 한 예술가가 세상에 대한 개인적인 시각과 생각을 표출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우연의 오브제라는 인식이 은연중 깔려있다. 한편 표현의 완전한 자유를 지향하는 이 제작 행위에 다분히 모든 모험에 열려있는 다다이즘의 정신적 분위기와 예술 작품이 선험적 이성이 아닌 직관의 산물이며, 창조 과정은 자연발생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낭만주의 예술론이 동거하고 있다. 무겁고 거무칙칙한 색채와 애곡된 형태의 병적 심리를 탐구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인간 부조리나 정신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는 독일 표현주의의 유서 깊은 전통에 속한다. 또한 인간과 나무, 인간의 몸과 이질적인 사물들의 결합으로 인해 기이한 존재로 변신을 거듭하는 그의 조각은 다분히 초현실주의적인 편이기도 하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현실,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의식과 무의식의 벽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생물학적인 경계선도 파괴해 인간과 동물, 생물과 무생물간의 융합을 시도한다. 이처럼 클링에 조각은 이질적인 물질들 간의 불연속적인 결합, 인체의 부분을 추상화된 단편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 조각품을 올려놓거나 현실 공간으로부터 분리시키던 좌대를 작품의 일관된 조형 요소를 삼고 있는 등 현대조각의 여러 성취들이 하나로 들러붙어 있으면서 이를 통해 개성적인 인체 조각의 새로운 풍경을 그려나가고 있다.  


■ 박영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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