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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있음에의 저항

박영택

경기신문사설- 쓸모있음에의 저항



여름을 지나 제법 찬바람이 아침저녁으로 파고드는 가을의 초입이다. 여름방학동안 비어있는 교정을 오가며 어디선가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 같은 것을 환청처럼 떠올리곤 했는데 이제 그 공백 같은 캠퍼스가 무척 활력적으로 변했다. 그렇게 2학기 개강이 되었지만 얼마 전 발표된 대학졸업생의 취업률기사로 인해 사뭇 우울하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않되는 상황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강도가 좀 더 쌔지고 깊어진다는 느낌이다. 모든 대학들이 그 문제로 노심초사 하는 모양이다. 4년제 일반대학 194개교의 데이터를 자체 분석한 결과 2011년 졸업생의 취업률은 58.6%라고 교과부가 발표했다. 작년보다는 소폭 올랐다고 한다. 보통 10월에 발표했는데 앞당겨 발표한 이유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중요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며 현재 진행 중인 대학 구조 개혁 작업에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대학의 선택기준이 취업률이 되고 이른바 명문 대학을 규정하는 것도 취업률이 될 것이다.
부정하기 어렵다. 우리네 사정에서는 어느 학교 출신이냐가 취업에 크게 좌우되는 형편이라 과연 개별적인 학생들의 실력과 능력이 투명하게 반영되는 취업률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그와 더불어 대학의 존립기반과 의미 자체가 취업률에 저당 잡혀있다는 사실도 조금은 불우하다. 대학의 무수한 전공 중에서 사회에서 요구되는 직종과 관련된 과가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전공도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인문학 분야나 예술과 관련된 전공들이 그런 경우다. 사실 그 같은 전공은 취업률이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사회에서 그와 관련된 직종 자체가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지 않지만 오늘날 대학도 도구적, 실용적 가치로 재편되고 그것만이 이 무한 경쟁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로 압도되는 형편이다. 쓸모있고 실용적이고 취업과 관계된 학문과 지식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점점 그 길로 치달아 가고 있음을 본다.

대학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실용적이고 경제적 가치의 창출과 연관된 것으로만 파악하는 것이 못내 두렵다. 오로지 삶의 기준이 자본이자 경제적 이윤으로 국한되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다. 아직도 우리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자랑스러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의 원활한 순환과 증식이 그 어떤 가치보다 존중되는가 하면 그래프와 숫자로 나타나는 각종 경제지표에 의거해 세계의 모든 현상을 평가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시스템 속에 결박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야만 한다. 그 궤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현실세계란 곧 이러한 경제 시스템 자체이고 여기서 이탈하는 것은 모두 비현실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비실용적인 일을 도모하는 이들, 예를들어 순수 학문이나 예술을 하는 이들의 삶은 현실의 바깥에서 불안하게 떠돌게 된다. 빈곤에 내몰리거나 때로는 소외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 작가들의 예술작품과 작품 성향이 자본과 산업에 강하게 이끌리는 것도 그만큼 그것에 의탁하지 않고서는 우리사회에서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시장에서 교환되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만이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사회풍토에서 예술행위의 입지는 마냥 좁기만 한다. 그래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예술성이 아니라 비즈니스 마인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런 작가들만이 살아남는다. 예술은 이제 자본의 축적 수단이 되었고 상품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 자체가 예술이 되어버린 상태다. 자본주의로 부터 탈주하고, 이를 극복하는 기획이 사회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실패한 오늘날 예술성과 예술생산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이런 공백을 틈타 아무런 성찰도 없이 마구 난입하는 시장주의에 속수무책으로 예술계가 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예술계의 태도이다. 아울러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열심히 하는 일이 사회에서 아무런 쓸모를 지니지 못하는 것처럼 인식되기 때문에 예술가들 대부분은 극심한 열등감과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스스로를 잉여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잇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힘들므로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 혹은 주변사람들에게 의존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일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삶을 시스템 속의 안전한 삶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시스템에서 이탈한 불안정한 삶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사람다운 자유가 발휘될 수 있는 진정한 현실로서 체험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러한 삶의 체험이 무척 불안정하고 힘든 것이지만 그들이 품고 있는 사람다운 자유를 그들 작품에 새겨, 비인간적인 시스템에 결박한 우리사회의 구성원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오늘날 예술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맥락에 있다. 쓸모 있음의 강박에 사로잡힌 우리사회의 구성원에게 쓸모없는 것의 존재를 나타내는 일이다. 작가들은 그것을 보다 유쾌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나타내는 이들이다. 그들은 쓸모에서 제외된 것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우리사회의 편견을 깨고자 한다. 그들이 느끼기에 정말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은 쓸모에 종속된 존재들이다.
진정한 예술가, 공부하는 이들은 스스로를 한국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 자신의 쓸모없음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쓸모없음이 품고 있는 생기를 바깥에 자랑하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쓸모의 의미가 과연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되묻는다. 쓸모없음에 바쳐진 자신들의 생애를 통해 역설적으로 쓸모에 얽매인 오늘날 우리 삶의 빈곤한 실상을 드러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 대학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쓸모있음으로의 강박적 몰입이 아니라 쓸모없음에 대한 진진한 성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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