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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심 / 식물안의 낯선 타자

박영택

동물의 타자는 식물이다. 움직이고 생각하는 동물의 입장에서 아무런 감각없이 자리하는 식물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순적 존재다. 미적인 관점에서 식물은 아름답다고 여겨지지만 더러 그로테스크하고 혐오스러우며 혼돈스럽기도 하다. 나는 깊고 어두운 숲을 볼 때 저으기 두렵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갖가지 식물들이 군집해 있는 땅은 혼돈 그 자체다. 주위에 늘 자리하고 있어서 익숙하지만 그것 자체만을 오래도록 응시하다보면 새삼 무척 낯설게 느껴진다. 사실 내 몸 밖의 모든 것들은 나로부터 한없이 멀다. 그것에게로 가는 길이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는 종종 나와는 또 다른 생명체인 식물에 대한 사랑에서 미적 영감을 얻기도 하고 생명의 의미를 깨닫기도 하며 그것을 사유하기 좋은 것, 꿈꾸기 좋은 것으로 여긴다. 김선심 역시 식물을 오랫동안 섬세하게 관찰하고 응시하면서 상상하기를 즐겨한단다. 작가는 자신이 독대한 식물을 깊은 사랑의 시선으로 보았다. 지극한 사랑과 관심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한다. 그렇게 해서 외면이 열리고 내부가 드러난다. 피상적인 앎이 깨지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 한 생명체가 자신에게 부여된, 인간에 의해 덧씌워진 모든 명칭과 지식의 체계를 분쇄시키고 오로지 살아있는 몸으로서 현전한다.

작가는 선인장과 여러 식물에서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회화로 번역한다. 상상력을 동원해 기존 형태를 다채롭게 변형하는 한편 색다른 생명체로 전이시키거나 다른 질감으로 변모시키고 낯선 풍경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식물을 통한 적극적인 몽상과 상상하기에 해당한다. 외형적인 모습에 만족치 못하고 그 외면이 숨기고 있는, 숨기고 있다고 여겨지는 형상을 떠올리고 그로부터 연원하는 다양한 감각에 시각적 이미지의 외형을 안기는 일이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눈이 본 것을 기록한, 표현한 그림이다. 순간 선인장이나 특정 식물은 낯설고 이상한 존재로 다가온다. 단지 분류법에 의해 명명된 개체가 아니라 자연의 구성원으로서의 고유한 가치를 발하며 숨 쉬는 생명체로 밀려오고 그것은 기존에 우리가 구분해놓은 동물성의 반대개념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동물성을 지닌 식물, 식물성 안에 자리한 여러 타자성을 드러내버린 그런 식물, 기시감을 주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작가만의 식물이미지, 이른바 기형식물이 되기도 한 것이다.

배경 없는 화면은 거대한 꽃, 식물과 알 수 없는 생명체의 혼재, 날카롭고 뾰족한 가시와 자잘하고 빽빽한 털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위로 새까맣고 작은 꽃잎을 매단 검은 꽃이 균사처럼 혹은 죽음의 검버섯처럼 피어나면서 부유하고 있다. 거대하고 어둡고 습하다. 화면은 수증기 같은 열기, 비처럼 흐르는 액체성, 꿈틀거리고 흐느적거리는 동세, 기이한 질감으로 가득 뒤덮혀 있고 폭력적이고 날카롭고 성처투성이의 상황극을 안긴다. 마치 식물들간의 처절한 투쟁과 그로인해 빚어진 참혹한 상흔들만 남겨진 것도 같다. 분명 이 그림은 기존 식물이미지와 무척 다르고 일반적인 미적 대상으로서의 꽃도 아니다. 아름답고 수동적이고 정적인 식물성을 위반하는 동물성적인 식물들이다. 오랫동안 인간은 식물을 ‘목적 없는 합목적성’을 보여주는 미적 대상으로 인식해왔다. 칸트는 꽃이 지닌 색상과 조화로운 구성에서 그것을 읽은 이다. 그러나 꽃, 식물이 단지 아름다운 존재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식물은 더없이 괴이하며 이상하며 온갖 상상력을 자극하는 구멍 같기에 그렇다.

장지 화면에 아크릴과 파스텔 등으로 표현된 이 식물풍경은 여러 겹으로 칠해져 이룬 불투명한 막이 무게감과 깊이감을 전해준다. 단호한 화면은 모든 표현을, 수없는 시간과 노동과 감정의 굴곡을 다 받아준다. 그래서 표현의 강도가 쎄며 이질적 감각들이 충돌한다. 그 사이로 작은 붓터치로 짧은 선을 반복적으로 채운 부분이 공존하고 어둡고 무채색계열의 화면 안에 붉은 색상이 강조점을 마련해준다. 굵고 검은 선들이 뱀처럼 유영하면서 개별적인 존재들을 관통하고 상처를 내고 어지럽게 흩어진다. 그리고 마늘과 오이가 숨을 쉬고 피를 흘리고 꿈틀거린다. 선인장과 꽃, 가시, 수중동물, 작은 알들이 서로 뒤엉켜있다. 식물이 알을 품고 가시와 줄기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며 유선형의 물렁거리는 형태감은 미지의 존재감을 안긴다. 이처럼 작가는 장지 화면에 자기만의 식물, 생명체를 재배하고 보살핀다. 작가의 화면 속에 들어온 식물은 기존에 우리가 접하고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존재들이다. 작가는 자기만의 식물을 호명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상의 식물들에서 발견하고 몽상한 것들에 형태를 부여했다. 일상과의 이 끈끈한 접신, 친밀감에서 파악되는 집중된 상상력, 경계를 넘나드는 생태계의 지도화는 이 작가의 그림에서 만나는 소중한 영역이다. 생각해보니 작가는 식물에서 무한한 생명의 잉태와 살아있는 존재들의 분투와 타존재들과의 갈등을 보았고 식물성 안에 깃든 또 다른 타자성을 만났으며 그 안에서 결국 자신의 모습을,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러니 그에게 식물은 자신을 비춰주는 타자, 이른바 거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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