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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지의 추상, 자연스러운 감각적 선

박영택

김영지의 추상, 자연스러운 감각적 선




외부세계를 재현한 형상이 사라진 추상화면이다. 심플하고 산뜻하다. 색과 붓질만이 있는 그림이다. 주어진 사각형의 화면 내부는 색채로 덮여있고 붓질이 지나간 흔적이 머물러 있다. 그것은 마치 어눌하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난스러운 붓질의 유희, 마음 가는 대로 그어나간 드로잉 등을 떠올려준다. 캔버스, 종이의 화면 위에 편하게 붓으로 드로잉을 한 것이다. 김영지는 우선 작은 종이에 수채화 물감으로 마음가는대로 선을 긋고 색을 칠했다. 특정한 대상의 재현에서 풀려난 붓질은 그것자체로 자족적인 선이 되어 평면위로 지나간다. 일정한 띠를 형성하면서 수평과 수직의 선, 그리고 색채를 머금은 각각의 면들이 표면을 점유하고 있는 그림이다. 색채와 색채간의 흥미롭고 활력적인 대비, 조화를 엿보고 있다. 작가는 그 작은 종이그림을 다시 캔버스에 아크릴로 확대해서 올렸다. 이때 또 다른 변주가 일어나고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나 여전히 물감과 붓으로 긋고 칠한 소박한 행위의 결과물이 남는 화면이다. 동시에 밝고 화사하며 세련된, 도회적 감수성을 지닌 색채들이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이 색채는 보는 이들에게 감각적 상쾌함을 안긴다. 색채의 상태를 증거하는 붓질 역시 별다른 의도없이 무심하게, 혹은 자연스럽게 지나가면서 묘한 여운, 감흥을 던져준다. 막대나 띠, 일정한 패턴,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유기적 형태, 색 면 안에 자리한 또 다른 색 면, 색띠간의 크로스로 만들어진 그림이자 전적으로 색채가 발화하고 붓질의 방향과 면적들이‘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김영지의 이 추상미술은 외부세계가 아닌 작가가 준거가 되는 점에서 독창성의 전형이자 내용의 서술 이전에 조형성이 중시되는 순수형식에 해당한다.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회화의 맛을 전해준다. 엄격한 기하학적 선도 아니고 그렇다고 격렬한 감정을 동반하는 추상표현주의적 제스처도 아니다. 몇 개의 색을 선택했고 그 색을 화면에 색 면으로, 띠나 선으로 남겨놓았다. 붓질을 다소 서툴게, 흔들리게 그어나갔다. 그로인해 수평으로 혹은 수직으로 내려가는 선들은 결코 단일하지않고 조금씩의 차이를 지니면서 변주된다. 부분적으로 흘러내리거나 무심히 칠해놓은 듯한 흔적에서 인간적인 호흡을 만나기도 한다. 가장 본능적인 그리기의 욕망, 아니 욕망을 지우거나 가능한 밀어낸 자리에서 피어나는 그림을 본다. 이전에는 한국의 추상미술과 현대미술은 동의어를 이루고 있었다. 추상이 아닌 다양한 경향이 공존하고 있었지만 사실 대부분 작업의 추상이었다. 흥미롭게도 최근에는 추상미술을 보기가 무척 드물어졌다. 동시대 젊은 작가들은 미술에 대해, 회화에 대해 본질적인 고민이나 개념적 사유보다는 시각적 효과나 자폐적인 그리기에 몰두하는 편이다. 회화에 대한 모든 고민이나 모색이 종결된 듯이 행동한다는 생각도 든다.

추상 역시 그렇게 철지나거나 형식에 불과한 것으로 마냥 지우려한다. 추상은 대상의 묘사를 떠나 비모방적이고, 비재현적인 양식의 회화나 조각을 가리킨다. 이 같은 면에서 추상미술은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미술과 대립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추상화 과정이 사물의 요소 중 하나를 독립시켜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 정신의 지적 작용임을 고려할 때 추상미술은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강한 의미를 갖게 된다. 실제로 추상 미술가들은 관람자의 내적 충동을 일으키는 것은 화면에 그려진 구상성이 아니라, 형태와 색, 결, 선의 동적인 리듬이라고 주장하며, 이것들이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추상미술의 출현은 20세기 이전까지 서양미술을 지배해온 전통적인 재현미술과의 이별을 의미했으며, 현대미술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추상이란 실은 전신적이고 관념적인, 재현적이고 서사적인,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요소들이 최소한으로 압축되거나 걸러진 형식이다. 김영지는 시류에 무관하게, 일관되게 자신만의 추상화를 시도해온 작가다. 이 추상은 다분히 기본적이면서도 근원적인 추상/회화의 맛을 새삼 일깨운다.

