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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량 / 얼굴그림-심리적 초상화

박영택

손미량이 보여주는 얼굴은 우울해 보인다. 슬픔 같은 것이 습기처럼 감촉된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습하다. 물감은 화면에 단호히 칠해졌다기보다는 눅눅하게 번지고 스며든다. 단색조에 가까운 색채들은 어둠 속에서 부유하다 날카로운 빛의 집결로 모아지고 흩어진다. 그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얼굴은 무표정해보이지만 분명 슬픔이나 비극, 혹은 차마 발설될 수 없고 표현될 수 없는 난감한 내면으로 마냥 침침하다. 한 사람의 내면은 나에게는 너무 완강한 타자적 세계다. 그것은 모든 언어나 문자를 무력하게 만들고 해서 우리는 그의 얼굴빛과 표정, 몸짓과 음성의 톤으로 겨우 그 기미를 알아차리고자 한다. 그런데 그림은 그런 모든 것을 하나의 결정적인 장면으로 가능케 한다. 아마도 손미량이 그리고자 했던 얼굴이 그런 얼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화면을 압도하는, 생경하게 다가오는 큰 얼굴은 존재감을 극대화시키고 있으며 그로인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자 한다. 특히 작가는 슬픈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 얼굴을 이루는 미세한 근육과 표정, 주름의 묘사에 치중했다. 그것은 극사실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상으로 흩어지지 않으면서 멈춘 미묘한 심리적 초상화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얼굴은 한 개인의 모든 것을 부지불식간에 드러내버리는 영역이다. 얼굴은 텍스트이며 상형문자이기도 하다. 얼굴을 그린다는 것은 작가가 읽은 누군가의 얼굴에 대한 독해이다. 손미량은 인간이 지니는 근원적인 슬픔을 간직한 얼굴을 그린다. 인간의 자아나 내면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사용하기 쉬운 이미지가 얼굴 이미지이기에 그렇다. 작가는 궁핍한 영혼, 이별과 죽음, 상실과 서러움으로 가득한 얼굴을 그린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얼굴이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러한 상황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얼굴을 지니고 산다. 페르소나가 그것이다. 가면 같은 얼굴로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는 자신의 얼굴을 관리한다. 사회적 얼굴이다. 반면 슬픔이니 이별, 죽음 등과 대면한 얼굴은 지극히 개인적인, 고립된 얼굴이다. 그것은 사회적 기호로, 페르소나로 감추기 어려운 얼굴이라 그런 얼굴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실한 인간의 얼굴을 접한다.
작가는 그 진실한 얼굴을 원한다. 그런 표정은 찰나적으로 스치고 우연히 접한다. 해서 사진으로 이를 촬영해둔다. 자연스러운 표정, 관찰당하는 이가 눈치 채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져 올린 사진을 이용해 이를 근간으로 그림을 그린다. 얼굴의 변화무쌍한 이미지는 강렬하고 순간적이며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와 소통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화면에는 오로지 얼굴만이 가득하다. 더러 실내풍경이 등장하지만 이 역시 얼굴표정을 보조하기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보편적인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관심”이 있으며 따라서 “ 심상적 상처 즉, 트라우마를 얼굴 형상으로 시각 언어화” 하였다고 한다. 결국 작가의 인물화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그리는 일종의 심상화인 것이다. 따라서 화면은 그런 심상화를 가시화하기 위한 장치 속에서 배려된다. 우선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색을 제한했으며 대상자의 표정에서 내면을 느낄 수 있는 감성위주의 표현을 시도했다. 색채는 무채색에 모노크롬에 가깝다. 감성적인 톤으로 조율된 화면은 다분히 비극적인 정서를 깔고 있다. 명확하기 보다는 다소 흔들리고 중첩되는 화면은 모호함을 안긴다. 그 위에 투명피막기법(글레이징)을 활용하여 그림 층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느낌을 주었다. 글레이징 기법이란 이미 칠해놓은 색상을 강조하거나 수정하기 위하여 그림의 특정 부분에 붓으로 바르는 액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작가가 주로 다루는 갈색은 인물의 지나온 시간을 유추하기 위한 것이고 블루는 표면적인 인간 저변에 깔린 가장 근본적인 감수성을 표현하기 위한 색채라고 한다. 이처럼 작가는 인물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절제된 색을 사용하고 있다. 제한된 몇 가지 색과 목탄의 검정색, 그리고 밝은 곳의 흰색 정도가 사용하는 색의 전부이다. 특히 그림의 표면에 롤로로 문지른 자취가 눈에 띄는데 이는 독특한 마티에르를 남기면서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이것 또한 인간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템페라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손미량은 익명의 존재들이 겪는 생의 슬픔을 애정을 가지고 표현하고자 한다. 그들의 슬픔 혹은 고독한 삶은 결국 내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비극적 상황과 우울하고 불안한 내면의 정서가 어떻게 얼굴그림으로 가시화될 수 있을까가 이 작가의 관심이다. 인간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과 통찰 없이 예술은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작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과 그 비극에 대한 연민의 시선과 마음으로 지인의 얼굴을 그린다. 지인이어야 그가 처한 비극적이거나 고독, 슬픔 등 내면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그림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느끼고 감각하는 지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과 관찰 속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런 마음과 시선이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화를 가능하게 했다. 나로서는 특정인을 반복해서 다룬 일련의 시리즈 그림이 흥미롭다. 얼굴형상과 표정이 주는 인상 자체도 무척 강하지만 한 개인을 깊이 읽고 관심 있게 들여다본 작가의 공력이 성공적으로 간취된 몇 개의 작품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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