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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시적인 세(勢)의 실체화

박영택

비가시적인 세(勢)의 실체화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아트레온에서 마련한 이번 기획전 <선의 기세>는 아트레온 5층에 마련된 우석뮤지엄과 깊은 연관성 아래 이루어졌다. 우석 최규명 선생(1919-1999)은 개성 출신의 사업가인 동시에 한학자인 선친의 학통을 이어 한학과 서예, 그리고 전각에 심혈을 기울인 분이다. 선생이 남긴 전각 작품 약 450과와 함께 750여 점의 서예작품이 현재 아트레온 5층의 우석뮤지엄과 지하 1, 2층의 전시실에 상설 전시되고 있다.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함과 탈속의 아취가 물씬거리는가 하면 해학미와 함께 고졸하고 소박한 미감으로 이룬 그 나름의 조형세계가 분방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번 기획전시는 이러한 우석 선생의 작품세계를 기리는 아트레온의 성격에 따라 서예와 전각의 세계와 접목될 수 있는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 작품을 선보이고자 한다. 

 노먼 브라이슨은 미술의 역사가 그림 안에서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 변화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고 전한다. 그러니까 미술의 역사 초반기에 그림은 언어의 대체물로서 내러티브와 전달이라는 주요한 기능을 지녔으나 이후 그림은 언어에서 벗어나 문학으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점차 추상미술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재현기호’에서 ‘순수기호’로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그림이 이전에 지녔던 문학의 도구적 기능, 언어에 종속된 형태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한 데서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추상미술은 형상의 재현으로부터 벗어나 회화적인 흔적만으로 이루어져 그림 자체의 자율성을 확보한 예로 꼽힌다고 지적한다. 
1950년대 앵포르멜 회화의 대표적인 선구자인 조르주 마타유는 동양의 서체와 연관하여 유럽 회화는 동양의 서체를 모방함으로써 기호화되고 문자화될 수 있으며 그림은 이런 과정에서 순수하게 추상적인 기호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헤럴드 로젠버그 또한  추상표현주의의 기법인 액션 페인팅을 서예적 제스처로서 평가하기도 했다. 선은 드로잉의 제1요소로서, 대상의 윤곽선을 묘사하며 대상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 전통적인 기능이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작가인 잭슨 폴록의 경우, 얽히고설킨 그의 선들은 안정된 윤곽선을 전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형상을 그려내는 드로잉의 목표를 좌절시키며 전적으로 추상에 이바지한다. 그 선은 재현의 기능에서 완전히 벗어난 선이자 거의 무의식적인 선, 오로지 화면 안에서 신체의 움직임만을 반영하는 선이다. 또한 선과 색의 구별마저 제거하거나 중지시킨다. 그러니까 ‘중력의 지배를 받는 신체의 움직임과 물감의 점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했기 때문 폴록의 선 그물망은 선으로 이루어진 것이면서도 선이 전통적으로 해온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폴록 이후 일련의 추상표현주의 작가인 드 쿠닝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 또한 격렬한 몸짓을 반영하는, 붓질만으로 가득한 추상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서구현대미술 이른바 모더니즘에서의 붓질은 주어진 회화의 조건에 대하 반성과 비판이라는 서구인들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 속에서 모종의 내재적 역사성의 논리에 의해서 나타난 매우 서구적인 역사관이자 세계관, 회화관의 결과일 뿐이다. 