김영지의 그림은 추상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회화적인 회화다. 색채, 물감, 붓질의 자취와 흔적들로만 이루어져 있고 오로지 그것들끼리의 관계 배열과 증식으로 채워져 단순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외부세계를 연상시키거나 그 무엇을 지시하기보다는 그림을 이루는 존재에 대한, 그림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들이 보여주는 상황성이 우선적으로 감지된다. 그 상황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되는 이 흔적들은 속도감과 운동성, 유동성 그리고 활력적이며 경쾌한 리듬을 갖는다. 선명한 색채와 감각적인 붓질, 따뜻하고 맑은 분위기 등이 어우러져 단순하면서도 힘 있는 구성을 남긴다. 작가는 공간적, 시각적 효과의 차이를 실험하는 가운데 선명한 색채 패턴의 영역의 조화를 연출해놓았다. 몇 개의 층위를 이루는 색 면과 붓질, 보색 대비, 그 위를 지나가다 멈춘 선의 궤적과 운동, 그리고 색 면위를 떠도는 또 다른 색 면의 추상적 형태들이 어우러져 복합적인 화면, 그러니까 시각적으로 호소하는 묘한 형태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화면공간을 자유로이 유영하는 마음의 흐름을 그대로 용인해내는 붓질에 몸을 맡겨 그려낸다. 그 마음의 무늬와 같은 필촉, 제스처가 돋보인다.
현대회화에 있어서 붓터치와 질감에 대한 강조는 산업생산에 고유한 노동분화의 결과이다. 산업자본주의는 생산과정으로 부터 손을 추방했고 수공업품으로서의 예술작품만이 여전히 손으로 하는 조직을 함축하고 있기에 예술가들은 어쨌든 자신들의 생산양식이 가진 특별한 성격을 논증하지 않을 수 없고 이에 따라 손/제스처가 중요시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림, 회화란 인간의 손으로 이루어지고 그 손의 놀림, 제스처란 결정적인 것이다. 순수한 행위가 잔잔히 흐르는 이 작가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마다 그 그림 속으로, 막막한 공간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형태나 감정을 연상해내거나 흔적 그 자체로 충분한 미적 관조나 감상, 순수한 시각적 경험에 의존하게 한다.

사각형이란 물리적 공간은 그림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조건이다. 이 존재론적 조건이 무엇이냐에 대한 논의는 그간 모더니즘미술에서 수많은 작가들의 작업 속에서 행해졌다. 그것을 물리적 실체로서 규정하고 그로인해 하나의 사물로 마감시키든 여전히 심리적, 정신적 공명을 자극하는 기이한 공간으로 설정하든 여전히 사각형의 납작한 캔버스란 공간은 화가들의 작업실에서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자세로 직립해있다. 김영지는 캔버스의 사각 공간을 다채롭게 변주한다. 그 사각형에 또 다른 공간을 설정하고 그것이 여전히 보는 이들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거나 무엇인가가 환기되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다. 작가는 색채추상을 진부하거나 시효가 지난 것으로 여겨지지 않고 회화의 기본적인 속성을 다각도로 건드리면서 번식한다. 자신의 감각과 취향에 전적으로 의존해 나가는 이 유니크한 회화는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이 납득하는 세계, 취향과 감각이 기준이 되는 예술이다.

작가는 그동안 빈번한 사찰여행과 민화에 대한 공부, 옛건축물의 장식과 현판 등에서 체득한 소중한 경험과 미의식에 대해 말한다. 그 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으로서의 감각, 서구모더니즘에 입각한 취향 등이 자신도 모르게 뒤섞이고 습합되어 나온 것 같다고도 했다. 따라서 이 매혹적인 추상화는 우리네 전통과 서구모더니즘,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감수성이 혼재되어 불거져 나온 흔적일 것이다. 작가가 다루는 색채와 형태감, 붓질 모두가 결국 그 모든 것들의 총체속에서 비로소 몸을 내밀고 나온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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