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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 산동네 골목길의 밤풍경

박영택

김종엽-산동네 골목길의 밤풍경



김종엽은 중계동, 상계동의 산동네를 찾아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았다. 가난한 삶의 상처들이 자욱하다. 외눈박이 가로등이 골목길을 비추이고 있는 밤풍경이다. 가로등에 의존해 찍은 이 밤의 산동네는 처연하고 서늘하면서도 어딘지 정겨웁다. 인적은 없다. 사진 속에는 어두운 밤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으로 인해 드러나는 골목길 풍경만이 있을 뿐이다. 다만 사물들이, 담벼락과 외벽과 바닥이, 스산한 살림살이와 화분과 방치된 사물들이 무엇인가를 발화한다. 그것들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애를 증거하고 그들의 빈곤한 살림살이와 치열하게 생존하려는 서민들의 의지를 발설한다. 작가는 차가운 벽과 시멘트, 문과 창, 가파른 계단과 축대, 화분과 어지러이 널린 쓰레기와 허접한 사물들이 말하는 바를 주의깊게 경청한다.

김종엽은 이 산동네 골목길을 반복해서 수없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갔다. 그는 이곳을 고향처럼 들렸다. 유년시절 산동네에서 살던 추억들이 이곳에서 새삼 선연히 부풀어 올랐다고 한다. 옛시절을 떠올려주는 이 풍경이 눈물겹기도 하고 무척이나 반갑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날 서울이란 공간에서 이 같은 산동네는 맹렬하게 사라지고 있다.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서민들이 자발적으로 가꾸고 스스로 만들어간 생존의 공간들, 서민들이 이룩한 근대화의 진정한 자취들이 낙후되고 더럽고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또는 그것이 전근대를 떠올리는 증거라는 이유로 제거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산동네와 골목길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작가는 그런 상실과 소멸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이를 기록하고자 했다.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는 풍경을 그저 사진으로나마 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철거를 앞두고 있는 산동네를 찾았다. 이곳도 잠시 후면 곧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예외없이 획일적인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형편이 되는 이들은 진작에 떠났고 오도가도 못할 지경에 빠진 이들만이 불안한 삶을 임시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산동네를 작가는 밤마다 찾아온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몇 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동일한 장소의 사계절 풍경이고 한결같이 어둠이 짙은 시간대에 촬영했다. 가로등의 노란 불빛에 의지해 드러난 장면이다. 구불구불한 골몰길에는 온갖 살림살이들이 튀어나와있다. 고무다라와 자전거, 의자와 쓰레기통이나 화분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있고 오래되고 낡은 벽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좁은 집안에 넣지 못하는 사물은 그렇게 길 밖으로 나왔고 비좁고 바튼 길가라 창문에는 발을 드리워 최소한의 사적 삶을 보호하고자 한다. 작고 불편한 공간이지만 이곳에도 인간으로서의 삶에 필요한 것들은 요구되기에 그들 스스로 길을 만들고 살림을 부려놓는 흔적들이 눈물겹다. 김종엽은 그 골목길 곳곳을 답사하듯 다녔다. 협소하고 구불구불한 길들을 따라 그들 생애의 긴 여정을 따라가 본다. 스산하지만 무척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다. 이 회화성 짙은 골목 장면은 규칙성을 벗어난 혼재성, 비정형의 복합구도, 이상하리만치 조화로운 색채 등에서 절묘함을 발휘한다. 절제된 추상미도 만나고 우리 전통미술에서 접하는 해학미와 소박함에서 번져나오는 세련된 절제미까지도 만난다. 누추하고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여기는 골목길이 이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임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김종엽은 오늘날 새로움과 편리함, 자본에 대한 무서운 욕망으로 질주하는 우리 사회의 광기와 탐욕에 의해 소멸되는 장소를 보존하고 추억하려는 의지와 함께 골목길풍경이 자연스럽게 만든 색채와 구성미를 재현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산동네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가정 내부를 보여주는 대신 오로지 밖의 풍경만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골목길과 낡고 허름한 벽과 지붕, 바닥과 그 길가에 늘어놓은 허접한 식물들, 전봇대와 가로등 불빛만으로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에 말한다. 사진은 사물의 표면이 말하는 바를 전한다. 소소한 디테일들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좁디좁게 꼬불거리기에 정감이 가는 골목길은 가난하게 살지만 소박한 삶의 질감들로 뒤덮힌 담벼락이나 땅바닥 등에 진하게 깔려 있기에 사람냄새가 물씬거린다. 분명 이 사진은 한국전쟁 이후의 보편적인 풍경이었던 서울의 산동네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를 보여준다. 나 역시 유년의 시절을 그 산동네에서 자라고 체험했다. 따라서 이 사진은 나에게 결코 낯설지 않다.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골목길이란 '아늑한 휴먼스케일을 유지하며, 차가 다니지 않아야 하고, 근대사의 주역인 서민들이 사는 공간이며, 일상성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동네다. 또한 능선에 나지막하게 퍼져 있어야 하며, 한국전쟁 이후 독재 개발기 때 농촌이 붕괴되면서 대도시로 내몰린 사람들의 군집지이고, 별의별 불규칙한 공간이 종합선물세트이며, 귀납적 축적의 산물이다.“(임석재, 서울, 골목길 풍경)
임석재에 따르면 한국의 골목길은 근대기 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근대성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이자 사람이 주체가 되어 공간을 만든 결과라고 한다. 그러니 골목길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이자, 문화이며 문화재이다. 나아가 물리적으로도 뛰어난 공간이란 것이다. 이름 없고 가난하며 중심에서 소외된 서민들이 눈물겹게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공간이자 실질적인 삶의 체험아래 조금씩 변형하고 덧붙여내며 없는 살림에 지혜롭게 구성해낸 총화가 바로 산동네 골목길 풍경인 것이다. 김종엽은 그런 골목길의 풍경을 아름답게, 더없이 적막하고 애틋하게 찍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름다운 이 사진을 보면서 이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모든 가족들의 생애와 그들의 목숨과 살림살이를 몽상한다. 그의 사진은 이런 꿈꾸기, 나른한 몽상과 덧없는 슬픔 사이를 횡단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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