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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종 / 水北問答圖, 인간과 자연과의 접점 찾기

박영택

박문종의 그림은 미술 이전의 원초적인 흔적, 기록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기존의 정형화되거나 일정한 미술적 개념에 의해 도출되고 가공된 것과는 다르다. 인문적, 철학적 개념으로 조탁된 미술언어나 세련되거나 잘 그렸거나 기술적인 완성도가 높거나 매체를 다루는 연마의 솜씨가 물씬거리는 내음이 쏘옥 빠진 상태에서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았던 이들이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기록한 절실한 이미지에 유사하다. 미술 이전에 자리 잡아 서식했고 지식과 문화 이전에 원초적인 생의 지혜로 부려졌던 혜안의 놀림이다. 그만큼 기존 미술계에서 통상적으로 유통되고 생산되는 그림들과는 현저한 차이를 지닌다. 이 점이 무척 흥미롭다. 박문종의 미술언어와 그 어법이 무척이나 색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현장에서 길어올리는데 그것이 다름아닌 농촌이란 장소이고 농부라는 존재이며 시골장이란 공간이고 뒷산이자 논과 밭이 있는 터다. 그 모든 것들이 화면 안으로 자연스레 밀려들어와 버무려져있다. 그가 그려놓은 그림들은 영락없이 이름 없는 민초들이 농사짓고 살면서 부려놓은 자연스런 생의 욕구가 기술한 기호들이고 문자이고 이미지를 닮았다. 그런 느낌이다. 이러한 느낌을 고스란히 살려 그림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예를 찾기는 어렵다.

박문종은 한지에 황토, 퇴묵을 이용해 농촌에서 생활하는 농부의 삶을 그려낸다. 아니 자연과 함께 한 그들의 몸짓이다. 자연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가 그리는 대상이다. 박수근이 일하는 여자들을 그린 것처럼 그 역시 일하는 농부들을 그린다. 그렇다고 이종구의 그림처럼 사실적인 재현기법에 의해 농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아니다. 농촌이란 장소성을 대상화하거나 타자의 시선으로 소재주의화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이 땅 위에서 무엇인가를 길러내고 그에 적합한 삶의 자리를 눈물겹게 부려왔던 모종의 자취를 ‘짠하게’ 상기시켜준다. 그것들은 황토처럼, 젓국물처럼, 된장처럼, 산처럼, 풀처럼, 나무처럼, 냇물처럼 그리고 구리 빛으로 그을린 순하디 순한 농부들의 얼굴과 마음과 노동처럼 다가온다. 생각해보니 그는 오래 전부터 이 땅의 민초들을 그려왔고 시골장에 자신들이 길러낸 농작물을 파는 아낙네들 또한 자주 그렸다. 그런 대상에 마음이 갔던 것이다. 나로서는 그의 시선에서 인간적인 정이랄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슬픔을 접한다. 지금까지 그의 관심사는 일관되다. 그 관심사를 더욱 진하게 체득하기 위해 그는 오래 전 거주공간을 옮겼다. 도시를 떠나 담양 수북면 궁산리로 이주했다. 그 세월이 10여 년을 훌쩍 넘겼다. 다른 작가들이 교외로 작업실에 구해나가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물론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진정한 체득과 그에 따른 방법론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골로 들어간 그는 그곳에서 농부들과 생활하며 부지런히 텃밭도 가꾸고 시골장도 드나드는가 하면 모내기도 하며 생활하고 그림 그리는 일을 병행한다. 이 모두가 자신의 그림의 소재를 찾는 한편 그에 적합한 방법론의 구현과 맞물려있다. 아마도 이는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면 그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나 체득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일 것이고 나아가 그로부터 적합한 조형언어가 풀려나올 것이라는 확신에서일 것이다. 아울러 그는 전라도 ‘시골사람’으로서 그 촌놈의 언어를 구사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 보인다. 찐득한 방언으로 상실되고 잊혀진 농부들의 자생적인 이미지행위를 되살려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그는 ‘ 그림농사’를 짓고 있다. 논을 화실로, 작업실로 들이는데 어느 덧 10여년이 세월이 족히 걸린 것이다.

박문종은 농사짓는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고 함께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그림은 점점 그 땅을 닮았고 모와 작물과 동네 산과 논과 밭을 닮았다. 투박하고 자연스럽고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꾸밈없고 소박하기만 하다. 이런 유형의 그림을 접한 적이 거의 없다. 조선시대에 아주 어눌하게 그려진 민화의 한 자취가 연상된다. 혹은 고지도나 당시 농촌의 생활상을 기록한 문서에 딸린 그림을 보는 듯 하다. 분명 이 그림은 오늘날 한국현대미술계에서 무척 생소한 그림이다. 어떤 유파나 경향, 이즘과 개념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 돌올한 독자성에서 번지는 그림의 멋이 있다.

