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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 너무 검은 몸, 검은 물질

박영택

김성민-너무 검은 몸, 검은 물질



익산에 위치한 작가의 작업실 공간에는 검은 그림들이 세워져있었다.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 밝고 화사한 늦가을의 햇살을 안고 너무 검은 그림과 대면하고 있다. 그것은 검은 물질이자 동시에 검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대부분 남자의 누드인데 그것은 작가에 의해 연출된 몸짓이고 몸의 언어이자 내면을 지시하는 실루엣으로 가득하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등을 보여주거나 고개를 숙이거나 엎드려있거나 누워있다. 구체적인 정보를 지워버린 얼굴과 몸은 그저 동물성의 육체, 물질성의 몸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몸짓, 몸이 발산하는 신호음에 귀 기울이게 한다. 그것은 묵언의 몸짓이자 절박한 실존의 흔들림이거나 복잡한 내면의 파열음 같기도 하다.
분명 작가는 ‘그것’을 표현하려는 것 같다. 그러니까 껍질로서의 인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이거나 심리적 불안과 성적 불안, 혹은 보편적인 인간의 실존적 고뇌 등을 폭넓게 아우르는 주제의 형상화인 듯 하다. 그동안 김성민은 이 같은 주제를 일관되게 형상화해왔고 따라서 자연스레 소재는 항상 벌거벗은 인간의 몸이었고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도살장의 소고기나 소머리 등이 등장했었다. 표현방법 또한 표현주의적인 붓질과 색채를 구사해왔다고 여겨지며 대상 자체를 강렬하게 묘사하고 배경은 단순하게 혹은 과감하게 생략해버리는 식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인간의 몸, 얼굴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도상화 하는 한편 감각적인 구성과 붓질, 색채를 연출한다는 것이 만만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후에 우연히 에곤 실레의 화집을 접했던 그 충격에 대해 말했다. 그의 그림, 누두는 실레의 영향을 어느정도 연상시키는 편이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실레나 베이컨, 프로이트 같은 작가들의 몸 그림에 경도되거나 좋아하지 않을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탁월한 재현과 형상화에 감동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사실 실레는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작가다. 특히 수많은 미술인들이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탁월한 데생력, 독특한 몸의 해석, 흥미로운 구성과 색채와 붓질의 유연함과 매력 등일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 이다. 실레의 누드, 자화상 등은 이전의 정형화되고 유미적인 몸들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그만큼 강렬하고 진실하다. 그가 재현한 몸들은 불안과 고뇌, 인간이란 존재가 지닌 모든 요소를 솔직하게 드러내버린다.
피부 속에 들어차있는, 알 수 없고 시각화할 수 없는 것을 그림으로 발설해버리는 것이다. 특정한 관습적 틀과 유형에 매이거나 그림을 매끈하게 다듬는 조악함이나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시선 등을 지워버리고 철저하게 자신의 본능, 욕망, 불안에 이끌려 대상을 파헤치는 무서운 눈이 그의 그림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아마도 김성민은 그 실레의 그림과 같은 몸을 그리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는 실레와는 다른 현재의 시간대에 당대의 인간에 대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그림을,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가 그린 몸은 특정 모델의 몸을 아름답거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그림이 아니라 자기 내면이 보고 읽은 인간의 모습이다. 살덩어리의 인간이자 유한한 존재로서 죽음과 생, 리비도아 에고 사이에 부침하는 그런 유약한 인간말이다. 그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몸/ 살을 매개로 사용한다.

너무 검고 짙은 색상과 거칠고 강한 질감으로 뒤덮인 그림은 인간의 몸을 암시한다. 색상과 질료는 그것 자체로 자활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미지를 안기는 것이다. 그림은 이미지이기 이전에 물질이다. 그러나 그 물질은 단지 질료덩어리에 불과하지 않고 물성과 그 물성이 지시하거나 환기하는 또 다른 존재로 비약하는 신비 사이에 걸쳐있다. 그 이미지는 특정 인간의 외양을 재현하거나 묘사한 그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몸 자체를 지시하는 기호적인 상태로 화면에 부착되어 있다. 납작한 평면위에 흑연가루와 본드를 섞어 만든 기이한, 독특한 물질이 일정한 높이를 지닌 체 부착되어 있다. 두툼하고 거칠고 갈라져있다. 고부조로 튀어 올라와 거의 조각적이다. 그림이자 동시에 부조이며 이미지이자 물질 그 자체로 범벅져 있는 형국이다. 화면에 흑연가루 물질만이 급박하게 작가의 손에 이끌려 부착되고 쓸리고 얹혀져있다. 이 핑거페인팅은 검은 석탄으로 형상화한 인물을 촉각적으로 전해준다. 물질이 중력의 법칙에 의해 아래로 밀리고 흘러내린 자국, 몇 번에 거쳐 물질을 올려놓아 이룬 몇 겹의 층, 시간의 차이에 따라 굳고 갈라지고 다시 굳는 차이들의 동시적 전개,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부위들을 돌멩이로 갈아서 이룬 번들거리는 광택 등은 상당히 흥미롭다.
대부분 연필이란 재료는 그림을 그리는 도구인데 반해 흑연가루를 물질, 안료처럼 만들어 부착하는 이 낯선 페인팅은 흑연이란 물질이 평면위에서 만들어내는 조각적 회화다. 그는 검은 물질, 흑연가루를 화면에 덮고 밀어나가거나 부분적으로 연필터치를 주고 돌멩이로 갈아내면서 인간의 몸 안에서 발산하는 내면의 소리, 심리적 메시지를 듣기를 요구한다. 그것이 어떻게 형상화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분명 까다로운 문제이지만 좋은 작가,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 존재를 가시적 세계로 끌어내고 들을 수 없고 다만 기미나 느낌으로만 전해질 수 있는 것들에 모종의 ‘몸’을 부여하는 이들이고 그것이 또한 그들의 일이다. 재료에서 새로움을 주는 근작은 오일페인팅에서 벗어나 흑연가루를 갖고 만든 검은 몸이고 이 검은 몸 그림은 작가의 일관된 주제인 인간의 실존이나 내면세계와 같은 다분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일 수 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매개가 되기 위한 시도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한 시도가 향후 어떻게 진척될 지가 무척 궁금해지는 근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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