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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경 / 친근하고 낯선 도시풍경

박영택

권인경- 친근하고 낯선 도시풍경



도시는 자연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비로소 가능해진 공간이다. 그곳은 자연과는 다른 생존의 공간이자 안식처다. 자연 속에서 삶을 영위했던 인간이 그 자연을 뒤로 하고 도시를 가설하면서부터 근대는 시작되었고 현대인이 탄생했다. 자연의 위협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났지만 동시에 자연과의 친화적 관계를 상실한 도시인들은 고독과 불안, 부유하는 이의 심리적 상흔을 안게 되었다. 도시는 다시 자연을 그리워하고 해서 도시 공간에 자연을 관리하고 끌어들이기도 했다. 공원과 정원, 가로수와 화분 등은 그런 도시화된 자연풍경이다.

권인경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풍경을 그림에 담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시선에서 본 풍경화다. 실내에서 내다보이는 도시의 경관은 파노마라처럼 흐른다. 도시를 조망하고 있는 산책자나 구경꾼의 시선이 두툼하게 느껴지는 그림이다. 도시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바라보는 구경꾼의 시선이다. 그림 하단에는 대부분 거실 풍경의 단면이 놓여져 있다. 소파나 의자의 윗부분이 보이고 창가에는 몇 개의 화분들이 늘어서있다. 그 화분 뒤로 복잡다단한 도시의 건물들이 가득하다. 비근한 일상의 장면들이다. 이런저런 가게들이 들어서있고 창문과 각종 간판을 장식하는 문자들이 바글거린다. 그 사이로 한자가 쓰여진 종이가 콜라주 되어 있다. 현대적 도시의 피부위에 한자/문자가 기생한다. 도시를 채우고 있는 각종 건물들은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고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있기도 하다. 굽어보는 시선과 멀리 내다보는 시선이 어지럽게 선회한다. 카페와 노래방, 부동산과 식당, 옥탑방 등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있는가 하면 저 멀리 남산 위의 타워와 높이 솟은 빌딩, 촘촘히 밀집한 연립주택과 아파트단지들이 물결치고 그 사이로 언뜻언뜻 녹색의 풀들이 숨 쉬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작은 화분은 거대한 도시에 비해 왜소하고 보잘것없지만, 그러나 그 녹색의 풀만으로도 시멘트와 철골, 유리와 간판으로 뒤덮인 도시에 신선한 활력을 제공해준다. 모종의 신선한 구멍, 틈을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실재하는, 구체적인 풍경이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시점에서 접한 도시가 한 화면에 공존되어 마구 엉켜지면서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원근법의 시선을 지우고 이동의 시선을 따라갔는데 그것이 바로 실존의 시선일 것이다. 고정된 주체 중심적인 시선이 아니라 몸의 시선이자 마음의 시선이다. 작가는 그렇게 창 너머로 보이는 도시풍경을 산책자의 시선으로 소요하고 부유한다. 작가는 도시 속에 살고 있으면서 그 도시를 낯선 이의 시선처럼 훑어나간다. 그래서 그림을 보고 있는 관자들 또한 작가의 시선을 따라 유동하며 도시를 체험한다. 이 그림은 보는 이의 신체와 시선을 자극해 끌고 다닌다. 도시 풍경을 단순히 재현하거나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를 산책하고 마음의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경험을 체감시키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도시 풍경은 일어서고 가라앉고 기운다. 마치 지각변동이 일어나 해체되는 풍경 같기도 하고 풍경 속에 또 다른 풍경이 나타나는가 하면 실내와 실외의 풍경이 구분 없이 뒤섞이고 그려진 부분과 고서를 뜯어 붙인, 콜라주 조각들이 공존한다. 콜라주는 프레임을 만들고 그림 안에 또 다른 그림, 장면을 설정하는 역할도 한다. 그런가하면 입체적인 풍경을 평면화 시키면서 도시를 한권의 책처럼 보여주는 편이다. 사실 우리가 풍경을 본다는 것은 현재의 풍경뿐만 아니라 기억과 상상에 의해 떠오르는 여러 시간대의 풍경을 동시에 떠올리는 일이다.

권인경의 그림은 단순하고 삽화적으로 매만진 형태와 해학적인 묘사, 부드러운 채색으로 인해 친근하다. 또한 부분적으로 콜라주 된, 한자가 쓰여진 종이의 자연스러운 부착은 과거의 흔적들이 현재의 풍경 사이에서 떠오르는 듯한 상황을 암시한다. 2차원의 평면에 그리기와 콜라주(저부조)의 결합은 다층적인 공간감을 두텁게 형성해주는 한편 여러 시간의 멀미와 서로 다른 공간의 겹침을 뒤섞어 보여주는 이 그림은 도시를 보며 상상하는 행위를 보여준다. 사실 도시는 여러 시간이 동시다발적으로 공존한다. 무엇보다도 작가는 도시풍경을 소요하고 그 안으로 육박해 들어가거나 일정한 거리에서 관조하면서 그렸다. 자기 일상의 행동반경, 삶의 공간을 재현했는데 그것은 실제이자 상상력으로, 심상으로 길어 올린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권인경은 서울이란 도시,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풍경을 소재로 해서 그림을 그리지만 그것은 특정 도시의 재현이나 기록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 분명 구체적인 도시 공간, 건물의 외관, 동네풍경이 사실적으로 다가오지만 작가의 주된 관심은 도시를 일정한 거리에서 조망하는 그 시선의 거리와 그로부터 연유하는 또 다른 꿈꾸기다.

그것은 도시를 산책하는 자의 시선이자 구경꾼으로 물러나 바라보는 어떤 심정적 거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장면 같다. 그 시선과 마음은 한편으로는 도시의 현란한 외관과 복잡한 장면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것이자 동시에 약간은 불안해하며 낯선 감정으로 긴장하는 마음의 상이기도 하다. 도시는 익숙하고 안정적이고 지극히 편리하면서도 동시에 불특정한 다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며 치열한 생존의 각축장이자 무수한 욕망들이 부딪치는 두렵고 공포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도시를 멀리서 내다보았을 때 그 도시는 나와는 무관한 별개의 세계 같기도 하다. 익숙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안겨주고 보호해주는 안식처이자 비정하게 버려질 수도 있는 도시를 보는 양가적 감정이 공존하는 이 그림은 그래서 따스하고 친근하면서도 어딘지 불가해하고 낯선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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