어쩌면 박문종의 어법은 그대로 농사 짓는 사람들의 말투와 몸놀림과 노동 그대로다. 마치 농부들이 작대기로 논바닥에 쓱쓱 그어댄 자국 같기도 하고 달력 종이나 봉투 등에 숫자나 문자, 기호를 무심히 적어놓은 것도 같다. 형언하기 어려운 어눌하면서도 기묘한 경지가 있다. 지방색 물씬 나는 그림, 농촌에서 가능한 그림, 토종적인 그림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가 광주에서 담양군 수북면 궁산리로 내려간 후 그는 그 이전까지 자신이 그림을 그렸던 방식, 대상을 보는 방법, 능란한 필선 등을 죄다 지우는 시간을 힘겹게 가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이는 재료에서도 돋보인다. 그는 묵힌 종이를 쓴다. 의도적으로 구겨지고 망친 듯한 종이를 쓴다. 아울러 종이 자체가 지닌 속성을 그대로 용인한다. 물을 빨아들이면 주글거리는 특성이 그렇고 종이를 구부리거나 접은 면을 그대로 활용한다거나 망치거나 잘 그리거나 잘못 그렸다거나 하는 모든 구분을 지우면서 사용한다. 또한 그는 흙물과 먹 만을 쓴다. 가장 소박하고 근원적인 재료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마치 된장과 간장을 먹고 땅에서 나는 식물을 섭취해 살아가는 농부들의 생활처럼 그런 자연재료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먹을 조그만 단지에 담아 묵혀서 쓴다. 먹도 흡사 된장이나 젖갈처럼 삭히거나 발효해서 사용 하는 것이다. 그러한 퇴묵은 ‘종재기’로 조금씩 떠서 쓴다. 오래된 먹은 좀 더 침잠되고 삭고 거칠고 다소 까칠한 느낌을 주지만 그 먹색이 무척 곰삭고 포근한 맛이 있다. 그런 종이와 먹을 사용해서 선을 긋는다. 동양화는 결국 선이다. 선은 또한 가장 원초적인 행위이자 근원적인 회화이다. 그는 선을 죽이지 않는다. 면보다는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 선은 나무와 잡초와 모, 주변 산의 능선에서 따왔다. 이제 모든 것이 선이 된다. 그가 그은 선은 더없이 솜씨 없어 보인다. 세련되고 익숙하고 능란한, 잘 그린 선의 개념을 다 지워버렸다. 이렇게 지우기도 쉽지 않을 터다. 처음 붓을 잡아보는 이의 선처럼, 어떠한 인위성과 헛된 욕심이 앞서지 않는 그런 선을 긋는다. 그는 종이를 바닥에 깔아놓고 그린다. 그것은 하늘의 시선에서 그리는 것이다. 동시에 모든 것을 거꾸로 보는 시선이다. 그래서 땅도 일어서고 논과 밭도 일어선다. 농부들도 일어섰다. 수평선이나 지평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름아닌 우주적 시선이다. 땅과 하늘이 우선하는 시선이다.

대상을 그리려면 그 대상에 맞는 어법이 요구된다. 그가 농촌에 살면서 농사짓는 이들의 삶과 그 내음을 그리려면 그에 걸맞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 방법에 대한 고민은 현장에 몸을 맡기는 쪽으로 풀린다. 그는 농사짓는 삶, 농촌의 정서에 따라가 본다. 그렇게 그는 자연과의 친화력을 가지려 한다. 사람과 자연에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로부터 그림을 추출해 내고자 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저 멀리 등을 한껏 구부리고 일하는 이들의 어른거리는 실루엣을 그렸고 사람과 나무의 구분이 지워지는 그런 풍경을 또한 겹쳐놓았다. 그 사이로 논의 모들이 솟아있고 논둑이 지나가고 농부들의 모자가 배처럼 떠있다. 그는 말하기를 모를 내려고 담금질한 논이 더없이 이쁘단다. 물을 잡아둔 빈 논에 건너 산이 거꾸로 비추는 풍경이 절묘하고 논 한쪽에 조성해 놓은 모자리의 형태가 보여주는 날 일자, 눈 목자, 가로 왈자형, 밭전 자로 그 생김새가 제각각인 것도 재미있단다. 그 모습 모두가 그에게 작업의 영감을 주고 아름다움을 불러 일으키고 감동과 경이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의 이 경험적인 그림은 기존 그림을 보는 시선과 방법론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교감의 산물이다. 그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그런 교감이 은밀하게 드러나기를 바란다. 결국 수북으로 들어가 그가 생활하고 그려낸 그림은 궁극적으로 자연과의 긴밀한 교감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가 묻고 들은 것들이 지금의 그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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