반면 동양에서 그림의 주체는 궁극적으로 문인이었다. 문인들에게 그림이나 서예란 여기나 취미에 국한되는 아니라 자신의 사상, 감정, 이념을 표상하는 불가피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문인의 그림과 서예는 지성과 인성의 수양을 궁극 목적으로 하는 필묵화의 정신적 훈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로인해 문인화에서는 창작자의 자아수양을 통한 정신의 반영이란 것이 중시되었다. 사물의 닮음 보다는 사물을 표현하는 사의를 중시하기에 사심화(寫心畵)나 사의화(寫意畵)라고 불린다. 아울러 문인들에게 그림과 서예는 분리되지 않았다. 이는 서화일체론, 서화동원론에 기인한다. 서예는 문자의 의미를 전달하는 쓰기이자 움직임의 예술이기도 하다. 장언원에 따르면 글자는 그 뜻을 전하고, 그림은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록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대상의 형체에 바탕을 두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치하며, 그 근원 역시 서로 같다. 한자는 분류상 사물의 형태를 근거로 부호화하여 사상을 전달하는 표의문자 혹은 상형문자에 속한다. 그것은 어느 문자보다 풍부한 메타포와 대상의 서술성을 함유하며, 시각적으로는 심오한 상징성과 주술성 및 장식성 또한 지니고 있다. 또한 상사성에 입각한 상징(symbol)에 가까운 한자의 서사는 단지 의사전달의 효용만을 가진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관념과 사유의 환기효과를 수반하는 시각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그래서 서예는 전통적으로 단순한 문자예술이 아니라 우주의 리듬을 표현하는 현묘한 기예라 여겼고, 아울러 마음을 표현하는 심상(心相) 예술로 여겨졌다. 서예는 서예가의 독특한 붓의 기운과 동시에 쓰인 한자의 형체를 빌어 비가시적인 모종의 세(勢)를 실체화 하는 일이기도 했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형상(붓질과 문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자극의 방편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필법의 기술은 각 예술가들의 개성을 담아내며, 그 각각의 필획은 보는 자로 하여금 정서적인 데에 호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서화에서 구사한 붓질, 선은 서구 모더니즘이 지향했던, 재현에서 벗어나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을 인식시키는 붓질, 순수한 재료 자체로 환원되어버리는 붓질/선하고는 무척 다른 맥락에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문인화의 화법이나 서법, 전각의 칼 맛이 자아내는 선은 모두 또한 필선에 있어 혼(魂)과 신의 기운과 역동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동질의 것이었다. 
오늘날 한국현대미술에서는 전통적인 서예의 선과 문자, 전각의 칼 맛을 원용해 새로운 회화로 환생시키는 다양한 작업들이 몸을 내밀고 있다. 그에 따라 서예의 필법과 붓질의 호흡, 운필의 효과를 응용해서 붓질만으로 이루어진 추상 작업 내지 서체적인 붓질 작업, 그리고 선 자체를 조형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작업 등을 선별해 보았다. 아울러 문자를 화면 안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다루는 회화작업, 문자와 붓질이 어우러지면서 그 경계가 불분명하며 서로의 영역이 부단히 융합되는 경지를 보여주는 사례를 모았다. 따라서 정통적인 서예나 전각 작업은 배제했으며 가능한 한 서예와 전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로부터 유추해낼  수 있는 회화성 내지 회화로서의 가능성을 추출해내고 있다고 여겨지는 작업을 찾아보았다. 그것은 한국적 회화의 가능성, 전통과 현대의 관계 및 동양화와 서구 모더니즘회화와의 새로운 접점의 모색, 나아가 회화라는 매체에 대한 넓은 모색이란 점에서도, 그리고 오늘날 영상매체에서 나타나는 이미지의 탈신체화 경향의 극단적인 추구에 대해 상대적으로 육체적인 회화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더욱 고려해볼 만한 여러 문제를 던져 준다는 생각이다. 사실 동북아시아에서 서예와 전각예술은 평면에서 낼 수 있는 조형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영역이자 모필과 칼로 이룬, 선이 자아내는 무궁무진한, 매혹적 이미지의 보고이다. 이미지와 문자, 형상과 추상적인 기호 사이에서 그리고 평면과 요철의 얇은 공간 안에서 현기증 나게 전개되는 시각예술의 정수가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또 어떻게 해석되어질 수 있는지를 가늠해보고자 마련한 것이 이번 기획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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