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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밝은 이들을 찾는다

박영택

이런저런 심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자리는 불편하기도 하고 책임감도 느끼게 한다. 심사위원명단 말미에 이름 석자를 올리는 일이 권력으로 비칠까봐 무척 두려운 것이다. 실제 심사에서 떨어진 이들로부터 “권력을 휘두른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심사는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이 한다. 따라서 점수를 합산해서 결과를 낸다. 때로는 나 역시 납득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미술평론가라 해도 그림 보는 눈들은 너무 틀리고 다르다. 결과적으로 운 좋은 이들이 심사에 당선되는 편이기도 하다. 매번 심사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주최 측에서 눈 밝은 심사위원을 위촉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심사위원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확연히 달라진다. 현장에서 가능한 작품을 많이 본 평론가에게 부탁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심사는 철저하게 작품의 질만으로 평가해야 한다. 나는 해당 작품만을 보려고 한다. 그 작품 안에 모든 게 들어있다. 우선 그 작가의 미술에 대한 입장과 논리가 있고 특정 주제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녹아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기술적 측면들이 부정할 수 없이 모두 다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이다. 작가의 미술에 대한 독자한 인식, 타작품과의 유사성 여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해석의 정도, 그리고 그것을 소화하고 시각적 상황으로 연출해내는 솜씨, 날카로운 손맛과 감각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기존 작가들의 유사한 작품들과의 대비와 대조 속에서 이루어진다. 평가란 상대적이다. 나로서는 서구현대미술과 한국근현대미술사의 궤적 속에서, 그 역사적 맥락위에서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작품을 올려놓고 그 의미의 무게를 재보려는 것이다. 그러한 좌표 없이 작품의 개별적 평가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작가들 역시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을 거리를 갖고 돌아보고 전후 맥락위에서 조망해보아야 한다.

작가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제출하는 포트폴리오제작에 관한 내용이다. 자신의 최고 작품만을 엄선해서 선명한 사진으로 제출해야 한다. 편차가 너무 심한 것을 뒤섞고 오래전에 제작한 것까지 한꺼번에 제출하면 그만큼 손해다. 그리고 작가노트는 마치 신문기사의 육하원칙에 입각하듯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기술해야 한다. 예를 든다면 “나는 이런 작품을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래서 이 같은 재료를 선택해서 이렇게 구사한다. 다루는 화면의 크기, 물질, 도구, 시간 등의 필연성은 이렇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림/미술을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한결같이 작가들의 작업노트는 난해하고 종잡을 수 없고 너무 현학적이며 상투적이다. 장황하기만 하다. 작업은 철학이나 논리나 거창한 이념이 아니다. 미술은 미술일 뿐이다. 작품 안에 그 모든 것을 녹여서 시각이미지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을 넘어설 수는 없다. 그럴듯한, 유행하는 상투적인 개념이나 주제를 내세우면서 힘겨워하지 말고 자신의 삶에서, 작업하면서 길어 올린 소박하고 진솔하면서 투명한 내용을 견고하게 만들어내면 된다. 심사를 하면서, 혹은 전시를 보면서 좋은 작품을 찾는 일은 바로 그러한 마음과 안목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자기 식으로 사물과 세계를 보고 미술을 사유하는 힘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의 학력, 이력이나 활동은 부차적이다. 그러나 정작 심사에 들어가 보면 작품의 질이 아닌 다른 문제로 갑론을박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 해 선정된 작가와 작품경향이 같다거나 특정 학교출신들이 중복된다거나 해서 좋은 작품이 떨어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렇다면 작품 자체를 심사하려고 온 나로서는 마냥 허망하다. 주최측과 심사위원들이 부디 작품외적인 요소를 가지고 얘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당연히 주최측은 심사에 어떠한 압력이나 요청을 해서는 안된다. 그동안 적지 않은 심사난 작가추천의 자리에 참여해봤지만 만족스러운 경우는 거의 기억에 없다. 그래서인지 앞으로는 가능한 그런 자리를 피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눈 밝은 이들과 심사를 함께 해서 정말 좋은 작가를 찾아내고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다. 평론가나 큐레이터들은 좋은 작가를 찾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해나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도움을 주는 이들이어야 한다. 그들 위에 군림하거나 같지 않은 권력을 휘두르는 이들이 결코 아니다. 더불어 분명 심사를 하는 나 역시 편견과 고정된 시각을 지녔을 것이다. 해서 가능한 많은 전시를 보려고 한다. 부디 눈이 밝은 평론가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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