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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선- 무너지는 세계가 빚어내는 역설

박영택

한지선- 무너지는 세계가 빚어내는 역설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이것은 특정한 장소인가? 한지선이 재현하고 있는 장면은 특정 장소는 아니다. 허구적인 풍경이자 상상된 장소에서 모종의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 이처럼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는 경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형성하고 특징짓는다. 모든 장소란 인간 행위가 벌어지는 무대이자 특정한 시대정신이 주입된 환경을 말한다. 작가에 의해 가설된 이 허구의 장소는 세계와 현실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된 은유로서의 장소성이다. 
구름이 잔뜩 끼여 있는 광활한 하늘을 배경으로 지상의 건축물과 벽, 계단과 길, 그리고 체스판과 체스판의 말들, 카드, 주사위, 새장과 의자, 바퀴 그리고 종이배와 종이학, 작은 원형의 색 점들이 사방으로 떠돌고 있다. 납작한 나무판에 조밀하게 그려졌고 표면을 경계로 안과 밖으로 심한 요철의 효과를 입체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이자 조각이 혼재된 화면은 기묘한 환영을 극대화하고 있다. 통일된 시점과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구성을 지우고 복잡하고 촘촘한 세계가 어지럽게 선회한다. 대지에 저당 잡혀있는 것들이 죄다 허공으로 끌어 올려져 부서지고 균열이 간 상태에서 급격히 와해 되고 있는, 이른바 파국과 절멸의 상황을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개별적인 그 사물들은 역설적으로 눈부시게 환하고 밝은 색으로 몸을 바꾸는 하늘을 배경으로 명징하게 빛나면서 다시 재건과 부활을 꿈꾸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제목이 <Resetting>이다. 아마도 작가는 상상 속에서나마 불충분하고 부조리한 이 세계와 현실의 전복을 꿈꾸면서 다시 새롭게 환생하기를 기대하는 욕망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현실계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이 장면 안에는 보편적인 건축양식의 외관이 다분히 개념적으로 그려져 있다. 사실적이면서도 조밀한 장난감 같은 건물과 여타 사물들은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한다. 그러면서도 실존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그림자를 통해 보여준다. 화면에 등장하는 건축물과 벽, 계단과 다리 등은 특정 장소를 연상시켜주면서 그로부터 연유하는 문화, 역사, 기억을 복원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건축양식이 순간 해체되어 기억에서 마구 빠져나가 결국 실체 없는 파편으로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점차 개인이자 공동체로서 기억하는 능력을 포기하고 있는 현 세태를 반영하는가 하면 시간을 사라지게 하고 기억을 혼란시키는 모종의 상태를 은유하기도 한다. 

 동시에 벽돌로 단단하게 쌓아 올려지고 수직으로 솟은 건축물은 보안과 안전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외부의 가능성과 기회로부터 차단되고 규칙에 종속된 감금의 장소이기도 하다. 건축의 외관에 금이 가고 부서지며 흩어지는 것은 그곳이 안전하고 편안하다는 환상을 순간 깨부순다. 견고해 보이는 모든 사물들 역시 제자리에서 추방당해 어지럽게 선회한다. 지상에 자리한 것들은 죄다 부서져서 흐물거리거나 또한 엄청난 충격에 의해 폭발되어 버린 듯 하다. 지상에서 세운 모든 것들이 하늘에서 부유하는 장면은 덧없고 무의미하며 헛된 정서를 유발한다. 이는 어쩌면 오늘날 너무나 빨리 만들고 파괴되고 또다시 짓는 도시 문화를 반영하는 것일까? 결과적으로 시간의 흐름은 모든 영속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변화하는 양상으로 바꾸어 놓는다. 최근 디지털 이미지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작가들은 공간을 휘게 하고, 시간을 접고, 새로운 차원의 입구를 찾기 위해 실제와 가상을 드라마틱하게 혼합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회화는 그런 경향을 은연중 반영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림 안에서 시간과 공간은 휘어지고 접히고 굴절되면서 중력의 법칙에 벗어나 있으며 자연법칙에서, 그 모든 인과율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그림은 논리적 흐름이나 관계를 설정하지 않고 서로 다른 맥락의 이미지를 병치하거나 중첩, 시간적·공간적으로 어긋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은 분명 가상의 장면인데 가상이란 환상의 영역으로, 시간을 초월하는 특징을 지닌다.  

