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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련-‘저기’에 자리한 욕망의 대상화

박영택

이호련-‘저기’에 자리한 욕망의 대상화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이호련이 그리고 있는 대상은 모두 젊은 여자들이다. 그들은 일정한 유형의 스타일을 공유한다. 아마도 이런 여자상이 작가에게는 모종의 이상적인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고 보여 진다. 소녀티를 벗은 젊은 여자이면서도 어느 정도의 성숙미를 지닌, 그리고 관능적이며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아찔하게 안겨주는, 그러니까 청순함과 순진성, 여성적인 성적 매력을 동시에 끌어안고 있는, 그러한 이중적 성향이 공존하는 여자들이다. 동시에 그 여자들은 특정한 행위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자태를, 몸을 일방적으로 지켜본다. 그녀들의 뒷모습과 불현듯 드러나 버린 짧은 치마 속의 속옷, 늘씬한 다리와 하이힐을 본다. 그림을 보면 그녀들은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속옷을 보여주기 하거나 이를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보는 이(특히 남성)의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이 은밀한 엿보기는 보는 이에게 긴장과 함께 약간의 흥분을 동반한다. 그만큼의 시선의 몰입으로 유도한다. 작가에게 이 소재는 자신에게 가장 매력적인 존재이자 그리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특별한 대상이자 생의 즐거움인 듯하다. 작가는 이를 숨기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호련의 그림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좋아서 그리는 일이 된다. 이 점은 기존의 재현회화와 조금 다른 측면일 수 있다. 관례적인 인물의 재현이 아닌 셈이다.    

 작가는 직업 모델을 고용해 이들을 통해 특정 상황을 연출한다. 그것은 작가에 의해 상상된 장면이다. 모델들은 작가가 원하는 포즈를 취하고 모종의 행위를 한다. 모델들의 옷과 신발 또한 작가가 선택한 것들이다. 그러니 이 모델들은 완벽하게 작가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존재다.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물가에서 물장난을 치거나 출입구 쪽을 엿보기 위해 몰려있는가 하면 벽면에서 벽돌을 붙이는 공사를 하고 백사장에 누워있는가 하면 침대에 누워있는 등 다양한 상황,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장면이지만 기실 허구적인 장면, 연출된 풍경인 셈이다. 대개 집단적으로 몰려있으며 관자의 시선을 외면하고 다른 곳을 바라보거나 부분적으로 머리가 잘려있는 경우도 있는데 한결 같이 자신들의 행위에 깊이 몰입해 있다. 따라서 관람자는 이 순간을 일정한 거리에서, 모델들의 무관심 속에 오랫동안 일방적으로 지켜보게 된다, 이 장면연출은 작가에 의해서 좀 더 관음증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유도하려는 장치일 것이다. 작가는 흡사 광고사진을 촬영하는 사진작가이거나 광고디자이너의 시선 및 기존의 관습적인 대중문화의 미장센을 부분적으로 원용해낸다. 그러한 포즈, 장치가 그림 안에 잠복해있다.   
이 그림은 철저하게 주어진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이다. 그러나 대상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 그것을 촬영한 사진을 보고 그렸다. 따라서 사진에 기생해나가는 회화이자 사진의 표면이 캔버스의 평면과 부단히 일치하고 있는 그림이다. 그래서 붓질의 흔적은 부재하고 평면적인 화면에 매끈하게 칠해진, 반질거리는 피부에 부드럽게 뭉개진 붓이 고르게 퍼져 있다.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상상하고 이를 모델을 동원해 정교하게 만들어낸 후 이를 사진으로 촬영하고 다시 그림으로 정밀하게 옮기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고 사진을 그대로 옮긴 것도 아니다. 사진을 참조로 해서 그것을 재현하지만 연속적인 장면과 시간의 흐름을 겹쳐놓기에 분명 사진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사다리에 올라타 일하고 있는 여자들을 그린 그림의 경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다리와 사람들이 겹쳐져 있는 지점에서 사다리 끝부분과 사람의 다리가 겹쳐있는 부분에서 사다리의 한쪽 끝은 그려지지 않았다. 얼핏 봐서는 온전히 대상을 재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잘 살피면 생략과 모순이 깃든 그림이다. 그것은 회화이기에 가능한 지점이다. 작가의 의도가 자유롭게 깃들고 편집과 왜곡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포즈로 모델들을 촬영한 후에 이 사진들을 편집해 한 장면을 설정한다.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그리고 싶은 대상을 포획하고 응고시키려면 사진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진들을 갖고 컴퓨터상에서 편집과정을 거쳐 이룬, 자의적으로 재배열되고 배치된 이른바 콜라주 된 사진이미지들이 뒤섞이면서 다양한 시간이 누적되고 겹치게 되고 이상한 결락이 생겨난다. 그리고 이를 그린 그림은 그림에서만이 가능한 시간과 공간의 흔적을 은밀하게 안긴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적셔진 화면은 나른하고 아스라한 분위기를 몽롱하게 피우고 가라앉힌다. 또한 명확한 윤곽선이나 대상의 집중보다는 화면 전체를 지탱하는 중성적인 톤과 흐릿한 표면은 다분히 영상적인 피부를 안긴다. 더없이 사실적이면서도 한없이 평면성인, 피부뿐인 화면이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과 다양한 기름을 섞어서, 그 종류와 양 · 농도의 치밀한 고려와 계산에 따라 재현회화의 한 격을 높이려 한다. 이는 전적으로 물감과 기름의 종류, 양에 따른 다양한 모색과 실험에 기인하고 있다. 상당히 치밀한 계산과 처리에 힘입은 방법론의 구사에 따른 그림은 극사실주의 회화이면서도 물감과 붓질의 물질감이 부단히 휘발된 묘한 피부를 간직하고 등장한다. 그는 가장 오래된, 그러면서도 가장 익숙하고 보편적인 유화를 사진기법과 일치하는 선에서 풀고 있다. 사진의 납작한 표면과 캔버스의 평면성이 일치하고 대상은 사실적이면서도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회화이면서도 사진의 표면은 동일하다. 붓질은 사라지고 물감을 펴서 바른 흔적이 고르게 분사되어있는 듯 하다. 회화와 사진이 뒤섞인 이상한 피부가 되어 다가온다. 실제이면서도 허구이자 사실적이면서도 어딘지 추상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이유다. 그것은 실재하는 그러나 명확하게 설정하기 어려운 이상한 욕망의 비가시적 분위기를 가시화하는 그림이다. 여기서 이 그림은 분명 구상이고 재현회화이지만 어딘지 이상한 결락감이 드는 부분이 생겨난다. 그것은 대상의 외관을 재현하는 놀라운 솜씨를 한축으로 빛내고 있지만 동시에 그 재현의 공간은 이상한 부정합을 드러낸다. 어긋나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숨겨져 있다. 또한 작가가 그린 신체는 단지 대상의 닮음꼴에 그친 도상, 대상의 외관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감각이고 대상의 신체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작가가 나름 강렬하게 감각하고 욕망화한 것, 체험한 신체의 대상화이다. 그래서 보는 이들이 신경, 감각을 다분히 건드리는 그림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저기’에 있다. 그림 안에서 유령처럼, 환각적인 존재인양 자리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체이면서도 물질적 존재감 없이 몽롱하게 아른거리는 아지랑이 같은 저 존재성은 욕망의 대상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실질적으로 방증하는 회화적  제스처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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