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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 / 소비사회의 바니타스 정물화

박영택

신화와 종교적 텍스트를 도상화시킨 서구회화의 오랜 전통이 균열을 일으키던 시점에 정물화란 장르가 태동되었다. 그것은 세속의 가치와 유물론적 관점을 반영하면서 물질적 욕망을 가시적 세계 안으로 편입하고 그 사물의 표면을 편애하였다. 유사성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물 그 자체가 주체가 되는 순간, 시각적 욕망이 세계를 수렴하는 지점에 정물은 등장한다. 그 같은 정물화는 17세기 중엽 지금의 네덜란드 지방에서 ‘움직이지 않는 자연’이라는 의미의 ‘still-leven’ 이라 명칭을 얻게 되었고, 영어권 지역에서는 ‘still life’란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한 세기 뒤늦게 ‘죽은 자연’이라는 의미 ‘nature morte’로 정물의 명칭이 정해졌는데, 이 명칭은 17세기부터 행해진 해골, 모래시계, 시든 꽃과 과일, 깨어진 그릇 등을 통해 이 세상 존재의 ‘헛되고 헛됨’(바니타스)을 표상하는 정물의 한 범주를 포괄하는 것이기도 했다.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와 달리 이 바니타스의 의미를 지닌 정물화는 인간적 이해의 한도를 넘는 정신적이고 영원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중세적인 믿음을 여전히 반영한다. 유비에 의해 사물을 파악하는 중세적 사고방식에 근거해서 신의 창조의지는 그 피조물들에 구현되어 있으며, 자연세계의 풍부함과 아름다움 속에서 신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해골은 죽음은, 꽃과 촛불은 이내 시들고 사라질 유한하고 덧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정현목은 그 같은 바로크시대의 정물화형식을 차용해 동시대인의 소비문화의 명품에 대한 헛된 욕망을 은유화 한다. 이것은 그 정물화를 모방한 정물사진이고 그 당시 유한한 세계의 헛됨을 이야기하는 텍스트를 빌려와서 동시대의 소비현상을 비판한다. 짙고 어둡고 단호한 배경을 뒤로 하고 하얀 천위로 온갖 화려하고 반짝이는 기물과 아름다운 꽃등이 흩어져있다. 작가는 이전의 서구 바니타스 정물화 양식을 전용해 서양의 엔틱가구, 해골, 초, 화병, 꽃, 과일, 식기, 썩은 음식 등을 배치해서 연출했다. 테이블위에 흰 천이 드리워져 있고 그 위로 각종 기물이 놓이고 그 사이 어딘가에 명품로고가 찍힌 가방이 반짝이며 자리하고 있다. 환한 조명 아래 사물의 피부는 반짝이고 그 표면의 질감과 관능을 극대화한다. 차갑고 명확한 윤곽과 색감이 저 사물들의 세계를 욕망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죽음 같은 차가움을 안긴다.

인생의 무상함과 세속적 욕망의 허망함을 각종 정물로 표현했던 바니타스 정물화가 명품을 선호하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세속적 욕망을 비판적으로 표현하는데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판단에서 그 같은 연출이 이루어진다. 작가에 의해 연출된 정물은 마치 영화의 셋트(미장센)나 광고, 잡지 화보처럼 보여진다. 완성도 높은 이 정물사진은 서늘한 정교함으로 헛된 욕망의 덧없음을 날카롭게 찌른다.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라고 부른다.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사물(상품)만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기호의 소비를 포함하는 과정으로 설명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상생활의 상품화 과정을 통해 사물들은 실제적 기능과 물질성에서 자신의 의미를 고갈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호의 체계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사물을 대신하거나 재현하는 그 무엇을 우리는 ‘기호’라고 부른다. 소비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이며 기호이다.

오늘날 사물들은 구체성을 통해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서 소비된다는 특징이 있다. 어떤 욕구를 만족시키기 보다는 어떤 지위를 의미화하기 위해 사물들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물간의 차이적 관계 때문에 가능하다. 그러니까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욕구란 특정한 사물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차이에 대한 욕구, 즉 사회적 의미에 대한 욕구이다. 여기서 사회적 차이의 논리란 사람들이 사물(상품)의 구입과 사용을 통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동시에 사회적 지위와 위세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러한 차이를 부여하는 것이 다름아닌 기호다. 간추려 말하면 기호가치는 물질문화를 지배하고 이러한 지배를 통해서 일상생활을 상품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사회의 특징이다. 그것이 명품로고를 선호하고 욕망하게 하는 이유다. 그 로고는 단지 기호에 불과하지만 대중은 상품을 자신을 차별화하며 드러내는 기호로 보기 때문에 상품소비에 몰입하고 명품을 욕망하는 것이다. 명품이란 ‘아주 좋은 품질의 제품, 모방할 수 없는 스타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아주 비싼 것’이란 뜻이다. 현재는 명품에 대한 취향이 일반화되었으며 유명 상표에 대한 태도가 이전보다 계층화가 덜 되었다. 그에 따른 상표에 대한 대중숭배, 복제품의 확산, 모조품의 증가를 보게 된다. 진짜를 소유하기 어려우면 짝퉁이라도 소비한다. 소비는 단순히 사물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류층 사회를 상징하는 사물을 소비하는 행위를 말한다. 소비와 사치를 욕망하게 하고 그것을 기호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 모두는 집단적인 차원에서 학습, 훈육된다.

정현목은 명품의 소유 욕망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려는 현대인의 속성을 ‘정물’사진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정물 사진 안에 가짜 명품가방을 삽입시켰다. 사실 그것은 진품이 아니라 짝퉁이다. 그것을 이 사진 안에서 확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의 반전은 진품을 소유할 수 없으면 짝퉁이라도 소비하려는 현대인의 명품숭배 심리에 대한 풍자인 셈이다. 이 짝퉁가방들이 자리한 연출된 정물은 그 명품들로 인해 얻어진다고 여기는 신분과 취향과 스노비즘적 태도가 사실은 물거품처럼 헛된 것임을 증거한다. 그것들은 마냥 덧없고 허망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 명품은 아무것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소비의 욕망은 마냥 지체되고 지연될 뿐이다. 그야말로 현대판 ‘메멘토모리’이자 ‘바니타스’ 정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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