 주어진 화면에는 선원근법이 아니라 다양한 시점이 흥미롭게 공존한다. 여전히 3차원 공간의 환영이 작동하지만 화면의 중심을 설정할 수 없고 따라서 관자의 정해진 자리가 비워진 상태에서 보는 이들은 이 화면을 정처 없이 헤매면서 바라보아야 한다. 기존 회화나 부조를 볼 때 변함없이 정면 시점이 지배적인 것과는 달리 여기서 시점은 어느 것도 절대적일 수 없다. 소실점이 주어지지 않는 화면은 다양한 시점을 허용하고 여러 시간의 접촉면을 만든다. 그만큼 공간을 지각하는 관점이 넓어지고 저 부유하는 사물들에 대한 공감각을 확장시킨다. 더구나 평면 바깥으로 돌출되어 튀어나와 있거나 화면 내부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 있는 식의 요철효과의 극대화는 기이한 착시에 흔들리게 한다. 그래서 회화와 조각의 경계 또한 은밀하게 교란된다. 이 같은 변형 화면은 그림과 입체를 동시에 거느리고 벽 위에 돌출되어 있으며 회화이자 부조이고 그리기와 만들기가 혼재되어 있으며 여러 층위의 공간/시간을 겹겹이 쌓고 있다. 정면에서는 평면적으로 보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서로 다른 깊이, 층차를 지니고 있기에 표면에서는 눈에 띄지 않은 그 다른 깊이, 복잡한 내부가 드러나면서 겉과는 다른 또 다른 시간, 공간이 포착된다. 그것은 벽으로부터 부단히 나오려는 힘으로 가득하다. 깊이를 자각하게 하고 이를 통해 공간에 대한 신체적 각성을 불러일으켜서 우리가 화면 안에서 상상의 도약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이 작업은 평면에 대한, 표면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과 해석을 안긴다. 

 견고하고 영속적인 물질계와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질서를 교란하고 분산시키는 작가의 시도는 삶의 비영구성과 인간이란 존재의 연약함에 대한 메시지를 떠올려준다.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것들에 대해 보내는 이 애도와 의심스러운 시선은 집단적인 불신, 거대 서사의 단일함에 대해 의심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그러한 메시지는 종이학, 종이배, 그리고 체스와 바퀴, 끊어진 계단, 산산조각으로 흩어져버리는 건축물 등에서도 유추된다.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 도상들은 반복해서, 다만 배열을 달리하고 위치를 이동하면서 증식할 뿐이다. 한결같이 유사한 기호로, 같은 방식으로 그려지는 반복되는 도상들은 마치 콜라주처럼 화면에 배치되어 있다. 그것들은 자세한 세부묘사와 꼼꼼한 장인 정신으로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허구적으로 만든다. 또한 그 도상들은 간접적인 상징을 거느린다. 예를들어 체스는 삶과 죽음을 포함해 이원성duality간의 충돌을 전통적으로 상징하는 게임임을 환기시킨다. 유렵의 귀족들에게는 군대와 전쟁을 본뜬 이 게임으로 자신의 전략을 미리 시험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좋아했다고 해서 ‘귀족들의 게임’이라고도 불린다. 권력, 전술, 계략, 음모, 경쟁 등이 잠복되어 있다면 카드, 주사위 등은 운에 맡겨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인생에 대한 은유다. 뒤집어진 의자는 또 그만큼 불안한 상황, 부재의 자리를 암시하고 텅 빈 새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집과 건축물, 의자와 새장은 일종의 거처, 보금자리, 안식처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것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종이학은 천 개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을 떠올리는 희망과 기원의 의미를 거느린다. 종이배는 출렁이는 가벼운 물결에도 쉬이 뒤집히는 속성으로 인해 그만큼 위태로운 불안,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삶의 메시지다. 바퀴는 돌리거나 굴리기 위해 둥근 테 모양으로 만든 물건이다. 제어 가능한 회전운동이지만 속도가 붙으면 자체로 그저 굴러갈 뿐이다. 대부분의 도상들은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힘들에 의해 견인되는 상황의 은유일 것이다. 비록 끊어지고 부유하는 계단이지만 그것은 모종의 연결고리, 희망과 꿈, 한 개인의 삶의 역사와 이력 등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수많은 도상들 사이로 작은 구슬, 점들이 유동하면서 빛난다. 별처럼 선회하는 가벼운 존재들의 악센트!  
    
 한지선의 그림은 분명 실제와 가상이 뒤섞인 혼성공간이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견고한 세계, 그러나 동시에 한없이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는 장소, 늘상 종말론적인 느낌과 파국을 향해 줄달음질치는 물적 토대인 현실적 지반이 죄다 꺼져버리는 순간을 일정한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다. 마음 저쪽으로는 묘한 통쾌함이 일어난다. 무미건조하고 숨 막히게 조여진 세계의 허상을 날려버리면서 저것들이 다 해체되고 난 후의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은밀히 상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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